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0년대 가정에서 태어난 셋째 아이는 세 명 중 두 명 수준으로 남자아이였다. 생물학적으로 정상적인 성비는 여성 100명 당 남성 105~106으로 알려졌지만 1993년 셋째 아이의 성비는 207.3이었다. ‘반드시 아들을 낳아야 한다’는 남아선호 사상으로 남아를 낳지 못한 경우 셋째 아이까지 출산하는 경향이 있었기 때문이다.
비정상적이던 셋째 아이 성비는 2014년부터 정상 성비 수준으로 내려왔다. 신생아 성비는 1980년 105.3명, 1985년 109.4명, 1990년 116.5명으로 악화하다가 2022년 104.7명으로 정상범주로 돌아왔다. 헌법재판소는 시대변화로 ‘성평등 의식이 확대되고 성비 불균형이 해소됐다"고 봤다. 지난 28일 의료인이 임신 32주 이전에 임신부나 가족에 태아의 성별을 알려주는 것을 금지한 의료법 조항에 ‘위헌’ 결정을 내린 이유다.
헌재는 "여성의 사회경제적 지위 향상과 함께 양성평등의식이 상당히 자리 잡아가고 있고, 국민의 가치관 및 의식의 변화로 전통 유교사회의 영향인 남아선호사상이 확연히 쇠퇴하고 있다"고 결정 이유를 밝혔다. 통계청이 밝힌 출생 성비를 제시하며 "셋째 아이 이상도 자연 성비의 정상범위에 도달한 2014년부터는 성별과 관련해 인위적인 개입이 있다는 뚜렷한 징표가 보이지 않는다"고 봤다. 오히려 성별을 알려주지 않는 것이 부모의 알 권리를 과도하게 침해한다고 지적했다.
헌재는 지난 2008년에도 이 법에 대해 한 차례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렸다. 원칙적으로 전면 금지됐던 태아 성별 고지는 법 개정을 통해 임신 32주가 지나면 가능하도록 했다. 하지만 임신 8개월이 지나서야 태아의 성별을 알 수 있도록 하는 것도 부모의 정보 접근권을 침해하는 것이란 지적이 계속됐다. 법으로는 성 감별에 제한을 두고 있었지만 의료 현장에서는 초음파로 성감별이 가능한 임신 16주부터 "아빠를 닮겠다"거나 "분홍색 옷이 잘 어울리겠다"는 식으로 태아의 성별을 부모에게 우회적으로 알려주는 것이 보편화 되기도 했다. 헌재는 입법 목적이 달성된 데다가 현장에서 법이 사문화된 것도 고려한 것으로 보인다.
다만 현행법률상 낙태를 처벌할 수 있는 근거가 전혀 없는 상황에서 태아의 성감별 허용이 자칫 낙태를 더 부추길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소수의견을 낸 이종석·이은애·김형두 재판관은 "남아선호사상이 쇠퇴했지만 ‘완전히’ 사라졌다고까지는 할 수 없다"며 "남아선호가 아니더라도 부모가 원하는 성별로 자녀를 한 명만 낳으려는 경향이 더해지면 태아 성별에 따라 낙태가 이뤄질 개연성은 존재한다"고 지적했다. 이어 "과거보다 가능성이 낮아졌다고 하더라도 국가는 낙태로부터 태아의 생명을 보호할 책임을 소홀히 해서는 안 된다"며 헌법불합치 결정을 통해 조항 자체는 남겨두되 고지 가능 시기를 앞당기는 대체 입법을 하는 것이 옳다고 주장했다.
반면 다수의견은 "부모가 태아의 성별을 이유로 낙태를 하더라도, 이 경우 태아의 생명을 박탈하는 행위는 성별 고지 자체가 아니므로 국가가 개입해 규제해야 할 단계는 낙태 행위가 발생하는 단계"라고 반박했다.
정선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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