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출판 수출 3.0 시대… ‘K-북’ 최전선의 에이전시

‘에릭양 에이전시’ 양윤정 차장

김초엽·천선란 미국 진출 눈앞
김, 동시에 두 권 판권 계약


한국 책 수출이 새로운 전기를 맞고 있다. 정부 지원 중심의 1세대, 소수의 해외 에이전시에 의존하던 2세대를 넘어 이른바 출판 수출 3.0 시대를 맞고 있다. K-콘텐츠의 선전으로 다양한 영역에서 ‘K-스토리’ 수요가 높아지고, 그 원천인 한국 책에도 관심이 집중되고 있는 것. 출판 에이전시들도 수출에 적극적으로 뛰어들고 있다. 해외 도서와 국내 출판사 간 계약 성사를 이끌어 온 ‘보이지 않는 손’이었던 이들은 쌓아온 네트워크와 노하우를 이제 역으로 활용한다. 국내 대표 에이전시는 탄탄한 영미권 커넥션으로 ‘K-북’ 붐을 이끌고, 과학소설(SF)에 대한 애정과 취향을 앞세운 신진 에이전시는 다채로운 작품과 새로운 작가들을 발굴하고 있다. 다변화, 다양화하는 K-북 최전선의 풍경을 들여다본다.

혜민 스님의 ‘멈추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왼쪽부터 순서대로)과 BTS의 ‘비욘드 더 스토리’, 120여 개국에 수출한 김은주 작가의 ‘1㎝’ 시리즈는 모두 에릭양 에이전시를 통해 전 세계에 소개됐다. 이어, 그린북 에이전시를 통해 미국 출간을 앞두고 있는 박서련 작가의 ‘마법소녀 은퇴합니다’와 김보영 작가의 ‘종의 기원’, 정보라 작가의 ‘그녀를 만나다’의 영어판 표지.
혜민 스님의 ‘멈추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왼쪽부터 순서대로)과 BTS의 ‘비욘드 더 스토리’, 120여 개국에 수출한 김은주 작가의 ‘1㎝’ 시리즈는 모두 에릭양 에이전시를 통해 전 세계에 소개됐다. 이어, 그린북 에이전시를 통해 미국 출간을 앞두고 있는 박서련 작가의 ‘마법소녀 은퇴합니다’와 김보영 작가의 ‘종의 기원’, 정보라 작가의 ‘그녀를 만나다’의 영어판 표지.


에릭양 에이전시에서 10년 넘게 영미권 책 수입 업무를 맡아 온 양윤정(36) 차장. 요즘 가장 많이 받는 질문은 ‘‘오징어게임’이나 ‘기생충’ 같은 책 혹시 있나요?’다. 에릭양은 지난 30여 년간 수만 권의 외국 도서를 국내 출판사와 연결해 온 국내 대표 출판 에이전시다. 요한 하리의 ‘도둑맞은 집중력’(어크로스)과 월터 아이작슨의 ‘일론 머스크’(21세기북스) 등이 모두 에릭양을 통해 국내 판권 계약을 맺었다. 즉, 외국 책을 들여오는 게 주된 일인데, 언젠가부터 해외 파트너들이 한국 책을 궁금해하고 찾고 있다는 것이다.

지난 19일 서울 서초구 에릭양 에이전시에서 만난 양 차장은 “K-콘텐츠 시장이 성장하면서 모든 영역에서 ‘한국 이야기’ 수요가 생겨났고, 그 원천인 책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판권 문의는 늘 우리가 먼저 하던 거였는데, 반대인 상황이 종종 발생했다”고 덧붙였다. “‘K-북’이 가능하다는 확신이 들었어요. 이제 우리 책을 외국에 팔아야 할 때가 왔고, 저 같은 에이전트의 역할이 정말 중요합니다.”

2022년 가을, 출산 휴가에서 복귀한 양 차장은 본격적으로 수출팀을 꾸렸다. 에릭양은 세계에서 가장 큰 출판 시장을 보유한 미국의 에이전시, 출판사들과 오래 교류해 왔다. 양 차장은 탄탄하고 넓게 구축된 이 네트워크를 200% 활용했다. “영미권 수출에 집중하고 있다”고 강조한 그는 “그들의 거래방식이나 출판문화, 마케팅 전략을 잘 알아서이기도 하고, 그 시장이 가장 크고 파급력이 있어서다”라고 이유를 설명했다.

불과 1년 만에 올린 성과는 놀랍다. 글로벌 출판 ‘빅 5’로 꼽히는 아셰트, 펭귄 랜덤하우스, 맥밀런, 하퍼콜린스, 사이먼앤드슈스터 등과 총 9건의 계약을 성사시켰다. 9건 모두 영미권과는 최초 계약인 것도 의미가 큰데, 세부 내용도 기대 이상이다. 밀리언셀러 저자 김수현의 ‘나는 나로 살기로 했다’는 펭귄 랜덤하우스와 판권 계약 후, 올가을 미국을 비롯해 영국, 독일, 이탈리아, 스페인 등 20개국에서 출간된다. 또 국내외 팬층이 확고한 과학소설(SF) 작가 김초엽과 천선란의 미국 진출도 눈앞이다. 김초엽 작가는 ‘지구 끝의 온실’과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 두 권이 동시에 판권 계약을 맺었는데, 이는 한국 저자 데뷔작으로는 최초다. 선인세는 모두 억대로 알려져 있다.

