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공의들이 환자 곁을 떠난 지 벌써 일주일이 지났다. 첨단 시설을 자랑하던 초대형병원들이 혼란에 빠지고 환자들은 망연해하고 있다. 최고 수준의 재난경보까지 발령된 이번 사태는 단순히 의대 정원 문제를 넘어 그간 방치해 온 대한민국 의료의 부조리가 그 원인이다.
첫째, 영리적 운영의 문제다. 병·의원이 환자 유치에 몰두하고 의대 병원조차 수익 추구에 진력하느라 소홀해진 교육과 수련은 일부 교수만의 몫이다. 교수는 외래진료에 바빠 중증인 입원환자는 전공의 등에게 맡긴 지 오래다.
둘째, 의료기관 간의 협력이 어렵다. 병·의원이 서로 경쟁하는 데다 대형병원은 분원 설립과 병상 확충으로 고비용 의료를 부추기며 지역 의료를 무너뜨린다. 급속한 규모 확충에는 전공의의 인력 풀 형성과 노동력 제공이 필수다.
셋째, 전문의의 개원 쏠림이다. 힘든 과정을 거쳐 전문의가 되고도 생명과 건강을 지키는 필수 분야보다 쉽게 수익을 올릴 수 있는 개원가로 모인다. 실손보험으로 치솟은 개원의 수입은 의사들 간 격차를 키워 중증 환자를 지키고자 뜻을 품은 젊은 의사의 사기를 꺾는다.
넷째, 의료 분쟁과 과도한 법적 책임이다. 과실 입증이 어렵고 공적 보상의 길이 없는 환자 상황은 이해되나, 의사는 소송의 두려움에 응급 중환자를 꺼린다. 선의의 의료행위로 발생한 분쟁의 공적 해결과 보상 기제가 필요하다.
다섯째, 부족한 공공의료 역량이다. 지역거점 공공병원이야말로 젊은 의사들이 보고 배울 현장이다. 그런데도 그 수와 규모는 턱없이 부족하다. 재난 때마다 동원되지만, 막상 지나고 나면 아무도 관심이 없는 공공병원에는 미래가 없다. ‘공공’을 뺀 ‘필수’의료는 빈 구호임을 아는 정부지만, 공공병원 강화에 투자하지는 않으려 한다.
여섯째, 무책임한 정부다. 필수의료 붕괴와 인력 부족은 한참 전에 예견됐지만 한 일이 없다. 코로나 팬데믹에서 드러난 공공의료 부족도 잊은 지 오래다.
일곱째, 젊은 의사들이 병원을 떠나게 한 책임은 선배 의사들에게도 있다. 공정한 의료 체계를 만들지 못했고, 사회적 책무를 후순위에 두고 수가 인상만 외치다 이익만 좇는 이기적 집단으로 몰렸다. 부모 세대의 잘못도 있다. 선진 시민의 책임과 품성을 못 가르치고, 세계 무대에서 활동할 뛰어난 인재들을 의대만이 인생의 목표처럼 성적 올리기에만 힘써, 기대보다 못한 현실과 미래에 대한 불안으로 절망에 빠지게 했다.
정부는 진정성과 인내를 가지고 대화에 나서야 한다. 필수의료 강화는 절체절명의 국가적 과제임을 설득하고, 향후 필요한 지원을 약속해야 한다. 의료 공공성 강화와 필수의료 정상화는 모두에게 필요한 국가적 가치임을 선언해야 한다. 선배 의사는 젊은 의사에게 존경받는 의사로서 비전을 제시해 줘야 한다.
전공의들이여, 이제 본래의 자리로 돌아오라. 의사는 환자 옆에 있을 때 가장 아름답고 강하며 존경받는다. 젊음의 패기와 총명함으로 적폐를 고쳐 나가자. 지식 기술자가 아닌 진정한 지식인으로서 국가 의료 체계를 만들어 가자.
시간이 별로 없다. 환자들의 간절한 기다림이 기대와 희망에서 실망과 원망으로 변하기 전에 환자 곁으로 빨리 돌아오길 다시 한 번 부탁한다. 전공의 여러분은 나라의 미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