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이터 수집에 대한 욕구는 열망을 넘어 종교적인 수준으로 발전했다. 체온, 걸음, 수면 사이클, 칼로리 섭취, 뇌파 등이 몸에 장착된 센서에 의해 기록되고 주변 환경에 설치된 센서들도 우리를 데이터로 변환한다. 하지만 수집된 데이터가 우리를 더 잘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줄 것이란 생각은 착각이 아닐까?
2010년 ‘피로사회’를 출간해 세계적인 반향을 일으키고 최신작 ‘서사의 위기’ ‘정보의 지배’ 등으로 우리 사회를 예리하게 통찰한 재독 철학자 한병철의 신간. 신자유주의 체제에서 부자와 가난한 자의 격차가 점점 더 커짐에도 왜 혁명이 더 이상 일어날 수 없는지 탐구한다. 우리 시대를 진단하는 15편의 에세이와 독일 저널리스트, 연극 연출가와 나눈 3편의 인터뷰로 구성됐다.
한병철은 신자유주의의 ‘빅 브러더’는 ‘빅 데이터’라고 주장한다. ‘빅 데이터’ 같은 스마트 권력은 사람들을 억압하고 금지하는 대신 밀착하고 아부함으로써 자유를 착취한다. 아무도 감시당한다고 느끼지 않지만 스마트폰, 애플 워치, 냉장고, 구글 글라스에 의해 감시당하고 있는 것이다.
그가 생각하는 ‘피로사회’가 한국에서 성공할 수 있었던 이유, 금속공학자에서 철학자가 된 이유 등 진솔하고 인간적인 이야기가 인터뷰에 담겨 있는 것도 책이 재미있게 읽히게 한다. 212쪽, 1만68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