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승훈 논설위원

‘이 마을의 주민은 9000명에 달한다. 정확히는 8496명이다. 주민들은 596점의 그림 속에 살고 있다. 아기 천사, 투우장의 관객, 개미 크기의 곤돌라 사공까지. 가장 나이가 많은 주민은 1230년대에 태어난 성모 마리아와 그 품속 아기 예수다.’

미국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메트)의 거장 전시관(2층 유럽회화 1250∼1800)의 풍경을 묘사한 글이다. 그곳에서 그림 속 인간 형상을 하나하나 셀 수 있는 사람은 관장이나 큐레이터가 아니다. “가장 아름다운 곳에서 가장 단순한 일을 하는 사람”, 경비원이다. 지금은 메트의 투어가이드로 일하는 패트릭 브링리가 쓴 ‘나는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의 경비원입니다’(원제 ‘All the Beauty in the World’)만큼 친밀한 미술관 안내서가 있을까. 그는 형의 죽음에 충격을 받아 직장을 그만두고 “한동안 고요하게 서 있고 싶어서” 경비원에 지원했다. 매일 8시간 동안 “조용히 선 채 두 눈을 크게 뜨고, 아름다운 작품들과 뒤엉켜 내면의 삶을 자라게 하는” 특권을 누린다.

다른 전시 구역엔 210명의 예수가 사는데, 가장 슬픈 그림으로 베르나르도 다디의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를 꼽았다. 고통의 무게 말고는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아서란다. 위대한 예술품은 “뻔한 사실을 되새기게 하는, 우리가 직면하는 ‘이것이 현실이다’를 말하려고 한다”는 걸 깨닫는다. 그렇게 10년을 보내는 동안 경비원은 예술품에서 치유 받고 힘을 얻었다. 책 끝엔 본문에서 언급한 그림들을 메트 홈페이지에서 쉽게 검색할 수 있도록 취득번호 리스트를 실었다. 직접 가보지 않아도 책을 읽으면서 고해상도의 그림을 함께 감상하면 나름 괜찮은 메트 관람이 된다.

지난해 말 국내 번역 출간된 이 책이 줄곧 베스트셀러 상위권을 차지하고 있다. 저자조차 언론 인터뷰에서 “한국에서 왜 인기가 있는 것이냐”고 물었을 정도다. 미술 전시회도 흥행 대박이 이어지고 있다. 10만 명이 넘게 봤다는 ‘미셸 들라크루아, 파리의 벨 에포크’(31일까지 예술의전당 한가람디자인미술관)도 그중 하나다. 지금 메트에선 한국실 개관 25주년 기념 ‘계보(LINEAGES) : 메트의 한국 미술’ 특별전(10월 20일까지)이 열리고 있단다. 그래도 먼저 생각나는 건 메트 앞 핫도그 트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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