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4 신춘문예 - 시 당선 소감

참을 수 없음.

저는 참을 수 없어서 시를 쓰는 것 같습니다. 무엇을 그토록 참을 수 없느냐고 묻는다면, 공교롭게도 어떤 ‘말’들이라고 답하겠습니다. 예를 들어 저는 ‘선함’과 ‘아름다움’과 ‘멋짐’과 ‘성실함’ 같은 말들 안에 깃든 폭력성을 참을 수 없습니다. 어렸을 적 우리 집 가훈은 ‘사회에 필요한 사람이 되자’였는데, 언젠가부터는 ‘사회’라는 말도 ‘필요’라는 말도, 심지어는 ‘되자’라는 말도 견딜 수 없었습니다. 어떤 말에 들어맞는 사람이 되면 사는 게 편하다, 그런 이야기를 많이 들었지만 결국 제가 찾는 건 그 말들 너머에 있다는 것을 이제는 어렴풋이 압니다.

그렇지만, 세계는 말로 이루어져 있고 말로 작동합니다. 힘 있는 사람들이 힘없는 사람들의 말을 재정의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저는 저를 둘러싼 세계와 불화하고 맙니다. 정확하게 말하면, 불화해야 한다고 믿습니다. 참을 수 없으니 뭐라도 쓰자. 그렇게 시 한 편을 쓰니 한 편을 더 쓰고 싶어졌습니다. 무엇보다 그 과정이 재밌었습니다. 말로 해서는 안 되는 것과 말이라도 해야 하는 것이 무엇인지, 쓰는 사람에게 어떤 책임이 있는지도 배우게 되었습니다. 더 열심히 배우라는 뜻으로 저의 이름을 불러주신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럴 동력을 불어넣어 준 문화일보와 심사위원들께 감사를 드립니다.

많은 이들의 도움으로 이때까지 살아왔습니다. 나에게 쓰는 행위의 기쁨을 몸소 알려준 엄마, 김분숙 씨. 고맙고 사랑하고 존경해요. 동생 영훈과 지호, 부족한 누나 언니를 늘 믿어주어 고마워. 시골에 내려갈 때마다 저를 푸짐하게 먹이고 키워준 할머니와 이모들, 이모부들, 삼촌, 모든 친척들에게 감사합니다. 나와 함께 거침없이 흔들려준 친구들아, 고맙고 보고 싶다. 지난 한 해 동안 여러 수업을 기웃거리며 많이 배웠습니다. 김선오 시인님, 김근 시인님, 김준현 시인님, 박소란 시인님. 문학을 좋아할 줄만 알았지 쓸 줄은 몰랐던 제 어설픈 시들을 애정으로 들여다봐 주셔서 감사합니다. 존재만으로 기쁨과 감탄을 주는 고양이 망고, 우리 건강하자. 밤비야, 여전히 너를 기억하고 있어. 그리고 내게 사랑이 무엇인지, 사랑이 무엇을 가능케 하는지 알려준 재희에게 온 마음을 건넵니다. “어느 날 갑자기 네가 호빵맨이 되어서 사람들이 네 얼굴을 뜯어먹는다면 어떨 것 같아?” 같은 질문들에 진지하게 대답해주는 당신이 있어 나는 살아갈 수 있어요.

△강지수. 1994년 서울 출생. 경희대 국제통상·금융투자학과. 출판 편집자로 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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