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권혁주의 Deep Read - 총선 공약의 민주성

민주주의 정치는 대화와 약속 이행의 과정인데… 22대 총선은 국민과 교감 없는 일방적 선포일 뿐
정치 교체·서울 편입·저출생 대책 등 공론장 외면한 채 이슈 몰이… 교육·노동·연금개혁도 없어


4·10 총선이 50여 일 앞으로 다가왔다. 전국의 253개 지역구와 비례대표 47석을 포함해 300명의 국회의원을 선출하는 총선에 1000명이 넘는 사람이 예비후보로 등록하고 치열한 공천 경쟁을 벌이기 시작했다.

총선은 정당과 유권자가 양방향으로 소통하는 공론장이며 민주주의 정치 참여의 절정을 이루는 장이다. 하지만 이번 총선은 유권자와의 교감 없이 정당과 후보 측의 일방적 공약 선포의 장으로 전락하는 모습이 유독 두드러진다.

◇대화와 약속

본 선거가 시작되면 정당이나 후보는 매력적인 지역 맞춤 정책을 들고 유권자에게 한 표를 호소하지만, 일단 선출되면 상황이 바뀐다. 국회의원은 국가적 사안과 지역에 관련된 정책을 스스로 판단해 결정한다. 이 과정에서 대 주민 공약 같은 것은 증발해버리기 일쑤다. 따라서 정당과 후보의 정책적 공약을 선거 과정에서 냉정하게 판단하는 게 유권자의 중요한 과제로 떠오른다.

영국 옥스퍼드대의 스타인 링겐(Stein Ringen) 교수는 민주주의에서 정치는 대화와 약속의 과정이며, 궁극적으로 그 약속을 어떻게 지키는지가 민주주의 문화를 형성한다고 지적한다. 정치인이 국민에게 약속한 정책을 약속대로 시행하는지가 그 나라의 민주주의 문화와 건강성을 결정한다는 것이다.

민주주의 정치에서 대화는 정치인이 말하고 국민은 듣기만 하는 일방적인 것이 아니라, 국민의 목소리가 국정에 전달되는 ‘양방향’이어야 한다. 특히 이번 4·10 총선은 저출생·초고령화와 지방소멸 등과 같은 사회 구조적 변화를 겪고 있는 대한민국의 미래에 관해 대화를 나누는 진지한 공론장이어야 한다는 지적이 많다.

이를 전제로 여야 정당들이 제시하는 비전과 이를 실천하기 위한 공약에 대해 비판적으로 검토하고 실현 가능성을 따져 묻는 것은 매우 의미 있는 일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이번 총선의 승부를 가를 최대 격전지인 수도권에서 여야가 제시한 공약과 전략을 살펴보자. 전체 지역구 253석 가운데 121석이 몰려 있는 수도권은 21대 총선(2020년)과 대선(2022년)에서 각각 다른 정당에 승리를 안겨준 무당층·부동층 유권자가 가장 많은 지역이며 대한민국의 모든 쟁점 사안이 응축된 곳이다.

◇정치 교체론

수도권 총선에서 가장 두드러지는 첫 번째 화두는 ‘정치 교체’론이다. 본격적인 선거전이 시작되자 한동훈 국민의힘 비대위원장은 ‘운동권 특권정치 청산’을 총선 전략으로 제시했다. 전문가 집단을 정치의 전면에 내세워 지난 20년간 한국 정치를 주도한 운동권 출신의 정치인을 물리치고 총선 전체의 흐름을 주도하겠다는 의도가 읽힌다. 서울 중·성동에서 시작해 마포에 이르는 한강 벨트 지역에 정책 전문가를 내세워 더불어민주당 내 86 운동권의 대표적 정치인들에 맞서 구시대 정치의 청산을 시도하려는 구상도 엿보게 한다.

그러나 현재 공천 심사를 받는 국민의힘 후보들이 진정 구시대 세력에 맞서는 새로운 대안세력인지는 크게 확신이 가지 않는 게 사실이다. 특히 ‘운동권 특권정치 청산’이란 구호를 넘어 지역과 대한민국 미래의 비전이 무엇인지는 잘 보이지 않는다.

민주당 역시 정치 교체를 내걸고 있다. 친명(친이재명) 중심 세력인 97 한총련 출신 운동권이 친문(친문재인) 핵심을 구성하는 86 전대협 출신 운동권에 불출마나 용퇴를 압박하는 게 대표적이다. 이는 주사파 후배 운동권과 주사파 선배 운동권 간의, 혹은 친명과 친문 간의 권력투쟁으로 기능할 뿐 정치 교체의 원래 이상을 찾아보기는 힘들다.

또 하나의 흐름으로 양대 정당 심판을 부르짖는 제3지대 개혁신당도 정치 교체론과 맞닿아 있다. 그러나 개혁신당이 기득권을 타파하는 새로운 정당인지, 아니면 경쟁 구도에서 쫓겨난 정치인들의 도피처인지 유권자들은 의구심을 갖는다.

