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가 가방에 몰래 녹음기
‘가만있어 인간아’ 등 녹취

大法 “교사의 수업 중 발언은
‘공개되지 않은 대화’에 해당”

아동학대 여부는 판단 안해


부모가 자녀 가방에 몰래 넣어둔 녹음기를 통해 녹취된 교사의 발언 등은 아동학대 사건의 증거로 사용할 수 없다는 대법원 판단이 나왔다.

대법원1부(주심 대법관 오경미)는 11일 아동학대 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초등학교 교사 A 씨에 대한 상고심에서 벌금 500만 원을 선고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서울동부지법으로 돌려보냈다.

대법원은 “피해 아동의 부모가 몰래 녹음한 교사의 수업시간 중 발언은 ‘공개되지 않은 대화’에 해당한다”면서 “이 사건 녹음파일 등은 공개되지 않은 타인 간의 대화를 녹음한 것이므로 증거 능력이 부정된다”고 판시했다. 통신비밀보호법 14조 1항은 ‘누구든지 공개되지 아니한 타인 간 대화를 녹음하거나 전자장치 또는 기계적 수단을 이용하여 청취할 수 없다’고 규정한다. 대법원 관계자는 “이번 판결은 교사의 수업시간 중 교실 내 발언을 상대방(학생)이 아닌 제3자 즉, 학부모가 녹음한 경우 증거로 사용할 수 없다는 점을 명확히 한 데 의의가 있다”고 설명했다.

앞서 1·2심에서는 학부모가 몰래 녹음한 파일의 증거 능력을 인정한 바 있다. 담임교사가 교실에서 한 발언은 공공적인 성격을 가지기 때문에 ‘공개되지 않은 대화’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취지다. 1·2심은 이에 따라 A 씨의 아동학대 혐의를 유죄로 판결했다.

서울 광진구 한 초등학교 담임교사였던 A 씨는 2018년 3월 전학 온 3학년 아동을 대상으로 “저쪽에서 학교 다닌 거 맞아?” “가만있어 인간아. 너 때문에 선생님 이마에 주름 생겨. 나 보톡스 맞기 싫거든” 등 16차례에 걸쳐 학대성 발언을 한 혐의로 기소됐다. 기소 시 아동의 학부모가 몰래 녹음한 파일이 증거로 사용됐다. 대법원은 A 씨의 발언이 정서적 학대에 해당하는지에 대해서는 별도로 판단하지 않았다.일각에서는 이번 판례가 비슷한 방식으로 교사의 발언을 녹음해 신고한 웹툰 작가 주호민 씨 자녀 사건 등에도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김무연 기자 nosmoke@munhwa.com
김무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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