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작품과 함께 발행되는 비매품
인터뷰·단편 등 구성 알차 인기
입소문에 출판사도 공들여 제작
문학동네, 해외작가 4명 조명한
‘올 어바웃 북’으로 팬층 넓혀
휴머니스트의 ‘흄세’ 시리즈
매거진 형태 소책자 동시 발간
“이거 진짜 공짜예요?” “이거 읽고 빠져서 시리즈 전권을 샀어요!” 비매품인데 너무 알차다. 비매품이라 더 갖고 싶다. 요즘 문학 독자들 사이에선 소설책의 별책부록과 같은 소책자가 인기다. 작가와 작품에 대한 설명만 있어도 충분한데, 그 정도 수준이 아니다. 작가를 입체적으로 이해할 수 있도록 각종 인터뷰 기사에 사적인 정보, 소설을 먼저 읽은 다른 작가들의 리뷰, 소설 주제에 맞춰 따로 창작한 짧은 소설까지 실려 있다. 돈 주고도 살 만한 탐나는 구성에 소책자만 따로 모으는 독자도 있고, 동네 책방에선 책 홍보물의 역할도 한다. 책 한 권 만드는 공력이 들지만, 출판사들의 투자가 늘어나는 이유다. ‘소설책+소책자’ 세트가 문학 시장 기본값이 될 지도. 재밌다고 입소문 난 소책자들을 수소문했다. 탄생 비화와 내용을 들여다본다.
◇“소설 이해 돕는 작가의 사생활”… 래빗홀 소책자= 인플루엔셜의 장르문학 브랜드 래빗홀은 최근 정보라 작가의 자전적 과학소설(SF) ‘지구 생물체는 항복하라’를 출간하며 흥미로운 소책자도 함께 펴냈다. 정 작가의 인터뷰를 시작으로 소설가 김살로메·해양환경단체 핫핑크돌핀스 조약골 공동대표의 서평, 그리고 정 작가가 ‘여성신문’에 연재한 ‘정보라의 월간데모’ 일부가 실렸다.
‘나는 싸우는 여성을 사랑한다’와 같은 정 작가의 생각이 담긴 칼럼들은 주목받는 SF 작가인 동시에 ‘시민 운동가’이기도 한 그의 다양한 면모를 뚜렷하게 드러낸다. 최지인 래빗홀 팀장은 “정 작가를 입체적으로 이해하는 데 도움을 주기 위해 만든 것”이라며 “소설이 해양 환경 오염과 장애, 노동 등 사회적 주제를 다루는 만큼 작가가 어떤 행동을 해왔는지를 설명하기 위한, 독자들을 위한 서비스북의 개념”이라고 설명했다.
◇“책 한 권 만드는 공력… 가격 매길 수 없어”… 문학동네 ‘올 어바웃 북’= 국내 대표 문학출판사 문학동네는 지난해에만 커트 보니것, 레이먼드 카버, 필립 로스, 이언 매큐언 네 작가의 작품 세계를 조명한 ‘올 어바웃 북’을 제작·배포했다. 흥미로운 건 한국문학에 강한 문학동네가 소책자는 해외문학에 더 집중하고 있는 점. 문학동네 해외문학팀의 윤정민 과장은 “독자들이 낯선 해외문학에 친근하게 다가가게 하는 게 목적”이라면서 “장기적으로 문학 독자를 늘리는 방법이라 믿는다”고 했다.
인쇄 부수는 소설 초판 부수와 비슷하다. 주로 온라인 서점 사은품 형태로 제공하며, 전자책으로는 소설 구매 여부와 상관없이 무료로 볼 수 있다. 그런데도 오프라인 매장에서 책을 구매한 독자들이 종이책 문의를 해온다. 지난해 서울국제도서전에서는 소책자와 소설을 합본한 특별판을 제작했는데, 2000부가 전량 판매되며 호응을 얻었다. 윤 과장은 “책 한 권 만드는 공력이 투입되지만 작품과 작가 홍보 역할까지 하기에 손익을 따질 수 없다”고 강조했다.
