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린 학생들은 ‘모둠’이란 말이 꽤 익숙하다. 초·중등학교에서 효율적인 학습을 위하여 학생들을 대여섯 명 내외로 묶은 모임을 이리 부르기 때문이다. 그러나 어른들에게 ‘모둠’이나 이와 비슷한 ‘모듬’은 음식 이름에 붙는 것으로 익숙해져 있다. 여러 종류의 물고기 회를 한 접시에 올리는 것을 ‘모듬회’라 하고, 다양한 전을 한 그릇에 내어놓는 것을 ‘모둠전’이라 하기 때문이다. 같은 음식을 보다 다양하게 즐길 수 있으니 이름도 정답고 맛도 반갑다.
그런데 규범의 잣대로 보면 모듬회나 모둠전 모두가 틀렸다. 사전을 보면 ‘모듬’은 ‘모임’의 다른 말이라 풀이돼 있다. 죽은 물고기들이 접시에서 회합을 가질 리 없으니 모듬회는 성립되기 어렵다. 전을 먹으면서 공부할 일도 없으니 모둠전도 이상한 말인 것은 매한가지다. 그러나 사전은 현실에서의 쓰임을 정리해 놓은 것에 불과하니 규정으로 꼬치꼬치 따질 일이 아니다. 게으른 국어선생들이 이름을 짓기 전에 상인들이 먼저 멋진 이름을 지었을 뿐이다.
음식점에서 여러 종류의 음식을 한데 묶어서 내는 것을 보통 ‘세트 메뉴’라 부르는데 이는 모듬 또는 모둠과는 다르다. 짜장면과 탕수육의 조합이나 햄버거에 감자튀김과 음료수를 함께 주는 것을 세트 메뉴라 하는데 이는 함께 먹기에 좋은 음식을 묶어서 내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도 궁합이 좋은 음식을 비교적 값싸게 먹을 수 있으니 유용한 메뉴이기는 하다.
모듬과 모둠 모두 오늘날에는 ‘모이다’ 또는 ‘모으다’와 뜻이 통하나 말소리를 보면 ‘몯다’를 상정해야 한다. 실제로 옛말에 ‘몯다’가 있었고 방언에서는 지금도 쓰이고 있다. 모듬회, 모둠전이란 단어를 만들어 낸 이들은 옛말이나 방언에 기댔음을 알 수 있다. 사전은 속성상 ‘모듬말’ 또는 ‘말모둠’이다. 더 다양한 음식이 함께 나오면 좋듯이 사전도 더 깊고 넓어져 이런 말들도 모두 포용하길 기대해 본다.
인하대 한국어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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