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컵이나 올림픽 같은 큰 대회 때마다 대한민국 축구 대표팀 감독은 곤욕을 치렀다. 잘해야 본전이고, 못하면 역적. 성적은 물론이고, ‘팬심(心)’을 읽지 못하고 엉뚱한 소리를 하면 비판받기에 십상이었다. 한국 축구 레전드 차범근 감독은 1998 프랑스월드컵 도중에 경질되는 수모를 겪었다. 나중에 한국 사령탑이 된 거스 히딩크 감독의 네덜란드에 0-5로 참패한 탓이었다. 제아무리 레전드여도 빗발치는 비난 앞에선 도리가 없었다.
2002 한·일월드컵 4강 신화의 영웅 히딩크 감독은 월드컵 직전까지만 해도 조롱의 대상이었다. 2001년 국제축구연맹(FIFA) 컨페더레이션스컵 프랑스전에서 0-5로 지고, 얼마 후 체코 평가전에서 또 0-5로 패하면서 ‘오대영’이라는 비아냥과 함께 경질 위기에 몰렸다. 2014 브라질월드컵 때는 홍명보 감독이 16강 진출에 실패했는데도 거창한 회식 파티를 열어 여론의 뭇매를 맞았다. 2022 카타르월드컵에서 기적적인 16강을 일군 파울루 벤투 감독은 고집스러운 ‘빌드업’ 전술 때문에 줄곧 비판받았다.
그런데 아시안컵에서 졸전 끝에 4강 탈락한 위르겐 클린스만 대표팀 감독은 전술 부재와 무책임한 언행으로 대표팀 감독 최악의 선례를 남겼다. 게다가 4강전 패배를 손흥민과 이강인 등 주축 선수들의 불협화음 탓으로 돌려 인심조차 잃었다.
아시안컵을 통해 대표팀에는 실로 수많은 문제점이 드러났다. 감독 하나 경질하는 것으로 당장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그래도 최선의 해결책은 최적의 리더십을 다시 찾는 것뿐이다. 히딩크 감독 등 역대 성공한 대표팀 지도자에게서 힌트를 얻을 수 있다. 또, 클린스만 감독에게서 얻은 ‘학습효과’도 있다. 차기 사령탑은 첫째, 누가 뭐래도 흔들리지 않는 뚝심이 있어야 한다. 고집이면 곤란하지만, 말 많고 탈 많은 대표팀의 중심을 잡기 위해선 흔들림이 없어야 한다. 둘째, 프로클럽과 달리, 수시로 소속팀과 대표팀을 오가느라 지치는 선수들의 심리까지 헤아리는 특단의 관리 기술이 필수적이다. 토너먼트 경기를 치르다 보면 선수들은 매우 예민해진다. 감독이 전술적으로도 잘 이끌어야 하지만, 승부에 대한 부담으로 위축된 선수들의 마음을 세세히 다독여야 한다. 셋째, 장기적인 비전 아래 새 얼굴을 발굴하고 팀을 리빌딩해야 한다. 세대교체를 염두에 둔 장기적인 안목이 무엇보다 우선돼야 한다.
멱살잡이 다툼으로 아시안컵 대표팀의 민낯은 만천하에 드러났다. 2026 북중미월드컵 아시아 지역 2차 예선이 약 1개월 남은 상황에서 클린스만 감독은 짐을 쌌다. 앞으로 이런 실수를 되풀이하지 않으려면 차기 감독을 제대로 뽑는 데 모든 역량을 집중해야 한다. 시간도 촉박하고, 또 거금을 들여 저명한 외국인 감독을 모셔오기는 만만치 않다. 이럴 땐 대표팀을 가장 잘 알고 헌신할 수 있는 인물이 차라리 낫다. 대표팀에 한국인 감독이 배겨내기 힘들다고 하지만, 국내에도 훌륭한 지도자가 많다. 전력강화위원회와 정몽규 회장은 숙고해서 대표팀을 구원해줄 인물을 찾아내기 바란다. 그리고 일단 누군가 ‘독배(毒杯)’라는 것을 알고도 태극호의 선장을 받아들인다면, 그를 절대적으로 믿고 지지해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