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호근 연세대 경영대학 교수

60년 전에 시작된 반도체 산업은 잠시만 한눈팔아도 주도권이 다른 기업으로 넘어가는 분야다. 1961년 페어차일드 반도체가 세계 최초로 집적회로를 상용화한 이후 반도체 생산의 중심지가 된 미국 실리콘밸리는 1970년대까지 미국의 전성기를 이끌었다. 미국 기업이 주도하던 반도체 시장에 제조 기술력을 앞세워 치고 올라간 게 일본 기업이다. 두 차례의 오일쇼크 이후 미국 반도체 기업들이 움츠러들자, 정부의 지원과 가격경쟁력을 무기로 일본 기업들이 1980년대 글로벌 반도체 시장을 장악했다.

그러자 미국은 환율 조정과 보복 관세로 대응했다. 이로 인해 일본 기업들이 주춤한 틈을 비집고 한국과 대만이 반도체 강국으로 부상했다. 한국의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메모리 반도체 분야를 장악했고, 대만의 TSMC는 파운드리(위탁생산) 일인자로 등극했다. 중국이 ‘반도체 굴기’를 발표하며 빠르게 성장하자 미국이 화웨이를 제재하고, 한국·대만·일본을 연결하는 ‘칩4 동맹’을 구축한 것도 승자를 그대로 두지 않는 반도체 산업의 특징을 보여준다.

반도체는 국가안보를 위한 중요한 자산이면서 국가경쟁력을 결정하는 핵심 기술이다. 치열한 경쟁으로 시장 리더가 끊임없이 변해온 반도체 산업의 판을 또다시 송두리째 바꿀 수 있는 새로운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챗GPT 출시로 불과 1년여 만에 인공지능(AI) 대중화 시대를 연 오픈AI가 AI 맞춤형 반도체를 직접 제작하겠다고 나서는 중이다. 오픈AI의 샘 올트먼 CEO는 최대 7조 달러(약 9300조 원)를 투자해 AI용 반도체의 자체 제작을 준비하고 있다.

오픈AI가 반도체 제작을 고려하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다. 챗GPT는 데이터 연산을 초고속으로 수행하는 반도체를 대량으로 필요로 하는데 공급이 원활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오픈AI뿐 아니라 구글, 아마존, 메타 등 빅테크 기업들이 자체 AI 개발에 나서면서 고성능 반도체 수요가 급증했고, AI 반도체 공급이 수요를 따라가지 못하는 것이다. 그뿐만 아니라, 현재 주로 AI용 반도체로 사용되는 엔비디아의 그래픽처리장치(GPU)는 게임 그래픽을 위해 개발돼 AI용 반도체로는 비효율적이다. 오픈AI가 생성AI에 쓰일 반도체를 맞춤형으로 직접 제조하겠다고 나선 배경이다.

올트먼의 계획이 현실화하면 누가 오픈AI의 핵심 파트너가 되느냐에 따라 반도체 업계의 판도가 크게 달라진다. 반도체에 기반이 없는 오픈AI가 반도체를 생산하려면 대만의 TSMC와 삼성전자 같은 반도체 파운드리 업체와의 협업이 필수다. 올트먼은 AI를 훈련하고 운용할 수 있는 고성능 반도체 생산 시설을 수년 안에 10여 곳에 건설한 뒤 파운드리 업체에 운영을 맡긴다는 계획이다. 오픈AI가 대만의 TSMC에 운영을 맡긴다면, 한국 반도체 기업과 TSMC의 격차가 따라가기 힘들 만큼 더욱 벌어질 수밖에 없다.

우리나라 전체 수출에서 반도체가 차지하는 비중은 절대적이다. 메모리 반도체보다 부가가치가 높고 시장 규모도 큰 시스템 반도체 분야에서 세계 수준의 우위를 확보하려면 파운드리 기술 경쟁력이 필수다. 오픈AI의 반도체 시장 진출이 현실화하면 AI 반도체 생태계에 국내 기업이 반드시 참여해야 하며, 정부도 이를 위해 적극 지원해야 한다.

이호근 연세대 경영대학 교수
이호근 연세대 경영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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