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그립습니다 - 남편 유재국 경위(1981∼2020)
오빠, 우리의 시간은 멈춰있는데 야속하게도 이곳은 다시 추워지고 겨울이 찾아왔어.
매년 2월 15일은 왜 이렇게 더 춥게만 느껴지는지 차다 못해 뼈가 시린 강물 속에서 오빠 혼자 고통받았을 걸 생각하면 가슴이 미어져. ‘오빠가 얼마나 춥고 힘들었을까, 왜 난 아무 도움도 돼주지 못했을까’란 생각에 너무 미안해서 눈물만 나. 이곳에서의 마지막은 너무나 춥고 외로웠으니 오빠가 지금 있는 곳은 제발 따뜻하고 행복하길 바라. 잠수하기 전 우리가 나눈 그 통화가 마지막이었다는 것을 그때 알았다면…. 그때 내가 잠수하지 말라고 말렸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혼자 후회도 자책도 많이 했어. 그래도 오빠는 잠수를 했겠지? 오빠는 항상 최선을 다해 일하던 경찰이었으니까.
재작년 오빠의 흉상을 보러 중앙경찰학교를 찾았을 때 학교 입구에 쓰여있던 글을 보았어. ‘젊은 경찰관이여! 조국은 그대를 믿노라’. 오빠의 한쪽 어깨엔 ‘가족’, 다른 쪽 어깨엔 ‘조국’이라는 지켜야 할 것이 또 하나 있었더라고. 항상 그 문구를 떠올리며 사명감을 되새겼을 걸 생각하니 나를 두고 먼저 떠나간 오빠를 원망할 수가 없었어.
떠난 지 벌써 4년이 되었네. 우리가 결혼 생활을 한 게 4년인데, 헤어진 시간도 4년이 되어 가는구나. 행복했던 시간은 찰나와 같이 짧고 혼자인 시간은 너무도 길고 외로워. 어떤 날은 온 얼굴이 저리도록 울었던 날도 있어. 그렇게 한참을 울어도 오빠와 나의 억울한 심정이 풀리지가 않더라. 내가 지금껏 살아온 세월보다 오빠 없이 살아가야 할 세월이 한참이나 남아서 내가 어떻게 헤쳐나가야 될지 겁이 나고 앞이 캄캄할 때도 많았어. 하지만 난 이제 엄마니까 강하고 단단해지려고 노력 중이야. 오빠, 나 엄마가 되었어! 우리가 함께 지었던 ‘이현’이란 이름이 참 잘 어울리는 잘생긴 아들이야. 매일 똘망똘망한 눈으로 나를 보며 “엄마, 엄마” 하고 부르는데 어찌나 사랑스러운지! 우리 이현이 너무 예뻐서 그 예쁜 얼굴 혼자 볼 때면 오빠가 우리 아들 얼굴 한 번이라도 보고 갔다면 참 좋겠다 싶어. 가끔 오빠랑 이현이가 뛰어노는 모습을 혼자 그려보곤 해. 우리도 정말 행복한 가족이 되었을 텐데 그러지 못한 게 그저 아쉽기만 하다.
오빠가 마지막으로 내게 주고 간 선물 우리 아들…. 좋은 소식만 들려주고 싶지만 이현이가 좀 많이 아파. 이현이가 너무 일찍 태어나는 바람에 뇌 손상이 심해서 아직 고개도 못 가누고 손가락 하나 마음대로 움직일 수가 없어. 세상에 나오자마자 아픔과 고통을 겪고 있는 우리 아기가 너무 가여워. 그래도 누구보다 사랑받는 아이로, 행복한 아이로 키우고 싶어! 내가 아빠의 빈자리가 느껴지지 않도록 두 배의 사랑으로 우리 이현이 잘 보살필게. 이현이도 오빠를 닮아서 씩씩하고 밝게 잘 자랄 거야.
그리고 우리 가족을 잊지 않고 도와주시는 많은 경찰 동료분들이 계셔. 수만 명의 동료분들이 ‘100원의 기적’이라는 이름으로 작은 마음을 모아 남은 우리 가족을 응원해주시고 있어. 오빠의 희생이 헛되지 않도록 국가에서 남은 우리 가족들을 잘 보살펴 줄 거라 믿어.
그리고 한 가지 바람이 있다면, 이제는 국가를 위해 헌신한 사람들을 기억하고 존중하는 문화가 더욱 확산되었으면 좋겠어. 이현이도 아빠를 정말 자랑스럽게 생각할 거야. 나 또한 이렇게 훌륭한 경찰관이 내 남편이라는 게 정말 자랑스러워. 추운 겨울이 가고, 예쁜 꽃이 피는 따뜻한 봄이 오는 것처럼, 이현이랑 나에게도 아름답고 눈부신 날들이 올 거라는 걸 나는 믿어. 그러니 오빠는 걱정하지 말고 우리 가족 다시 만날 날을 기다려줘. 그리고 항상 우리를 응원해줘! 나중에 우리 하늘에서 다시 만나면 그때는 이번 생에서 못다 한 것들을 꼭 다하자. 보고 싶은 우리 오빠, 정말 많이 사랑해.
2024년 2월 15일 아내 꽃님이가
■ 2020년 한강 투신자 찾다 순직
故 유재국 경위
지난 2020년 2월 15일 한강 투신자를 수색하던 중 순직한 경찰 공무원. 당시 39세로 한강경찰대 소속 구조대원으로 재직하고 있었다. 출동 후 한 차례 수색작업을 진행한 뒤 산소통에 30분 정도의 산소가 남은 것을 확인하고 “실종자 가족을 생각해 한 번만 더 살펴보자”며 재차 입수했다가 사고를 당한 것으로 확인됐다. 고인은 국립서울현충원 안장과 1계급 특진 추서로 예우를 받았지만, 남겨진 가족은 힘겨운 삶을 이어가고 있다. 사고 당시 임신 중이었던 배우자 이꽃님 씨는 남편의 순직 소식에 충격을 받아 조산했다. 이르게 세상에 나온 아들은 매일 재활치료를 받아야 하는 강직성 뇌성마비를 앓고 있다. 이꽃님 씨는 문화일보에 보낸 글을 통해 주변의 관심에 감사하며 잘 살아가겠다고 다짐하는 한편, 국가를 위해 헌신한 사람들을 기억하고 존중하는 문화가 더욱 확산하기를 바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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