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철호 논설고문

중국은 한국과 일본의 교훈을 열심히 배웠다. 한국 외환위기를 통해 자본시장 개방의 위험성을 깨쳤고, 일본에선 저금리가 초래한 자산 거품의 해악을 배웠다. 중국이 외환위기 차단을 위해 자본시장을 단단히 걸어 잠근 것이나, 금리보다 지급준비율 조절을 금융정책의 기본 수단으로 삼는 배경이다. 춘제(春節) 이후 중국은 대출우대금리(LPR) 인하 카드를 만지작거리고 있다. 자본시장 개방도를 높여 외국 자본의 탈출을 막는 데도 안간힘이다. 그만큼 중국 경제가 다급해졌다는 의미다.

미국 서브프라임 사태는 금융 네트워크를 타고 전 세계로 번졌다. 올해 세계 경제의 최대 위협 요인은 중국의 부동산 부실이다. 폐쇄적인 금융 때문에 외부 파급 효과는 크지 않을 것이란 전망이 많았다. 하지만 현실은 만만치 않다. 우선, 중국 부동산 부실 규모가 너무 크다. 중국은 2006년과 2010년 부동산 과열 억제를 시도했으나 그때마다 미 서브프라임 사태와 유럽 재정위기가 터져 부동산 부양으로 급선회했다. 그렇게 누적된 거품은 허컹(賀갱) 전 국가통계국 부국장이 강연에서 “30억 명이 살아도 될 만큼 빈집이 넘쳐난다”고 할 정도다.

또 하나는 해외 부동산 매각이라는 숨은 전파 경로다. 중국은 3년 전 ‘삼도홍선(레드라인)’으로 부동산 기업들의 대출과 주식·회사채 발행을 막아 버렸다. 자산 매각 외에는 방법이 없었다. 궁지에 몰린 헝다·비구이위안 등은 생존을 위해 해외 부동산을 대거 내다 팔기 시작했다. ‘광저우 R&F’는 영국 런던의 2조2500억 원 규모의 부동산을 매각했다. 비구이위안은 말레이시아 최남단의 134조 원 규모의 포레스트시티 평당 가격이 최고치 대비 3분의 1로 고꾸라지자 호주 멜버른 외곽의 땅부터 2172억 원에 팔아 치웠다. 매입가를 크게 밑도는 급급매였다.

최근 세계 부동산 시장이 얼어붙은 데는 재택근무 증가나 고금리뿐만 아니라 중국발 손절 물량도 한몫하고 있다. 국내 금융업계가 55조8000억 원이나 판 해외 상업용 부동산 대체 투자 상품도 비상이 걸렸다. 한때 뉴욕 월가가 날갯짓하면 전 세계에 폭풍이 불어닥친다는 말이 있었다. 이제 베이징의 날갯짓에 전 세계가 몸살을 앓는다. 중국 부동산 부실이 글로벌 경제에 전염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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