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 = 의자 작가
일러스트 = 의자 작가


■ (3) 이경란
팬심 - ‘덕질 삼대’


할머니가 효자손으로 내 어깨를 탁탁 쳤다. 주말에 뭐 할 거냐고 엄마가 물었을 때 바쁘다, 아주 중요한 일이 있다고 대답하지 못한 걸 후회하느라 바빠서 할머니가 부르는 소리를 놓쳤다. 티브이 소리가 너무 크기도 했다. 혹시 백화점에 따라가겠느냐고 물어볼까 봐 여지를 둔 거였는데 엄마는 바로 훅 들어왔다. 며칠만 네가 할머니 당번 좀 해. 어차피 할 일도 없잖아. 운동화 하나 건져 보려다 이 무슨 황당 시추에이션. 끝없이 울려대는 티브이 소리에 머리가 지끈거린다.

왜요?

할머니가 효자손으로 티브이 리모컨을 가리켰다. 화면에선 어느새 트로트 프로가 끝나고 시끄러운 광고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채널을 바꾸라는 뜻이었다. 그걸 어제 할머니 집에 오고 삼십 분 만에 알게 되었다. 리모컨으로 대형 달력 여백에 적힌 채널 번호를 찍었다. 번호는 일고여덟 개쯤 큼지막하게 적혀 있었는데 이 채널들이 모두 트로트 프로그램을 방영하는 것임도 어제 알게 되었다.



할머니, 드라마 안 본다.

드라마 안 보는 할머니도 있어?

안 보는 게 아니라 못 보는 거야.

왜? 재미없어서? 무서워서?

엄마는 심란한 목소리로 말했다.

이제 스토리를 못 따라가는 거지.

할머니는 채널을 바꿀 때마다 트로트 프로가 아니면 모조리 고개를 저었다. 좋아할 줄 알았던 ‘전원일기’도, 전원일기 출연진들이 나오는 예능 프로인 ‘회장님네 사람들’도 절레절레.

할머니, 이건 재밌지 않아요? 나는 자연인이다.

없어.

이건요? 걸어서 세계 속으로.

싫어.

국과 반찬은 냉장고에 들어 있고, 청소는 딱히 할 것도 없고, 시간 맞춰서 끼니와 약만 대령하면 되는 일이라고 했던 엄마의 말과 달리 할머니가 깨어 있는 시간에는 잠시도 딴짓을 할 수가 없었다. 기껏 한다는 게 스마트폰을 만지작거리는 거였는데 그것도 수시로 방해받았다. 따뜻한 물 떠다드려, 안약 넣어드려, 화장실 갈 때마다 부축해드려, 좁은 집 안을 세 바퀴씩 하루 세 번 걷기 운동시켜드려, 엄마는 할 일을 번호 매겨 정리한 후 카톡창 공지로 올리고 하나라도 지키지 않으면 용돈은 없다고 통고했다. 대신 임무를 완벽하게 수행하면 성공보수(엄마의 표현 그대로다)를 쏴주겠다는 말을 마지막에 느낌표 세 개와 함께 추가했다. 와아! 엄마가 신내림을 받았나? 제시한 금액이 정확하게 NBT 콘서트 티켓값과 똑같았다! 이건 계시였다. 그렇다면 뭐. 어차피 할 일도 없고 어차피 남도 아닌데 하고 쉽게 생각했던 것과 달리 나는 하루 만에 지쳐 버렸다. 하루가 뭐야. 두어 시간 지나니 지치고 지겨웠다.

몇 개의 채널을 훑다 안착한 곳은 역시 트로트 경연 프로그램이었다. 최근 것만이 아니라 하고 또 하고 다시 하고 또 하는 몇 년 전 프로까지. 트로트를 잘 모르는 나도 이미 알고 있는 몇 명과 할머니 집에 온 지 하루 만에 새로 알게 된 가수들이 이 채널 저 채널에 겹치기로 나왔다.

없어, 싫어, 할 때의 얼굴과 달리 트로트 프로를 볼 때는 할머니의 눈이 금방 초롱초롱해졌다. 녹내장 약과 백내장 약을 시간 맞춰 넣어줄 때는 흐릿했던 눈동자가 말이다. 특히 호걸이란 가수가 나왔다 하면 할머니는 소파에 기댔던 상체를 앞으로 쭉 내밀고 봤다. 어째 눈도 한번 깜빡이질 않는지. 호걸이 들어가면 다시 등을 기대고 편안한 자세를 취했다.

쟤가 젤 좋아요?

좋긴. 커. 아니, 젤 비싸. 아니, 젤….

잘한다고?

잘해.

