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주철환의 음악동네 - 에릭 카멘 ‘올 바이 마이셀프’
“선생님 돌아가시면 추도사는 제가 쓸게요.” 격의(隔意) 없는 사이라도 선을 넘은 대화다. 원래 격의란 서로 터놓지 않는 속마음이란 뜻인데, 안 해도 될 말(안 하는 게 나은 말)을 내뱉은 건 나였고 얼떨결에 그 말을 들은 선생님은 ‘전원일기’의 김혜자 배우였다. 녹화 날마다 짬짬이 분장실에 들러 말동무가 됐는데 마침 그 전날 유명인이 돌아가셔서 신문에 추도사가 실린 게 화근(?)이었다. 그때 그분의 반응이 인상적이어서 그 후 추도 기사가 나올 때마다 나는 이 말을 떠올리며 나를 다잡는다. “고맙습니다. 그런데 선생님이 제 추도사를 쓸지 제가 선생님의 추도사를 쓸지는 아무도 모른답니다.”
정제된 형식의 엄숙한 문장이어야만 추도사가 완성되는 건 아니다. 연극배우 오현경(1936∼2024)의 영결식에서 동료 이순재가 고인에게 건넨 마지막 인사도 추모의 울림이 남달랐다. “TBC 시작할 당시 함께했던 남자배우 6명 중 이낙훈, 김동훈, 김성옥, 김순철이 자네를 기다리고 있다. 나도 곧 갈 테니 우리 가서 다 같이 한번 만나세” 거명된 이름들은 한때 무대와 화면을 주름잡던 쟁쟁한 분들이신데 여기서는 차분히 ‘기다리는 사람들’로만 표현돼 살아 있는 자들의 가슴을 먹먹하게 만들었다.
이번 주말(3월 22∼23일) 강릉아트센터에서는 노배우들(신구, 박근형, 박정자, 김학철)이 관객을 기다린다. 표를 구하기에는 이미 늦었다. 전회 매진됐기 때문이다. 단언컨대 이건 전적으로 배우의 힘이다. 1936년생 신구의 투혼을 보며 사람들은 ‘내가 밟은 인생 무대에서 나는 누구를 기다리며 무엇을 바라는가’를 점검하는 심정일 것이다.
올 초 국립극장 달오름극장에서 무려 150분 동안 부조리극을 보는데 객석에서 간간이 웃음소리가 물결쳤다. 나는 아흔을 앞둔 그분이 ‘너희들이 삶의 맛을 알아’라고 묻는 것 같았다. 인생이 마인드(Mind)라면 예술은 리마인드(Remind)다. 연극이 끝났을 때 다시 정신을 가다듬으며 ‘그래, 나는 살아 있다’고 다짐한다면 본전을 건진 거다. 늪에 빠져 허덕이는 나를 건져내는 것이야말로 진정 예술의 효용이다.
‘왔다가 그냥 갑니다’(1979·원곡 윤중식)라는 노래가 있다. 가수는 왔다가 그냥 간다고 여길지 몰라도 노래는 왔다가 그냥 가기가 쉽지 않다. 기억하고 부르는 사람이 있는 한 노래는 죽지 않는다. 늘 활기차고 푸근했던 방실이(1963∼2024)를 떠나보내고 나는 그녀가 남긴 노래들을 하나하나 찾아서 들었다. ‘첫차’ ‘서울 탱고’는 유명하지만 묻혀 있는 노래 중에도 보석이 많았다. 채집 목록에 올린 노래가 ‘결심’이다. ‘잘 있거라 나는 간다 정을 남기고 울면서 떠나가는 내 마음을 너는 모르지 너와 했던 수많은 약속 이제는 꿈이 되었다.’ 마치 운명을 예감하고 팬들에게 불러주는 노래 같다. 요약 발췌하면 그녀는 정을 남기고 꿈이 됐다.

작가·프로듀서·노래채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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