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역사 속의 This week
“해적이다!” 2011년 1월 15일, 화학제품을 싣고 항해 중이던 삼호주얼리호(1만t급)는 인도양에서 소말리아 해적을 만났다. 한국인 8명을 포함해 선원 21명이 해적에게 붙잡혔다. AK 소총과 휴대용 로켓으로 무장한 이들은 선원을 위협해 배를 끌고 소말리아로 향했다. 아덴만 해역에서 한국 선박 보호 임무를 맡았던 청해부대가 현장으로 급파됐고, 피랍 7일째인 21일 새벽 4시 58분(현지시간) 인질 구출 작전이 시작됐다. 작전명은 ‘아덴만 여명’이었다.
청해부대 최영함은 해적들이 눈치채지 못하게 거리를 유지하며 기회를 기다렸다. 18일 몽골 선박을 추가로 납치하기 위해 해적 일부가 소형 보트를 타고 내리자 링스헬기를 띄우고 공격했다. 해적들과의 교전 속에 고속단정에 타고 있던 우리 대원 3명도 부상을 입었다. 이후 해적 모선(母船)이 가까이 다가오자 더 이상 지체할 시간이 없다고 판단한 군은 21일 아덴만 여명 작전에 돌입했다.
해군 최정예 특수부대 UDT/SEAL(해군특수전전단) 대원들은 고속단정 3척에 나눠 타고 삼호주얼리호로 접근했다. 이들이 해적의 눈에 띄지 않고 무사히 승선할 수 있도록 하늘에서는 링스헬기가 갑판을 향해 K6 기관총으로 위협사격을 가하고 최영함도 같이 엄호사격을 했다. 기습적인 공격에 놀란 해적들은 곳곳으로 흩어졌다.
사다리를 걸고 6m 높이의 배에 오르기 시작해 6분 만에 대원 15명이 승선했다. 갑자기 나타난 해적을 저격하고 빠르게 이동해 4층 선교를 장악했다. “대한민국 해군입니다. 안심하십시오.” 바닥에 엎드려 숨죽이고 있다가 목소리를 들은 인질들은 “이제 살았구나!” 안도했다. 대원들은 50여 개의 격실을 샅샅이 수색해 해적들과 치열한 총격전을 벌여 13명 중 8명을 사살하고 5명을 생포했다. 긴박하고 치밀하게 진행된 작전은 인질 전원을 구출하며 4시간 58분 만에 성공적으로 끝이 났다. 해외에 파병된 군이 군사 작전을 통해 우리 국민을 구출한 첫 사례로 평가된다.
당시 운항 속도를 늦추는 등 기지를 발휘해 작전 성공을 도와 ‘아덴만의 영웅’으로 불린 석해균 선장은 6발의 총상을 입은 상태였다. 수술받고 10개월 만에 퇴원한 그는 2012년부터 8년간 해군 안보교육 교관으로 활동했다. 현지로 파견돼 석 선장을 국내로 이송하고 수술했던 이국종 아주대 교수는 지난달 국군대전병원장으로 임명됐다. 그는 한 방송에서 아덴만 여명 작전을 회고하며 이렇게 말했다. “10여 년 전 목숨 걸고 작전을 수행했던 대원들은 지금도 그 자리에서 일합니다. 우리 사회를 버티는 가장 큰 힘은 이처럼 자기 일을 묵묵히 해나가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합니다.”
김지은 기자 kimjieun@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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