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매주 영화는 개봉하고, 관객들은 영화관에 갈지 고민합니다. 정보는 쏟아지는데, 어떤 얘길 믿을지 막막한 세상에서 영화 담당 기자가 살포시 영화 큐레이션을 해드립니다. ‘그 영화 보러 가, 말아’란 고민에 시사회에서 먼저 감 잡은 기자가 ‘감’ ‘안 감’으로 답을 제안해봅니다.
(9) 바튼 아카데미
미국 동부 뉴잉글랜드주의 한 사립 고등학교 기숙사. 있는 집 자식들이 한데 모인 이 학교에서 ‘외로운’ 학생과 교사, 영양사가 기나긴 크리스마스 연휴를 함께 보내게 된다. 완고한 고집불통 교사 폴 허넘(폴 지어마티)과 머리는 좋지만 반항기 심한 학생 앵거스 털리(도미닉 세사), 베트남 전쟁에서 자식을 잃은 흑인 영양사 메리 램(데이바인 조이 랜돌프). ‘외톨이’ 셋은 조금씩 마음의 문을 열고 얼었던 마음을 녹이며 앞으로 나아갈 채비를 한다.
알렉산더 페인 감독의 신작 ‘바튼 아카데미’(21일 개봉)는 인간에 대한 사려 깊은 태도와 세태에 대한 예리한 통찰, 유머를 적절히 곁들인 세련된 솜씨로 만든 휴먼드라마이다. 한마디로 보는 내내 미소 짓다 끝날 때쯤 펑펑 울고 싶어지는 영화다.

◇외톨이들의 상처 극복기
마음속에 상처를 안은 세 인물은 ‘살아도 사는 게’ 아니다. 그들은 크리스마스에 만날 사람 하나 없는 크리스마스 ‘낙오자’이자 인생 ‘낙오자’이다.
허넘은 명문 하버드대에 입학했지만 부자 친구들 틈에서 오해를 받고, 졸업도 못 한 채 모교인 바튼 아카데미에서 교사로 일하고 있다. 자격지심으로 똘똘 뭉친 그는 낮부터 술을 찾고, 시도 때도 없이 로마사를 인용하며 학생들을 못살게 군다. 앵거스는 부모에게 버림받았다. 존경했던 아빠는 정신병원에 감금됐고 부모는 이혼했다. 엄마는 부자 새아빠와 신혼 여행을 가야 한다며 크리스마스 방학을 맞은 아들을 내친다. 매번 가시 돋친 말을 내뱉는 그의 주위엔 아무도 없다. 메리 램은 인생의 유일한 희망이었던 아들 커티스가 베트남 전쟁에서 죽었다. 다른 졸업생들은 부모 ‘빽’(백그라운드)으로 징집을 피하는데, 학비를 벌려고 자원입대했던 아들이었다. 메리 램의 상실감과 비통함은 헤아릴 길이 없다.
줄거리만 봐도 여러 영화들이 연상된다. 스승과 제자의 교감은 ‘죽은 시인의 사회’가 떠오른다. 백인과 흑인의 교감은 아카데미 수상작 ‘그린북’에서 봤다. 상처 입은 외톨이가 인간적 연대를 통해 새롭게 시작하는 휴먼드라마는 수없이 많다. 그런데 이 영화는 절대 이들의 아류나 양산형 크리스마스 영화가 아니다. 우스워 보였던 인물들은 서서히 스며들며 관객의 감정 깊숙이 자리를 남긴다. 통상 영화의 플롯은 굵직한 이야기 줄기를 중심으로 시공간을 휘저으며 나간다. 정작 이야기에서 뛰노는 인간을 바라볼 시간은 많지 않다.
그런데 이 영화는 살아있는 인물들이 서서히 변화하는 동안 관객들도 함께 감정을 겹겹이 쌓다 끝내 폭발하는 순간을 맞는다. 이를테면 “이쪽 눈으로 말하면 돼”라고 말하는 허넘의 얼굴이나 허넘과 앵거스가 악수를 하는 순간 같은. 극장에서 함께 웃고, 우는 귀중한 집단적 체험을 하게 될지 모른다.

