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중동 ‘석유없는 미래’ 준비한다
한국의 ‘작은 중동’ 가보니
이태원 사원엔 금요일마다 인파
답십리 車부품수출단지 업무분주
“알라후 아크바르(알라는 위대하다).”
금요일인 지난 5일 오후 1시쯤 서울 용산구 한남동 이슬람중앙성원이 붐비기 시작했다. 이슬람교에서 일주일 중 가장 큰 예배가 있는 날이다. 이들에게 주일은 금요일이다. 1000여 명이 넘는 이슬람 교인이 몰려 예배당은 발 디딜 틈이 없었다. 예배를 주관하는 이맘(이슬람 성직자)의 지휘에 맞춰 신도들은 연신 절과 기도를 올렸다.
이태원역에서 오르막길을 오르다 보면 이국적인 느낌이 물씬 풍기는 이곳에 1976년 문을 연 한국 최초의 이슬람 성원이 나온다. 이슬람교를 국교로 가진 경우가 많은 중동인들이 이곳에 모여 산다. 지난해 10월 기준 사우디아라비아인 232명, 이라크인 83명, 이란인 78명 등이 성원이 있는 용산구에 거주 중이다. 주변에는 할랄(아랍어로 ‘신이 허용한 것’) 음식을 파는 가게가 즐비하다.
이슬람 교리에 따라 하루 5번 이슬람 성지인 메카를 향해 기도를 드려야 하는 중동 사람들은 국적을 불문하고 이곳에 모여 예배를 보는 것이 일과 중 하나다. 아랍에미리트(UAE)에서 온 칼레드 사이프(17) 군은 “매일 아버지와 성원을 찾고 있다”면서 “신실한 신앙생활이 삶의 이유”라고 했다.
이들이 세계 많은 나라 중 한국을 선택한 이유는 안전 때문이다. 모국에 만연한 내전, 테러 등의 위협으로부터 벗어나 총기 소유 등이 허용되지 않은 국가를 찾아왔다는 이야기다. 한국에 온 이들은 주로 성원 인근에서 할랄 푸드 식당, 외국 식료품 상점, 여행사업 등에 종사한다. 2010년 아프가니스탄에서 이주해 할랄 정육점을 운영하고 있는 모하마드(38) 씨는 “2008년 한국에 도착한 친형을 시작으로 지금은 8인 대가족 모두가 한국에서 살고 있다”고 했다.
◇한국의 작은 중동, 답십리 = 종교가 아니라 사업으로 묶인 또 다른 ‘작은 중동’도 있다. 동대문구 답십리동에 위치한 자동차부품 수출 단지는 오후 4시에 눈을 뜬다. 시리아 등 중동과의 시차를 고려해 오후에 출근해 새벽까지 업무를 봐야 해서다. 중동 지역에 현대·기아 등 국산 차들이 많이 수출돼 있어 현지 수요를 맞출 필요가 있다.
알하미디 모하미드(44) 씨도 그중 하나다. 모하미드 씨는 2003년 한국에 와 20년 넘게 자동차 부품을 수출하는 일을 하고 있다. 시리아에 있는 대가족 40여 명이 그가 한국에서 보내주는 돈으로 생활을 이어가고 있다고 한다. 모하미드 씨는 “시리아 공무원의 한 달 월급이 한국 돈으로 3만5000원 정도”라며 “많은 돈을 보내지 않아도 가족 40명이 1년간 먹고살 수 있다”고 말했다.
모하미드 씨는 한국에 오면서부터 이슬람교를 사실상 잊었다고 했다. 이곳의 중동인들은 종교적 색채가 옅은 대신 사업가로서의 정체성이 더 강하다. 과거 한국에서 돈을 벌기 위해 파독됐던 광부·간호사들처럼 타국에 적응하고 모국에 돈을 부치는 생업을 더 중요시한다는 설명이다. 2000년에 넘어와 한국인과 결혼해 지금은 귀화까지 마친 이란 출신 강성민(45·본명 페리) 씨도 마찬가지다. 강 씨는 한국어를 배우며 한국인으로서의 정체성을 키워갔다. 한국에 처음 왔을 때는 은행에서 간단한 업무를 보는 일조차 어려웠지만, 지금은 아내의 도움 없이도 한국어로 웬만한 소통이 가능할 정도라고 한다. 강 씨는 “지난해 7월부터 모바일 게임 사업도 새로 시작했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이들은 자신의 뿌리를 잊지 않는다. 모하미드 씨는 1년에 한 번씩 시리아·이라크 등 아랍권 이민자들을 집에 초대해 음식을 베풀고 있다. 아랍인들은 자신의 동포가 다치거나 힘든 일을 당했을 때 십시일반 돈을 모아 품앗이식으로 도와주거나, 형편이 어려운 사람을 집으로 초대해 식사를 대접하는 문화가 있다고 한다. 인근의 한 한국인 사장은 “중동에서 오는 외국인 바이어와 답십리에 자리를 잡고 이들을 응대하는 아랍인들이 이 단지를 먹여 살리고 있다”고 말했다.
전수한·박상훈·김린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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