내 귀에도 호걸이 제일 낫긴 했다. 뇌경색 후유증으로 할머니는 언어를 너무 많이 잃어버렸다고 했는데 그게 뭔지 이번에 제대로 알게 되었다. 엄마 말대로 대화는 꼭 스무고개 같았다. 서너 번 만에 맞히기도 했고 스무 번 채우고도 못 맞히기도 했다. 연세가 많아서 그렇겠지, 했다가 막상 겪어 보니 마음이 좀 그랬다.

보일러 온도 잘 맞춰놓고. 새벽에 할머니 추울 수도 있으니까 온수매트는 잠자리 들기 한 시간 전에 켜놓고. 화장실 불은 켜두고 문을 좀 열어둬. 새벽에 할머니 화장실 가다 넘어지면 큰일이야. 엄마는 조목조목 공지까지 올려놓고도 이런 식의 카톡을 생각날 때마다 보냈다. 도대체 신경 써야 할 일이 몇 가지인지. 이모는 왜 당번 주에 독감이래? 이모 땜빵이면 엄마가 좀 하지 왜 날 시켜? 다음 주가 엄마 당번이라지만 이번 주도 그냥 하지? 마음은 마음이고 불만은 불만. 나는 한쪽만 이어폰을 끼고 음악을 튼 채 바닥에 벌렁 누웠다.

사흘째가 되자 등이며 어깨며 죄다 결렸다. 아침 여덟 시부터 밤 아홉 시까지 잠시도 벗어나지 못하는 일정은 난생처음이었다. 깜빡 잠이 들었나? 잠결에도 음악 소리가 이상해졌다 했더니 촤아아아 하는 물소리였다. 이상한 느낌에 벌떡 일어났다. 여긴 어디? 나는 누구? 아, 여긴 할머니 집이지. 그런데 할머니는 어디?

욕실 문은 항상 조금 열어두라던, 특히 변기에 앉아 있을 때 절대 꼭 닫지 말라던 엄마의 지시를 어긴 건 할머니였다. 문을 열자 맨 먼저 뛰쳐나온 건 냄새였다. 세면대 수전에서 물이 콸콸 쏟아지는데 할머니는 아래를 벗은 채 젖은 옷을 움켜쥐고 바닥에 주저앉아 있었다.

무슨 일이 생기면 꼭 알려줘야 한다는 엄마의 지시를 이번에는 내가 어겼다. 할머니를 일으키고 씻기고 새 옷을 입힌 다음 버린 옷을 빨아 널고 나니 팔이 부들부들 떨렸다. 할머니는 아무 말도 안 했다. 온수매트를 켜고 침대에 눕혀 드렸다. 할머니는 내게 등을 돌리고 창 쪽으로 돌아누웠다. 이제 잠시 쉴 틈이 생긴 건데 이상하게 방에서 나갈 수가 없었다. 침대 옆 방바닥에 앉아 핸드폰으로 유튜브를 틀었다. 호걸의 영상은 수없이 많았고 조회 수도 어마어마했다. 볼륨을 최대로 올려서 틀었더니 귀가 쨍쨍 간지러웠다. 할머니는 한 곡이 끝나기도 전에 슬그머니 돌아누웠다. 딱딱하게 굳었던 얼굴이 다 풀려 있었다. 나도 히죽 웃었다. 저절로 웃음이 났다.



좋지, 할머니?

할머니가 오랜만에 입을 벌리고 웃었다. 동영상이 잘 보이게 침대에 올라가 옆에 누웠다. 할머니가 꿈틀꿈틀 힘겹게 움직여 자리를 내주었다.

다음 날도 아침부터 트로트 프로를 틀어두었다. 한쪽 귀엔 이어폰을 꽂고 뒹굴면서 NBT 영상을 봤다. 효자손이 탁탁, 채널을 바꾸고, 물을 드리고, 약을 드리고, 다시 탁탁, 채널을 바꾸고, 밥을, 간식을 드리고, 탁탁, 바꾸고, 운동을 시켰다. 심심풀이로 호걸을 검색했더니 다다음 달에 콘서트를 한다고 했다. 예매 개시가… 그날 저녁 7시였다! 지난번 콘서트는 접속 대기자만 수십만 명에 몇 분 만에 매진이었다는데 그 정도면 내가 십 년째 쫓아다니는 NBT보다 더 치열하잖아. 아, 참, 노인들이 진짜! 할머니가 고개를 앞으로 쭉 뽑았다. 호걸이었다.

7시 1분, 예매에 성공했다. 내 특기는 티케팅. 웬만하면 실패하지 않는다. 요 몇 년 동안 추가된 스펙은 별로 없지만 그거 하나는 뒤지지 않는다. 자소서에 특기로 쓸까 말까 진지하게 고민하고 있다. 그런데 티켓이 NBT 것보다 비쌌다! 믿기 어려웠지만 안 믿을 수도 없었다. 어쨌거나 좋은 자리로 두 장. 이건 암표로 넘겨도 한몫 잡는 거지만 그런 짓은 하지 않는다. 오래전에 딱 한 번 암표를 샀는데 내가 건넨 돈을 한 장 한 장 세는 그 손을 보면서 다시는 사지도 팔지도 않겠다고 결심했었다. 팬이라면 그런 짓은 하지 않아. 나는 지난주 예매해두었던 NBT 티켓을 자기 전에 취소했다. 덕질 인생 십 년에 취소는 처음이었다. 아깝지만 어쩔 수 없지. 날짜가 딱 겹치는걸.