◇“베이비붐 세대 제대로 되돌릴래”
영화는 1961년 ‘베이비붐 세대’인 페인 감독의 ‘다시 쓰는 유년기’로 읽힌다. 거창하게 말하면, 베이비붐 세대와 그들이 만든 개탄스러운 현재 미국을 스크린에서라도 제대로 되돌리려는 시도이다. 어쩌면 “나 다시 돌아갈래”를 외치는 ‘박하사탕’의 크리스마스 버전이다.
1970년이란 영화의 시간적 배경이 실마리다. 허넘은 50대 중반으로 1915년 전후 생. 대공황을 이겨내고, 2차 세계대전을 승리로 이끌며 번영의 발판을 마련한 ‘위대한 세대’(1911∼1924년 생)다. 살 만하니 이들은 신나게 아기를 낳았다. 바로 ‘베이비붐 세대’(1946∼1964년 생)이다. 18세 남짓인 유급생 앵거스가 여기 속한다.
1970년은 격변기였다. 베트남전 실패와 맞물려 이상주의 대신 개인주의가 강조됐고, 물질적 가치가 중시됐다. 소설가 톰 울프는 1970년을 ‘자기중심의 시기’라고 규정했다. 이러한 시대적 흐름을 주도했던 베이비붐 세대는 오늘날 미국을 지배하는 기성세대이다.
그리고 바튼 아카데미는 예일대 같은 아이비리그 대학을 예사로 보내는 고급 사립학교. 학생들은 “미국을 이끌 애들”이다. 그렇지만 학생들은 자기 말만 맞다고 싸우고, 동양인 비하에 뭐든 돈으로 해결하려는 개인주의와 천민자본주의로 점철된 망나니들이다. 감독이 그린 베이비붐 세대의 민낯이다.
영화는 이를 반성적으로 고찰한다. 미국 세태에 대한 풍자의 달인인 페인 감독은 좌우 극단적 대립의 혼탁한 현재 미국을 만든 책임을 베이비붐 세대에 돌리며 영화 속에서라도 변화를 꾀한다. 앵거스의 성장이 필요했던 이유다. 다른 친구들과 달리 앵거스는 허넘, 메리 램과 크리스마스를 보내면서 바뀐다. 자기 상처만 아프고, 자기 말만 맞았던 건방진 소년은 남을 이해하려는 포용력 갖춘 어른으로 거듭난다. 앵거스가 한쪽이 유리 눈인 허넘에게 “어느 쪽을 보고 말해야 하죠?”라고 묻는 게 변화의 징후이다.
이와 함께 기성세대 낙오자인 허넘의 상처를 어루만지고, 책 쓰기란 새로운 시작을 응원한다. 동창들로부터 도태된 허넘과 정신병으로 사회에서 도태된 앵거스의 친아빠는 유사한 지점이 있다. 앵거스를 군사학교에 보내려고 하는 부자 새아빠는 이들과 대치된다. 영화는 국가에 헌신하는 ‘위대한 세대’식 사고와 개인주의 일색인 ‘베이비붐 세대’식 사고 모두 인간이 나아갈 방향도, 미국이 가야 할 방향도 아니라고 말한다.
허넘이 크게 화를 내는 순간이 딱 한 번 있다. 어떤 학생이 메리 램을 두고 “우리가 돈 주는 사람인데 왜 매번 죽상이냐”고 말하자, 허넘은 식탁을 쾅 치면서 말한다. “대부분의 인생은 닭장의 횃대처럼 옹색한 거야. 부모 잘 만난 너희들은 책임감을 가져야 해.”
여기에 더해 베트남전에서 사망한 메리 램의 아들 사진과 유품을 지속적으로 보여주는 것도 의미심장하다. 신파 목적이 아니다. ‘이들의 희생 덕분에 지금의 미국이 있다’며 마음속에 부채감을 심는 것이다.

◇후일담
영화는 이러한 이데올로기와 상관없이 웃기고, 따스하다. 비호감이었던 허넘과 앵거스는 지지와 격려의 대상이 된다. 관객은 둘의 행동에 어느새 울컥할지 모른다. 머리보다 마음으로 다가오는 영화다. 폴 지어마티는 표정만으로 세상에서 가장 외로운 남자를 100% 구현한다. ‘오펜하이머’의 킬리언 머피와 함께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의 강력한 후보다. 쿨한 겉모습 뒤 아들을 잃은 상실감을 보여준 조이 랜돌프는 여우조연상 후보 1순위이다.
‘바튼 아카데미’를 보면 영화의 주역인 알렉산더 페인 감독과 폴 지어마티가 20년 전 호흡을 맞춘 ‘사이드웨이’(2004)가 자연스레 생각난다.

주연·감독의 20년전 영화… 닮은 듯 다른 ‘사이드웨이’

폴 지어마티가 연기한 ‘사이드웨이’의 마일즈와 ‘바튼 아카데미’의 폴 허넘 사이엔 공통점이 많다. 둘 다 작가를 꿈꾸고, 과거의 상처를 안고 산다. 술독에 빠져 사는 이들은 여성과 엮일 기회를 무기력하게 보낸다. 이들은 현실을 꾸역꾸역 살아낼 뿐이다. 그런 점에서 두 영화 모두 과거의 아픔을 간직한 인물의 트라우마 극복기라고 볼 수 있다. 기한이 정해져 있고, 에피소드가 산발적으로 이어지며 인물의 감정과 관객의 심상이 겹쳐지는 이야기 방식도 유사하다.
그런데 결정적인 차이가 있다. ‘사이드웨이’가 마일즈 혼자만의 극복기라면, ‘바튼 아카데미’의 허넘은 학생 앵거스, 영양사 메리 램과 교감하며 상처를 털어낸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문을 열어젖히는 마일즈에 비해 눈엣가시였던 교장의 술을 입에 적신 뒤 뱉어버리는 허넘의 시작이 보다 거침 없다.
이정우 기자 krusty@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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