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 Who - ‘의문사’ 하는 푸틴의 정적들

2000년 집권후 100명 제거돼
우크라 침공 이후만 50명 넘어

영국으로 망명했던 리트비넨코
홍차 마신뒤 사망… 폴로늄 발견
체첸 인권보도 언론인 총격 피살

나발니, 장시간 추위 노출시킨뒤
주먹으로 가슴치는 ‘KGB식 암살’
정적 사라진 푸틴, 권력 공고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최대 정적으로 꼽히던 알렉세이 나발니가 수감 중 의문사하면서, 그동안 석연치 않은 죽음을 맞았던 푸틴 대통령의 정적들이 재조명되고 있다. 2000년부터 집권한 푸틴 대통령에 저항하다 의문의 죽음을 맞은 인사들은 100명에 가깝다. 특히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로는 50명이 넘는다. 암살에 사용한 방법은 독이나 총, 폭탄 등 다양하다. 일부는 자살로 위장된 타살 등으로 살해됐다.

알렉산드르 리트비넨코. 텔레그래프
알렉산드르 리트비넨코. 텔레그래프


◇푸틴, 집권 초기부터 암살 배후에 = 푸틴 대통령의 정적 암살 의혹은 집권 초기 때부터 제기돼왔다. 2006년 11월 일어난 ‘홍차 독살’ 사건이 대표적이다. 러시아 연방보안국(FSB) 요원이었던 알렉산드르 리트비넨코는 1998년 푸틴 대통령이 수장을 맡았던 FSB의 부정부패를 폭로했다. 리트비넨코는 2000년 영국으로 망명한 뒤에도 푸틴 정권 비판 운동을 이어갔다. 그는 2006년 11월 런던의 한 호텔에서 전 러시아 정보 요원 2명을 만나 홍차를 마신 뒤 3주 만에 사망했는데, 부검 결과 그의 체내에선 방사성 물질인 폴로늄이 발견됐다. 2021년 유럽인권재판소(ECHR)는 리트비넨코 사망 사건의 배후가 러시아라고 최종 판결했다.

러시아 체첸 자치 공화국의 인권 문제를 비판해 온 인사들은 공통적으로 총에 맞아 살해됐다. 체첸에서 벌어진 인권 침해와 부정부패를 파헤치던 언론인 안나 폴리콥스카야는 2006년 푸틴 대통령의 생일인 10월 7일 자신의 아파트 건물 로비에서 총에 맞아 숨졌다. 체첸 여성을 살해한 혐의로 복역 중인 러시아 유리 부다노프 대령의 조기 석방에 반대해온 스타니슬라프 마르켈로프 변호사는 2009년 1월 모스크바에서 기자회견을 마친 뒤 귀가하다 한 괴한으로부터 총격을 받아 숨졌다. 당시 여기자 아나스타시아 바부로바도 마르켈로프 변호사가 숨진 현장에 있다가 변을 당했다. 그는 러시아 반정부 성향의 언론사인 노바타 가제타 소속이었다. 체첸의 인권 현실을 폭로했던 나탈리아 에스테미로바도 그해 9월 괴한에게 납치돼 몇 시간 후 머리와 가슴에 총상을 입고 숨진 채 삼림지대에서 발견됐다. 젤림칸 칸고슈빌리 전 체첸 반군 사령관은 2019년에 독일 베를린 공원에서 FSB 요원의 총에 맞아 숨졌다.