양 차장은 베스트셀러 ‘불편한 편의점’을 잇는, 이른바 ‘슬로 텐션’ 소설도 K-북의 핵심축으로 주목하고 있다. 그는 이를 ‘K-힐링’이라 명명하더니, “한국만의 힐링 요소가 담긴 독특한 장르라고 본다”고 덧붙였다. 이미 두 건의 ‘K-힐링 북’이 세계 시장 진출을 준비 중이다. ‘비가 오면 열리는 상점’과 ‘연남동 빙굴빙굴 빨래방’이 지난해 영어권 판권 계약을 마쳤다.

양 차장은 ‘한국적인 것’이 흥미롭고 탁월한 것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는 시대를 맞아, 출판 에이전트 역할에만 머물지 않겠다고 했다. 최근엔 웹툰, 웹소설 시장에도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운동선수들 계약에 활약하는 ‘슈퍼 에이전트’처럼 되고 싶어요. 우선, 한국 저자를 가장 잘 이해하는 에이전트가 되어야겠죠. 한국 책을 찾을 때 해외에서 가장 먼저 떠올리는 에이전트 말이에요.”

박동미 기자 pdm@munhwa.com



“팬심으로 시작한 영미권 도전… ‘한국 SF’ 매력에 현지도 열광”

‘그린북 에이전시’ 박진희 실장

“김보영 작가 알리고 싶어 시작
정보라·박서련 등 진출 도와”


그린북 에이전시는 장르소설·과학소설(SF) 작가 전문 에이전시다. 작가 일정부터 저작권 관리, 지식재산권(IP) 영업과 해외 수출까지 모두를 담당한다. 전 사원 4명의 소규모 업체이지만 실적은 작지 않다. 김보영 작가를 비롯해 박문영, 박서련, 정보라, 듀나 작가 등 총 24명의 소속 작가 작품이 연이어 해외에서 출간되며 호평을 얻고 있다.

이달 말엔 정보라 작가의 ‘그녀를 만나다’ 영어판 ‘Your Utopia’가 미국의 대형 출판사 아셰트에서 출간되고 박서련 작가의 ‘마법소녀 은퇴합니다’가 오는 4월 하퍼콜린스에서 출간된다. 올 하반기엔 김성일 작가의 ‘메르시아의 별’ 3부작이 맥밀런의 임프린트 ‘토르’에서 출간될 예정이다.

그린북 에이전시는 2006년 시작했다. 다른 에이전시 출신인 김시형(51) 대표는 창업 초반 해외 도서 수입 업무를 주로 하다 2010년대 중반 들어 수출에 뛰어들기로 마음먹고, 같은 에이전시에서 절친했던 후배 박진희(41) 실장과 함께 일하기 시작했다.

22일 서울 중구 문화일보에서 만난 박 실장은 “시작은 김보영 작가였다”고 했다. 대한민국 대표 SF 작가인 김보영은 김 대표의 ‘최애’. 김 대표가 “김보영이라는 천재 작가가 있다”며 박 실장에게 소개했고, 이내 그 매력에 빠진 둘은 “김보영을 수출하겠다”는 일념하에 뭉쳤다. 이어 2017년 김 작가와 전속 계약을 맺었고, 영미권 출판사들의 문을 두드리기 시작했다.

박 실장은 “영미권에 통할 것 같았다. 이승과 저승 등의 개념을 소설에 녹였는데, 영미권에선 이를 굉장히 흥미로워할 거라고 생각했다. 영화 ‘설국열차’ 시나리오 초안에 김 작가가 참여했다는 점도 미국 출판사들의 관심을 끌 것 같았다. ‘이건 된다’는 확신을 갖고 피칭에 나섰다”고 말했다. 그 결과 2019년 김 작가의 ‘저 이승의 선지자’ ‘당신을 기다리고 있어’ ‘당신에게 가고 있어’ 등 세 작품이 하퍼콜린스에서 출간됐다. 첫 수출 성과였다.

박 실장은 “정말 맨땅에 헤딩이었다”고 당시를 회고했다. “수입과 수출은 네트워크가 아예 달라요. 김 작가에 대한 ‘팬심’이 없었다면 버티기 힘든 고비들이 많았습니다.”

그린북은 장르소설·SF에 집중하는 에이전시다. 박 실장은 한국 특유의 ‘소프트 장르’ 소설의 전망은 밝을 거라고 예상한다. “영미권은 SF와 일반 문학 구획이 매우 선명해요. 장르소설이라 하면 ‘반지의 제왕’ 같은 소설만 생각하지요. 반면 한국의 SF는 그 구분이 그렇게 강하지 않아요. 현실적 배경에 장르적인 설정을 넣는 게 특징입니다. 일반 문학과 장르 문학 그 어느 쪽에도 들어가지 않는 젊은 해외 독자들에게 어필할 수 있는 게 한국의 장르소설입니다.”

하지만 아직 갈 길이 멀다고 그는 말했다. “물론 상황은 좋아지고 있어요. 지난해 서울에서 열렸던 국제도서전에 해외 바이어들이 다수 온 것을 보면서 많이 바뀌었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하지만 아직은 시범 단계예요. 번역서 비중이 3%를 넘기지 않는 영미 문학계의 ‘3%의 딜레마’도 아직 유효하지요. 앞으로 5년 남짓의 기간이 매우 중요하다고 봅니다. 이 기간 우리 작가들의 매력을 더욱 어필해야지요. 잘 살아남아 보겠습니다.”

박세희 기자 saysay@munhwa.com
박동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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