◇“소설보다 더 많이 ‘팔린’ 부록”… 열린책들 ‘가이드북’= 열린책들은 지난해 11월 미국 작가 폴 오스터의 장편소설 ‘4 3 2 1’ 출간 때 소책자 ‘폴 오스터 가이드북’을 함께 냈다. 작가 연보와 그간 한국에 출간된 책들에 대한 소개가 들어갔으며, 1960년대 미국 문화에 대한 설명도 사진 자료들과 함께 촘촘히 실렸다. ‘4 3 2 1’은 1947년생 주인공의 유년기부터 청년기까지, 네 가지 버전의 삶을 번갈아 보여주는 소설. 1960년대 반전 시위, 코미디 콤비 로럴과 하디 등 미국인에겐 익숙하지만 우리에겐 낯선 소재들이 다수 사용됐는데 가이드북에 이에 대한 설명도 상세하다.
‘폴 오스터 가이드북’은 본 소설보다 더 많이 나가 추가로 2000부를 찍었다. 권은경 열린책들 편집장은 “모든 소설에 가이드북을 만들 순 없지만 깊이 있게 소개하고 싶은 작가가 있다면 앞으로도 계속 만들어갈 계획”이라고 말했다.
◇“시 먼저? 해설 먼저? 읽고 싶은 것 택하세요” 시공사 소책자= 2020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미국 시인 루이즈 글릭의 전집 13권을 낸 시공사는 시집마다 이를 번역한 정은귀 한국외대 영미문학·문화학과 교수의 ‘옮긴이의 말’을 별도 책자로 만들어 넣었다. 평론가의 해설은 시집 뒤편에 싣는 게 보편적이지만, 이를 떼어내 시집엔 시만, 소책자엔 옮긴이의 말만 담은 것. 시와 해설 중 먼저 읽고 싶은 것을 선택해 읽도록 기획했다는 게 시공사의 설명이다.
시공사의 구민준 책임은 “사전 정보가 없는 시인의 시집이라면 시인을 먼저 알고 싶은 독자도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고 전했다. 최대한 독자의 입장에서 생각한 끝에 마련한 결과물이자 시공사로선 현대문학에 대한 과감한 투자이기도 했다. 독자들의 반응도 기대 이상. 시집을 통해서는 시만 순수하게 즐길 수 있어 좋다는 평과 함께, 옮긴이의 말이 담긴 소책자만 따로 묶어 책으로 만들어달라는 요청도 이어진다.
◇“고전문학-독자 거리 좁히기”… 휴머니스트 ‘매거진 흄세’= 1년에 세 번, 시즌제로 고전문학을 출간하는 휴머니스트 세계문학 브랜드 ‘흄세’. 2022년 창간 때부터 독특한 구성의 소책자 ‘매거진 흄세’를 발간해 주목받았다. 작품을 먼저 읽은 국내 인기 작가들의 리뷰와 시즌 주제에 맞춘 짧은 소설까지 실려 있다. 예컨대 ‘여성과 공포’를 주제로, 메리 셸리의 ‘프랑켄슈타인’, 이디스 워튼의 ‘석류의 씨’ 등을 펴냈던 시즌1에서는 강화길 작가의 리뷰와 최은영 작가의 짧은 소설이 실렸다.
휴머니스트 문학팀 이성근 차장은 “인문출판사에서 새로 시작하는 문학 브랜드여서 차별화 지점을 많이 고민했다”고 설명했다. 흄세는 6시즌 동안 30권의 책과 6권의 소책자를 발매했다. 책은 초판 평균 1만 권을 인쇄할 정도로 안정기에 접어들었고, SNS에는 매거진을 읽고 흄세 시리즈 전권을 다 샀다는 증언도 적지 않다. 출판사 측은 도서전과 동네 책방 등에 배포한 소책자가 홍보 역할을 톡톡히 했다고 전한다. 이 차장은 “판매 부수와의 관계를 명확한 수치로 증명할 수는 없지만, 소책자가 고전문학과 독자 사이 거리를 좁히는 데 분명 작지 않은 역할을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박동미·박세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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