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수·지역 의료 붕괴 개혁 촉발 의사단체는 정부 약속 불신해 정책 당위성 있지만 설득 필요
의대 쏠림 막을 교육개혁 절실 사회적 대화 통한 노동개혁도 미래세대 위해 필히 성공해야
윤석열 정부가 험난한 의료개혁의 첫발을 뗐다. 의대 증원 문제는 수도권 환자 쏠림, 피부과·성형외과 등 인기 과목 편중이라는 의료 자원 배분의 불균형에서 비롯됐다. ‘응급실 뺑뺑이’와 ‘소아과 오픈런’으로 대표되는 필수·지역 의료 붕괴 위기 극복의 대안으로 의대 증원이라는 공감대가 형성됐다. 정부는 고령화에 따른 의료 수요 증가에 대비하고 고사 위기의 지역 의료를 살리려면 2000명 증원도 부족하다고 한다. 간호사, 환자단체, 시민단체, 경영계 및 노동계 등 모든 분야가 찬성한다. 국민 여론도 압도적 지지이고, 여야도 찬성이다.
의사들은 저출생에 따른 의사 1인당 환자 수 감소, 의학 교육 질 저하, 증원된 의사들의 필수·지역 의료 분야 미유입 등을 근거로 반대한다. 의사들 주장의 배면에는 기득권 유지와 엘리트 의식, 직역 이기주의가 숨어 있다. 통계마다 조금씩 다르지만, 의사들은 연평균 2억∼3억 원의 수입을 올리는 초고소득층이다. 의대 블랙홀의 배경이다. 김영삼 정부 때 사법개혁으로 변호사들이 2배로 늘어나면서 수입이 사실상 반 토막 난 것을 본 의사들은 의사 공급 확대가 자신들에게 어떤 결과로 돌아올지 잘 알고 있다.
정부는 2028년까지 필수·지역 의료 수가(진료 서비스의 대가)에 10조 원을 투입하고 불가항력적 의료 사고에 대한 의사들의 부담을 덜어주는 특례법 제정을 약속했다. 그런데 개원의 단체인 대한의사협회는 정부가 필수의료 수가를 올려준다고 약속하고도 번번이 어겼다고 주장한다. 정부가 내놓은 필수의료 정책 패키지도 두루뭉술하다며 구체적인 수치를 제시하라고 요구한다. 의료개혁 당위성에도 불구하고 의사들 설득을 계속할 필요는 있다. 그 과정에서 전공의들이 환자 곁으로 돌아올 수 있도록 명분이 만들어질 수 있다. 그러지 않으면 2020년 코로나19 국면에서 의대 400명 증원에 반발해 한 달여 파업을 벌이며 정부를 굴복시킨 경험이 있는 의사들이 쉽게 물러나지는 않을 것이다. 그 피해는 아무 죄 없는 환자들이 오롯이 감당해야 한다.
서울대교수협의회는 지난 19일 의사들은 의료 현장을 지키고 정부는 인내심을 갖고 대화할 것을 요구하는 입장문을 내놨다. 의료개혁과 함께 기초학문 위축을 막을 교육개혁이 동반돼야 한다는 의미심장한 내용도 담겼다. 교수협은 “의대 정원 확충의 진정한 목표는 우수한 의사들이 전국 곳곳에서 양질의 의료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인 만큼, 정책의 실효성 극대화와 부작용 최소화를 위해 교육 및 입시제도 개혁, 균형 있는 학문 발전과 인재 양성, 지역 발전 정책도 함께 추진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교육개혁을 통한 양질의 인재 양성은 노동시장의 구조 개선이라는 개혁 과제와도 긴밀하게 연결돼 있다. 마침 지난 6일 윤 정부 들어 처음으로 노사정이 대면 회의를 갖고 노동개혁 의제들을 사회적 대화로 풀어나가기로 했다. 디지털, 인공지능(AI) 시대라는 커다란 산업 전환기에 근로 시간 단축과 유연성 확보, 대기업과 중소기업, 정규직과 비정규직 간 노동시장 이중구조에 따른 불공정 격차 해소, 정년 연장에 따른 임금체계 개편과 계속 고용 문제 등을 다룬다. 보수와 진보 의제가 망라된 셈이다.
노사정위원장과 노동부 장관을 지낸 김대환 인하대 명예교수는 지난해 경제사회노동위원회 주최 국제 콘퍼런스에서 과거 정부 주도의 노동개혁이 무산된 경험을 바탕으로 “광범한 공론화와 사회적 합의 없이는 개혁이 성공할 수 없다”고 밝혔다. 경영계와 노동계가 끊임없는 협상으로 이견을 좁히고 통 크게 주고받는 결단을 내려야 한다는 의미다. 노사정 의제에 포함된 정년 연장과 장년층 계속 고용 문제는 국회에서 진척을 보이지 못하고 있는 연금개혁과도 직결된다. 정년 연장에 합의하면 연금 재정의 지속성을 위한 ‘더 내고 덜 받는’ 방향의 연금개혁 추진 동력이 생길 수 있다.
4·10 총선이 얼마 남지 않았다. 총선 결과를 예측하기 쉽지 않지만 어떻게 나오든 진정한 대화와 타협, 협치의 시대가 열려야 한다. 의료·교육·노동·연금 4대 개혁은 결국 법안과 예산으로 완성된다. 여야와 당파, 이념을 넘어 미래 세대를 위해 반드시 개혁 성과를 내야 한다. 국가의 백년대계를 위한 대개혁은 국민의 준엄한 명령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