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주철환의 음악동네 - 홍이삭 ‘바람의 노래’
“잘 알지도 못하면서 함부로 나대지 마.” 상대도 응수한다. “지금은 맞고 그때는 틀리다니 도무지 믿을 사람 하나 없네.” 진흙 바닥에서 허우적거리는 그 순간이 오히려 예술이 탄생하는 최적의 환경일 수도 있다. 실적이 증명한다. 홍상수 감독의 ‘잘 알지도 못하면서’(2009)는 제62회 칸 영화제 감독주간에 초청받았고 ‘지금은맞고그때는틀리다’(2015)는 제68회 로카르노 영화제에서 황금표범상을 받았다.
홍 감독의 신작 ‘여행자의 필요’가 제74회 베를린국제영화제 경쟁 부문에 공식 초청됐다. 이런 제목은 또 어떻게 나왔을까. 인생이라는 여행길에 우리가 정녕 필요한 건 뭘까 하는 근본적 질문이 실마리가 됐을 거라 짐작한다. 갑자기 소설 속 ‘어린 왕자’가 걸어온다. “사람들은 급행열차에 올라타지만 자기가 무엇을 찾으러 떠나는지 몰라. 그래서 법석을 떨며 제자리에서 맴돌고 있는 거야. 그럴 필요 없는데.” 나는 채집목록에서 한영애의 노래 하나를 끄집어낼 필요를 느꼈다. ‘말 못할 설움과 말 못할 눈물은 차창 밖에 버리고 가자’. 타본 지 오래된 ‘완행열차’가 이 노래의 제목이다.
말 못할 설움과 말 못할 눈물이 노래가 되고 영화가 된다. ‘싱어게인3’(JTBC) 결승전(1월 18일 방송)에서 최후의 두 사람(홍이삭(사진)·소수빈)이 격돌(?)하는 장면을 보다가 오버랩된 영화는 50년 전(1974) ‘암흑가의 두 사람’(Deux hommes dans la ville)이다. 영화에서 두 사람은 따듯한 심성을 지닌 보호관찰관(장 가뱅)과 운명의 사슬에 걸린 사형수(알랭 들롱)다. 기억에 남는 건 처음과 끝 장면이다. 둘 다 관찰관(영화 속 이름은 제르망)의 독백이다. 어둠 속에서 회상이 시작된다. “난 그런 판결을 다시 보고 싶지 않다. 난 정의의 이면을 보았다. 법은 보기보다 난해하다. 연극을 위해 짜인 각본 같다.” 아무리 갖다 붙이기를 잘해도 가수 오디션과 범죄영화가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자신이 응원하는 가수가 순위에 오르지 않았을 때 열혈시청자는 분노하고 의심한다. 실제로 당일 댓글 광장에는 한숨과 함성이 휘몰아쳤다. 심사위원을 향한 질타도 거침이 없었다. ‘도대체 기준이 뭐냐’ ‘그때는 최고라 해놓고 지금은 왜 낮은 점수를 주느냐’. 최후의 두 사람을 1등과 2등으로 가른 노래들을 다시 들어볼 필요가 생겼다.
그날 우승자가 소수빈이었다면 오늘 내가 띄울 노래 제목도 달라졌을 것이다. 소수빈은 최후의 카드로 박성신의 ‘한 번만 더’(1989)를 골랐다. ‘이렇게 쉽게 끝나는 건가 이것이 우리의 마지막 모습인가’. 그러나 그날의 오디션이 그들의 마지막 모습이 아니란 건 본인도 잘 알 것이다. 순전히 결과론적으로만 볼 땐 응원해준 팬들에게 하고픈 말이 노래 마디마디에 절절하다. ‘멀어지는 나의 뒷모습을 보면은 떨어지는 눈물 참을 수가 없다고 그냥 돌아서서 외면하는 그대의 초라한 어깨가 슬퍼’. ‘암흑가의 두 사람’의 마지막 내레이션을 반면교사로 삼자. “그는 마지막 인내에서 실패했다.”

우리는 왜 노래를 부를까. 음악여행자의 필요는 무얼까. 바람이 건네주는 답은 무심한 듯 명료하다. ‘실패와 고뇌의 시간이 비켜 갈 수 없다는 걸 우린 깨달았네 이제 그 해답이 사랑이라면 나는 이 세상 모든 것들을 사랑하겠네’(‘바람의 노래’).
작가·프로듀서·노래채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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