올여름 제주 바닷가에서 엄마(정해순·오른쪽)와 내가 서로 껴안고 기념촬영을 했다. 엄마가 쓰러지고 회복한 후 우리 가족은 처음으로 여행을 함께하며 서로의 소중함을 절감했다.
올여름 제주 바닷가에서 엄마(정해순·오른쪽)와 내가 서로 껴안고 기념촬영을 했다. 엄마가 쓰러지고 회복한 후 우리 가족은 처음으로 여행을 함께하며 서로의 소중함을 절감했다.


■ 고맙습니다 - 함평119안전센터 직원분들

“사랑하는 울 엄마, 살려주신 모든 분께 감사합니다.”

2019년 여름 어느 날, 새벽 5시가 조금 넘은 시간 휴대전화가 울렸다. 발신자는 시골에서 부모님과 함께 살고 있는 여동생이었다. 전화를 받기도 전에 심장이 내려앉았다. 한 번도 그 시간에 통화를 해본 일이 없는 남매였다. 일상적이지 않은 전화를 받는 게 무서웠다.

불길한 예감은 틀리지 않았다. 동생은 울음을 멈추지 못해 제대로 말을 하지 못했다. 나 역시 넋이 나간 상태에서 동생의 말이 제대로 들릴 리 없었다. 대충 ‘엄마 심장마비’ ‘119 신고’ ‘아빠가 심폐소생술 중’ ‘빨리 와’ 이런 내용이었던 것 같다.

차를 몰고 시골집으로 가는 길이 평소보다 몇 백배 길게 느껴졌다. 오만가지 생각이 다 들던 중 언젠가 엄마가 친구들과의 술자리에 나를 불러 하신 말씀이 떠올랐다.

‘우리 아들은 평생 엄마 속을 썩여본 적이 없어. 정말 착한 아들이야. 그래도 가끔 서운할 때가 있어. 무뚝뚝한 아빠를 닮아서 그런지, 사랑한다는 표현을 잘 안 해. 뒤에서 엄마를 꼭 끌어안는 아들들도 있다는데 우리 아들은 그런 애교가 없어.’

40년 넘는 세월 동안 아들에게 잔소리 한번 하지 않고, 화 한번 내지 않으셨던 엄마였다. 그런 엄마의 서운한 마음을 처음 알게 됐지만, 사랑한다는 말은 여전히 어색했고 없던 애교가 금세 생기진 않았다.

후회스러웠다. 사랑한다는 말 한마디, 한 번 꼭 끌어안는 게 무슨 놈의 애교랍시고 어색하다며 그렇게 아끼고 살았는지, 미치도록 후회스러워 울며 가슴을 치고 머리를 쳤다. ‘부디 살아만 계시라. 사랑한다며 꼭 안아드릴 수 있게 살아만 계시라’고 기도하고 기도했다.

고속도로를 빠져나갈 때쯤 ‘엄마가 119 구급대원들에게 심폐소생술을 받고 의식을 차려 인근 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있다’는 연락을 받았다. 세상의 모든 신에게 감사 기도를 드렸다.

4∼5분 심정지 상태였던 엄마는 말 그대로 죽다 살아나셨다. 병원에서는 119가 오기 전까지 심폐소생술을 멈추지 않았던 아버지, 신속하게 조치를 취한 구급대원들이 엄마를 살렸다고 했다. 그렇게 엄마는 진짜 제2의 인생을 얻어 살고 계신다.

엄마의 새 삶은 내 가치관에도 영향을 미쳤다. 어색하다며 피했던 사랑과 감사의 표현을 더 이상 아끼지 않게 됐다. 두 아들에게 ‘너희만 엄마 있냐? 나도 엄마 있다’며 엄마 품에 쏙 안기기도 한다. 엄마 품 냄새는 세월이 흘렀건만 내 어린 시절 그 냄새 그대로다. ‘왜 이 냄새를 잊고 살았을까’ 싶다.

휴대전화 앨범에 죄다 아들과 늦둥이 딸(작년에 태어났다) 사진뿐이고 엄마와 찍은 사진 한 장, 부모님 사진 한 장이 없었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고 열심히 사진을 찍어 엄마, 아빠 앨범을 채우고 있다.

후유증 탓인지 엄마의 까맣던 머리카락이 백발이 됐다. 심장 기능이 언제 또 떨어질지 몰라 남은 평생 약을 드셔야 한다. 그래도 뵐 때마다 감사한 마음이다. 버텨내고 살아계셔서 안고 사랑한다는 말을 할 수 있어 정말 감사하다.

그놈(?)의 술 때문에 엄마 속을 썩이지만, 곁에서 엄마를 지켜주고 계신 아빠에게 감사하다. 마흔 넘어 아직까지 엄마에게 반찬 투정을 하지만 엄마의 말동무가 되어주는 미혼주의자 여동생에게 감사하다. ‘언니’ ‘형수’ 하고 부르며 울 엄마 귀찮게 하는 일을 가져올 때도 있지만 엄마가 좋아하는 음식 하나 그냥 넘어가지 않고 챙겨주는 동네 사람들에게 감사하다. 그리고 특별히 울 엄마를 살려주신 전남 함평군 함평119안전센터 직원분들에게 가슴 깊은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배동민(동신대 교직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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