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What - 유전자 가위 치료제, FDA 승인

英 이어 美서 ‘카스게비’ 허가
유전자가위 기술 치료제론 처음

중증 겸상 적혈구 빈혈증에 특효
치료 한 번에 영구적 효과 기대

유전자 편집에만 29억 비용부담
치료가능센터도 美 내 9곳 불과




최근 3세대 유전자 가위인 ‘크리스퍼’로 유전자를 편집해 질병을 고치는 치료제가 영국에 이어 미국에서도 승인을 받아 주목된다. 미국에서 유전자 가위 기술을 이용한 치료제가 승인된 건 이번이 처음으로, 앞으로 더욱 효과적인 새 치료법을 통해 희귀병을 정복하는 시대가 열릴 것이란 기대감이 커지고 있다. 반면 치료에 소요되는 과도한 비용·시간과 복잡한 치료과정, 기업 간 특허권 분쟁 등으로 인해 당장 많은 환자에게 혜택이 돌아가기는 쉽지 않다는 한계도 지적된다.

◇첫 유전자 가위 치료제로 희귀병 정복되나=3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미국 식품의약국(FDA)은 지난달 8일(현지시간) 유전자 가위 치료제 ‘카스게비’(미국명 엑사셀) 사용을 승인했다. 미국 버텍스 파마슈티컬스와 스위스 크리스퍼 세러퓨틱스가 공동 개발한 겸상 적혈구 빈혈증 치료제 엑사셀의 허가 심사를 승인한 것. 유전자 가위 기술을 이용한 치료제가 FDA 승인을 받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지난해 11월 영국 정부가 세계 최초로 카스게비의 조건부 판매를 허가한 지 3주 만이어서 업계 안팎의 관심을 끌고 있다. 치료제는 앞으로 12세 이상 중증 겸상 적혈구 빈혈증 환자를 대상으로 미국 내에서 사용할 수 있다. 업계 관계자는 “카스게비에 사용된 크리스퍼 유전자 가위는 3세대 유전자 교정 기술로, 2020년 노벨화학상을 받은 기술”이라며 “특정 DNA에 결합하는 유전 물질과 해당 부위를 잘라내는 효소 단백질을 결합한 형태”라고 설명했다.

겸상 적혈구 빈혈증은 헤모글로빈을 암호화하는 유전자 염기가 돌연변이를 일으켜 생기는 병이다. 염기 이상으로 적혈구가 낫 모양으로 변해 혈관을 막거나 산소 전달 능력을 떨어뜨린다. 이후에는 혈관 폐쇄성 위기 같은 심각한 합병증을 동반한다. 신체 통증 외에 뇌출혈이나 신장·심장 기능 장애 등을 부를 수 있으며, 지금까지는 주기 수혈 말고는 영구적 치료 방법이 없었다. 전 세계적으로 500만 명 정도 환자가 있고, 미국에서만 환자가 10만 명에 달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이번에 FDA 승인을 받은 엑사셀은 겸상 적혈구 빈혈증의 근본적 치료제로 기대된다. 환자의 골수에서 혈액 줄기세포(조혈모세포)를 채취해 몸 밖에서 크리스퍼 유전자 가위로 헤모글로빈 생성을 막는 ‘BCL11A’ 유전자를 없앤 뒤, 다시 환자의 몸 안에 주입하는 방식으로 치료가 이뤄진다. 한 번의 치료로 영구적인 효과가 유지될 것으로 기대를 모은다. 니콜 베둔 FDA 생물의약품평가연구센터 사무국장은 “겸상 적혈구 빈혈증은 희소한 동시에 생명을 위협하는 질환으로, 새로운 치료제를 승인할 수 있게 돼 기쁘다”며 “유전자 치료는 치료법이 마땅치 않은 희귀 질환을 앓고 있는 환자들에게 더욱 효과적인 치료법을 제시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크리스퍼 유전자 가위 기술 특허를 보유한 김진수 싱가포르국립대 의대 교수는 “인류가 달에 간 것보다 더 큰 역사적 사건이다. 사람의 DNA를 고쳐서 질병을 치유하는 새로운 시대가 열리게 된 것”이라고 평가했다.

◇새 치료법, 당장 많은 환자에게 적용은 어려워=새로운 치료법에 대한 혜택을 당장 모든 환자가 누릴 수 있는 것은 아니라는 한계도 있다. FDA와 버텍스 측에 따르면 엑사셀을 활용한 치료를 받을 수 있는 환자는 그리 많지 않다. FDA는 미국 내에서만 2만 명 정도 환자가 치료를 받을 수 있을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여러 제약으로 인해 현실적으로 치료 가능한 환자는 더 적을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우선 치료에 필요한 비용 부담이 상당하다. 버텍스는 엑사셀을 이용한 유전자 편집에만 220만 달러(약 29억 원)의 비용이 필요할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 막대한 비용 부담이 치료의 장애물로 작용하는 셈이다. 다만 한 번의 치료만으로 병을 고칠 수 있어 추가 비용이 들지 않고, 보험이 적용된다면 환자의 부담금이 줄어들 것이란 관측도 있다.

아울러 돈이 있는 환자라고 해서 전부 치료를 받을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미국에서도 단 9곳의 의료 기관만이 치료를 제공할 수 있어 접근성이 크게 떨어진다. 버텍스는 “향후 치료 센터를 50곳까지 늘릴 계획”이라고 했지만, 적지 않은 시간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센터 1곳이 1년에 치료할 수 있는 환자 수도 5∼10명 정도가 한계여서, 50곳까지 센터가 늘어도 1년에 치료할 수 있는 환자 수는 500명 정도에 불과하다.

치료를 받게 되더라도 힘든 치료 과정이 남아 있다. 엑사셀을 이용한 치료는 환자 골수 줄기세포를 채취하는 것부터 시작인데, 충분한 줄기세포를 얻는 데에만 몇 달이 걸린다. 채취한 줄기세포를 크리스퍼 유전자 가위로 편집하는 데에도 4달 정도가 추가 소요된다. 편집한 새 줄기세포를 환자 골수에 주입하기 위해선 화학요법을 통해 환자 골수를 완전히 제거하는 까다로운 작업도 해야 한다. 이 기간 환자 면역체계가 완전히 사라지기 때문에 한 달 이상 병원에 입원해야 한다.

미국 뉴욕타임스는 “새 치료법은 겸상 적혈구 빈혈증 발병률이 높은 흑인에게는 접근성이 떨어지고 해외, 특히 아프리카의 수백만 환자에게는 여전히 딱히 치료법이 전혀 없다”고 지적했다.

한편 엑사셀의 원천 기술을 두고 유전자 가위 기업들이 각자 특허권을 주장하고 있어 기술료 전쟁이 벌어질 것으로 관측된다. 미국 매사추세츠공대(MIT)와 하버드대가 설립한 브로드연구소와 미국 UC버클리대, 국내 유전자 교정 기술 기업 툴젠 등이 크리스퍼 기술 특허권을 주장하며 소송전이 격화할 것으로 전망된다.

최준영 기자 cjy324@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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