◇수도권 정책

수도권 총선의 또 다른 화두 중 하나는 김포·구리 등의 ‘서울 편입’론이다. 이 공약은 도심 지하철 구간의 지하화, 1기 신도시 지역 재건축·재개발을 위한 규제 완화 같은 지역 개발 공약과 함께 경기도 유권자의 기대심리를 자극한다.

하지만 해당 지역이 서울로 편입하게 된다면 그 지역주민에게 큰 편익을 줄지라도 남아 있는 경기도 시민과 서울 시민에게 또 다른 부담을 지우는 문제를 안고 있다. 서울 메가시티 공약은 더 근본적인 문제를 내포한다. 중앙정부-광역단체-시·군·구로 이어지는 현재의 지방자치제도와 지역주민의 직장·주거 등 생활방식과 커다란 괴리가 나타나는 것. 경기 도시의 서울 편입 공약을 제시한 국민의힘은 이번 기회에 지방자치 제도와 구조개혁에도 나설 수 있을까.

저출생·초고령화 사회에 대한 공약도 주요 화두 중 하나다. 민주당은 현행 아동수당을 기본소득으로 전환하고 신혼부부에게 가구당 10년 만기로 1억 원을 대출해 주며 3자녀 출산 시에는 대출금을 탕감한다는 정책을 제안했다. 집권당은 초·중·고 학생에게 연간 100만 원 상당의 이용권을 제공하고, 늘봄학교의 단계적 무상화, 육아휴직 급여 인상 등을 공약으로 제시했다.

하지만 이 같은 선심성 정책을 시행하는 데 필요한 재원 마련에 대해서는 대책이 뚜렷하지 않다. 개혁신당은 고령자의 지하철 무임승차를 폐지한다는 뚜렷이 구별되는 정책을 제시했지만, 대안으로 제시된 고령자 교통보조금이 현행보다 더 많은 재원이 소요되는 것으로 추정되는 등 실효성과 체계성이 높지 않은 점도 많은 문제점을 남겼다.

◇건강성 회복을 위해

여야가 제시한 총선 공약에서 주목할 점 중 하나는 사회 분야 개혁정책이 빠져 있다는 점이다. 윤석열 정부의 3대 국정과제인 교육·노동·연금 개혁에 관한 내용이 집권 여당 공약에서 빠져 있다는 점은 특이하다. 교육개혁과 노동시장 개혁에 대한 구체적 방안이 없이 아이만 낳도록 유인하는 정책은 공염불이 될 가능성이 크다.

총선의 참뜻이 정치인과 국민의 대화 과정이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여야가 보여준 태도는 양방향 아닌 일방적 대화, 표만 의식한 독백이다. 상호 소통과 교류 속에서 다듬어진 공약이 아닌 기대심리만 잔뜩 부풀게 한 장밋빛 공약이 대부분이다.

이들을 국민의 대표로 선출해 국정을 맡기는 것이 맞는 일인지 깊은 회의가 들기도 하는 게 사실이다. 이제라도 여야가 실효성 있는 공약을 제시하고 국민과 진정한 대화에 나서야 한다. 제대로 된 대화와 약속을 통해 민주주의의 건강성을 회복하고, 새로운 시대에 필요한 정책을 만드는 노력에 온 힘을 쏟기를 기대한다.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

■ 용어설명

‘스타인 링겐’은 노르웨이 출신의 영국 옥스퍼드대 교수. 저서 ‘How democracies live’에서 민주주의는 문화이고, 시민과 지도자가 나누는 대화이며, 국가와 시민 사이의 계약이라고 설명.

‘공론장’은 여론이 생성되고 수정되는 공간. 하버마스는 공중의 속성에 따라 부르주아적·인민적·규율적 공론장으로 나누고 ‘주체적 개인’이 이끄는 부르주아 공론장을 이상적이라고 봄.

■ 세줄요약

대화와 약속 : 총선은 정당과 유권자가 양방향으로 소통하는 공론장이며 민주주의 정치 참여의 절정을 이루는 장. 스타인 링겐에 따르면 민주주의는 대화와 약속의 과정이며, 궁극적으로 그 약속을 어떻게 지키는지가 중요.

이슈와 정책 : 이번 총선은 유권자와의 교감 없는 정당과 후보 측의 공약 선포의 장이 되어 버림. 정치 교체론, 서울 편입론, 저출생 대책 등이 정당과 후보의 ‘일방적 독백’에 그침으로써 민주적인 건강성을 상실함.

건강성 회복을 위해 : 교육·노동·연금 개혁 등 사회 분야 개혁정책이 빠져 있다는 점도 아쉬워. 지금이라도 여야는 유권자와의 대화와 약속을 통해 민주적 건강성을 회복하고, 새로운 시대에 필요한 정책을 만들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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