보리스 베레좁스키. 로이터 연합뉴스
보리스 베레좁스키. 로이터 연합뉴스


2013년에 발생한 러시아 올리가르히(신흥재벌) 보리스 베레좁스키의 사망 사건은 미스터리로 남아 있다. 2000년 영국으로 망명한 베레좁스키는 런던 부촌의 자택 욕실에서 목을 매단 채 발견됐다. 그의 목에는 질식의 흔적이 있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그는 자신의 자동차에 설치된 폭탄이 폭발해 운전사가 숨지는 등 여러 차례 암살 위기를 넘겨 이른바 ‘불사신’으로 주목받은 바 있다. 2015년엔 보리스 넴초프 전 러시아 부총리가 밤에 집에 들어가던 중 크렘린 궁에서 불과 몇m 떨어진 다리 위에서 총에 맞아 숨졌다. 그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군사 개입을 비판하는 등 반정부 시위를 이끌던 인물이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해외에 있는 적들이 서방에서 피란처를 찾더라도 러시아는 계속 추적할 것이란 메시지”라고 분석했다.

예브게니 프리고진. 로이터 연합뉴스
예브게니 프리고진. 로이터 연합뉴스


◇우크라이나 침공 후 더 확산하는 ‘공포 정치’ =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 반기를 든 이들도 무사하지 못했다. 러시아 최대 민영 석유업체인 루크오일의 라빌 마가노프 회장은 2022년 2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특별군사작전을 공개적으로 비판하다가, 그해 9월 모스크바의 한 병원 6층 창문에서 추락해 숨졌다. 마가노프 회장처럼 우크라이나 공격에 부정적이었던 러시아 기업인 10여 명이 줄줄이 자살하거나 의문사했다. 특히 지난해 8월엔 용병 기업 바그너그룹의 수장 예브게니 프리고진이 전용기를 타고 이동하다 추락사고로 사망했다. 그는 두 달 전 푸틴 대통령을 상대로 무장 반란을 일으켜 크렘린 궁에 위협적인 인물로 부상했었다.

알렉세이 나발니. AP 뉴시스
알렉세이 나발니. AP 뉴시스


지난 16일에는 푸틴 대통령이 가장 두려워하던 야권 지도자 나발니가 수감 중 의문사했다. 서방은 나발니 사망의 책임을 푸틴 러시아 대통령에게 돌리며 맹비난하고 있지만, 러시아 당국은 나발니의 사인은 혈전증이라며 타살 의혹을 부인하고 있다. 이와 관련해 나발니가 구소련 국가보안위원회(KGB) 요원들의 암살 기술에 의해 사망했을 것이란 주장이 나온다. 인권단체 ‘굴라구.넷’의 설립자 블라디미르 오세킨은 나발니가 수시간 동안 추운 상황에 노출된 뒤 가슴을 주먹으로 맞아 사망했을 가능성이 크다고 주장했다. 오세킨은 나발니가 사망한 시베리아 교도소 관계자 등의 말을 인용해 나발니의 시신에서 발견된 멍이 이러한 ‘원 펀치’ 암살 기술과 일치한다고 덧붙였다. 실제 나발니는 죽기 전 영하 27도까지 기온이 떨어지는 야외 독방 공간에서 2시간 30분 넘게 있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나발니 사망에 앞선 13일에는 지난해 우크라이나로 망명한 러시아군 조종사 막심 쿠즈미노프가 스페인 남부 한 마을의 아파트 주차장에서 총에 맞아 숨진 채 발견됐다.

나발니라는 최대 정적이 사라진 만큼 푸틴 대통령의 권력은 더 공고해질 전망이다. 현재 푸틴 대통령은 지지율이 70%를 웃돌아 5선 연임이 유력하다. 다음달 대선 승리 시 임기는 2030년까지 늘어나 30년을 통치하게 된다. 사실상 푸틴 대통령이 영구 집권의 길로 간다는 의미다. 이 때문에 유럽 전역에 피신해 있는 러시아 망명자들이 공포에 휩싸여 있다고 외신들은 보도했다. 최근 러시아 대법원에 의해 대선 출마 자격을 박탈당한 야권 정치인 보리스 나데즈딘은 모스크바타임스와 인터뷰에서 “나발니의 실수들로부터 배웠다”며 “지지자들을 규합하지 않을 것”이라면서 사실상 푸틴 대통령에게 백기를 들었다.

이현욱 기자 dlgus3002@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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