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와 내가 사람답게 살기 위하여, 지구와 함께 오늘 여기를 느끼면서, 나누는 세상 모든 것과의 대화는 얼마나 좋아, 이런 속엣말을 끌어모아 바닥이든 모서리든 책으로 펼쳐놓겠지.// 그려보기만 해도 뿌듯하잖아./ 지상 어디에도 없을/ 순한 먼지들의 책방’

- 정우영 ‘순한 먼지들의 책방’(시집 ‘순한 먼지들의 책방’)


책 읽기와 가깝게 지내는 사람에겐 특유의 분위기가 있다. 유심히 살펴야 알아챌 수 있는, 어쩌면 느낌에 가까울 수도 있겠다. 서점 문을 열고 들어서는 이가 책을 읽는 사람인지, 아니면 구경하러 온 사람인지 알아볼 수 있는 것은 그 덕분이다.

그제 찾아온 손님은 ‘책을 읽는 사람’이었다. 마침내 시집을 한 권 들고 온 그에게는 다른 용건이 있었다. 계산을 마치고도 쭈뼛대다가, 저도 서점을 열고 싶은데요, 한다. 절로 새어 나오려는 한숨을 삼킨다. 이따금 서점 창업에 대한 조언을 들어보려 찾아오는 이들이 있다. 그 절박함을 모르지 않으나 딱히 해줄 말이 없다. 근사해 보이는 일 이면에 있는 어려움과 괴로움을 상세히 알려주고 싶다. 몇 번쯤 그래 본 적도 있다. 실망한 표정으로 돌아가는 뒷모습을 보며 씁쓸한 입맛을 다시기도 했다. 그러지 않기로 한다. 현실의 어려움을 앞세워 만류하는 목소리는 지겹게 들었을 터다. 나까지 나설 필요 없다. 중요한 것은 좋아하는 일 앞에서 저 순한 마음을 지키는 것이겠지.

좋음을 이야기하기 시작한다. 책을 두고 하는 말들과 서점에서 벌어지는 일들이 만들어가는 시간과 공간에 대해. 긴장 가득했던 그의 얼굴이 기쁨과 기대의 표정으로 바뀌어 간다. 물론 어려움이 적지 않을 것이나, 순탄하기만 한 일은 세상 어디에도 없지 않은가. 어떻게든 될 것이다. 그가 지금의 순한 마음을 지켜나가기를 바란다. 당장의 내가 그러기 위해 애를 쓰고 있듯이. 그거면 충분한 것이다.

시인·서점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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