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준우 베이징 특파원

남송 시대, 금나라를 상대로 연전연승하던 명장 악비(岳飛)가 왕도였던 임안(臨安)으로 소환돼 비밀리에 처형되자 많은 사람이 그를 심문하던 재상 진회(秦檜)에게 몰려가 그의 죄상을 물었다. 진회는 이에 “아마도 있었을 것(莫須有)”이라고 답변했고, 악비와 뜻을 같이하던 한세충(韓世忠)은 한숨을 쉬며 “그 세 글자로 세상이 과연 납득하겠는가(何以服天下)”라고 반문했다.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을 무시한 채 진회는 금과 화친하는 자신의 길을 밀어붙였고, 이는 지난해 중국 최고 흥행작이자 한국에서도 개봉한 영화 ‘만강홍:사라진 밀서’의 소재가 되기도 했다.

지난 11일 막을 내린 중국 최대의 연례 정치행사 양회(兩會·전국인민대표대회와 전국인민정치협상회의)는 코로나19 팬데믹 시대를 마치고 처음 열린 행사였다. 지난 3년간 행사 취재를 앞두고 내·외신 기자를 이틀간 격리시키던 원칙도 폐기됐고, 취재를 원하는 정부 관계자들을 데려오겠다는 시도도 등장했다. 이전보다 기자들 앞에 나서는 정부 인사가 늘었던 점은 분명 특기할 만했다. 여성의 날을 맞아 여기자들을 위한 행사를 열고, 현장에 중국 고위급 인사들이 나온 것도 주목할 만했다. 여전히 취재에 제약이 많았지만, 중국에서 오랜 기간 취재를 해온 외신기자들은 달라진 중국의 취재 지원에 비교적 긍정적이었다. 그러나 총리 기자회견이 사라진 점, 등장한 인사들의 범위가 기대와 달리 협소했던 점 등은 취재진이 납득하지 못했다.

경기부양책을 기대했던 경제 전문가나 투자자들에 대한 설득력은 이보다 더 약한 것 같다. 리창(李强) 국무원 총리가 국내총생산(GDP) 상승률 5%란 목표치를 내놨지만, 이에 대한 구체적인 방안은 제시된 게 없었다. 심각하게 떨어지던 주가를 막기 위해 이전 달에 큰 폭의 금리 인하를 단행하며 기대감을 키웠지만, 정작 중요한 양회에서 경제 부흥에 대한 계획은 보이지 않는 상황이다. 시진핑(習近平) 주석이 제창한 발전계획인 신품질생산력(新質生産力)은 내용도 모호하고 올해가 아닌 미래의 목표에 더 가깝다. 왕원타오(王文濤) 상무부장이 내수 진작을 위해 “(인민들이) 자동차와 가전제품 등 낡은 제품을 새것으로 바꾸도록 촉진하겠다”는 발언도 구체적인 내용은 드러나지 않았다. 판궁성(潘功勝) 런민(人民)은행장은 6일 “현재 중국 은행업 지급준비율은 평균 7%로, 앞으로 인하할 여지는 여전히 있다”며 추가 조치를 시사했지만, 부족하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이 정도 정책으로 중국이 경제성장 목표치인 5%를 달성할 것이라 납득하는 사람은 드물다. 중국인들도 현재의 어려운 상황에서 정부가 내놓는 미진한 개혁안을 답답한 마음으로 지켜보는 사람이 많다. 중국 지도부의 양회는 많은 사람이 납득하지 못한 채 마무리됐다. 그러나 현재 중국에서 큰 변화의 움직임은 없어 보인다. 1인 체제, 1당 체제가 공고화된 중국에서 현 지도부에 구체적 방안을 요구하거나 이를 못할 경우 바꿔야 한다는 생각까진 없는 듯하다. 그러나 한국은 다르다. 총선을 앞둔 상황에서 납득하지 못하는 정책이나 불필요한 정쟁을 국민은 그냥 두고만 보지 않는다.

박준우 베이징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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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준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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