다음 날 예매 페이지를 캡처해서 엄마한테 카톡으로 보냈다. ‘티켓값 주세요. 성공보수는 따블!’도 함께. 엄마가 대뜸 전화를 걸어왔다. 톡에는 제발 톡으로 답하라고 해도 엄마는 급하면 전화였다. 왜 두 장이야? 그럼 할머니 혼자 어떻게 보내? 내가 모시고 갈 거야. 어차피 할 일도 없고. 나는? 엄마가 왜? 너 혼자 할머니 감당 못 해. 둘은 따라붙어야지. 가고 싶은 건 아니고? 그건 아니지만.

한숨이 푹 나왔다. 이제 와서 한 장 더 건지느니 오픽 등급 올리는 게 쉽지. 이렇게 되면 시도 때도 없이 취소 티켓 나는 것만 노려야 한다.

있지, 사실 아닌 건 아니야. 엄마도 왕년에 좀 갔었다니까. 누구? 송골매. 재작년에도 갔었어. 헐! 엄마가 갑자기 킥킥거리며 웃었다. 너 시험 앞이어서 말 안 했지. 우리 셋이 가자. 따따블 쏠게!

할머니가 효자손으로 소파 팔걸이를 탁탁 쳤다. 나는 얼른 채널을 훑어서 할머니가 좋아하는 프로로 바꿨다.

엄마, 끊어. 티켓 알아봐야 돼.

잠시 후 엄마가 카카오송금을 하고 나서 사진을 한 장 보내왔다. 아줌마 넷이서 일렬로 횡단보도를 건너고 있었다. 모두 맨발이었다. 비밀인데, 니네 이모, 지금 런던 찍고 리버풀에 있어. 비틀스 투어래. 미친 거 아냐? 나는 바로 답을 했다. 대박!

이경란 작가. 홍하얀 제공
이경란 작가. 홍하얀 제공


“좋아하는 감정은 줄 때 더 빛나 덕질은 영혼의 비타민”

■ 작가의 말

“좋아하는 감정은 받을 때보다 줄 때 더 빛나는 것 같아요. 그래서 덕질은 영혼의 비타민입니다. ”

이경란 작가의 ‘덕질 삼대’는 할머니, 엄마, 딸의 ‘덕질’하는 일상을 섬세하게 그려낸다. 좋아하는 대상은 각자 다르지만, 세 사람은 서로의 덕질을 존중하고, 그 힘으로 서로에게 한껏 다정하다. 이 작가는 “오랫동안 어떤 대상을 좋아하면 소중하게 간직하면서 응원하게 된다. 그런 마음을 지켜나가는 과정에서 자신의 삶도 점검하게 된다”고 말했다.

작가 자신뿐 아니라 가족, 지인의 덕질에서 영감 받은 장면들이 많다. NBT(NCT가 떠오른다) 팬인 ‘딸’은 지오디를 오래 덕질한 이 작가의 딸이고, ‘호걸’(임영웅일 것이다)을 좋아하는 ‘할머니’는 이 작가의 노모가 투영됐다. 이 작가는 뇌경색 후유증이 있는 어머니를 주말 동안 돌보고 있는데, 깨어 있는 시간 대부분 트로트 경연 프로그램을 함께 본다고 했다.

유일하게 실제 이름 그대로 나오는 ‘송골매’는 이 작가가 45년 덕질한 ‘최애’다. 첫 습작이자 11년간 고쳐 쓴 장편 ‘디어 마이 송골매’(교유서가)의 추천사를 송골매 멤버 배철수가 썼고, 그가 진행하는 라디오 프로그램 ‘음악캠프’에 출연해 책 소개도 했다. 이 작가는 “송골매 재결합 콘서트에 가서 열광했더니 수년 간 고생한 이명까지 사라졌다”면서 “그야말로 다 이뤘다. ‘성덕’(성공한 덕후)이다”며 웃었다.

“팬심, 덕질의 근원은 사랑입니다. 특히, 저는 노년의 덕질에 아주 긍정적이고요. 그 ‘편리한’ 사랑이 진짜냐 가짜냐 따지는 일은 어리석죠. 중요한 건 사랑할 때의 충만감이니까요.”

■ 이 작가는

1967년생. 2018년 문화일보로 등단, ‘빨간 치마를 입은 아이’ ‘오로라 상회의 집사들’ ‘디어 마이 송골매’를 썼다.

박동미 기자 pdm@munhwa.com
박동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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