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17년 5명에게 장기를 기증하고 떠난 박용수(당시 68세) 씨가 2015년 11월 아내, 두 딸과 함께 부산 여행에서 찍은 사진. 박 씨 오른쪽이 막내딸 박영림(25) 씨.   박영림 씨 제공
지난 2017년 5명에게 장기를 기증하고 떠난 박용수(당시 68세) 씨가 2015년 11월 아내, 두 딸과 함께 부산 여행에서 찍은 사진. 박 씨 오른쪽이 막내딸 박영림(25) 씨. 박영림 씨 제공


■ 살리고 떠난 사람들 - 故 박용수 씨 딸 영림 씨

아빠 7년前 세탁소서 쓰러져
5명에 신장·간 등 새 생명 선물
생계 유지 위해 간호학과 포기

간호조무사로 근무 중 ‘새 꿈’
건강 챙기는 영양사 되기로 결심
작년부터 장기기증본부 장학금


“아빠 덕분에 잘 크고 있다고, 하늘에서 너무 걱정하지 말라고 말해주고 싶어요.”

지난 2017년 초봄, 세탁소를 운영하던 박용수(당시 68세) 씨가 갑작스레 쓰러졌다. 당시 박 씨를 가장 먼저 발견한 사람은 학원을 가기 전 아버지를 보려고 세탁소에 들렀던 18세 늦둥이 막내딸 박영림(25) 씨였다. 바닥에 쓰러진 아버지를 발견하고, 곧장 119에 신고했지만 아버지는 결국 깨어나지 못했다. 가족들은 논의를 통해 박 씨의 장기 기증을 결정했다. 신장, 간, 각막을 기증해 5명의 생명을 살렸다. 영림 씨는 “아버지가 뇌사로 돌아가셨지만, 살아있는 사람을 살리고 가는 것이 의미 있는 일이라고 생각했다”며 “어머니가 먼저 마음을 먹으셨고 언니와 저도 동의했다”며 당시를 회상했다.

영림 씨는 아버지를 자상하고 따뜻한 사람으로 기억했다. 박 씨는 자식뿐만 아니라 같이 상가를 운영하는 어르신들의 매장 전구를 갈아주는 등 주변을 살뜰히 챙겼다. 세탁소와 집이 붙어있어 어머니가 일을 나가시면 영림 씨는 아버지와 단둘이 밥을 먹었다.

“꽃게를 좋아하는 저를 위해 꽃게살을 일일이 발라주셨던 순간이 가장 기억에 남아요. 라면 냄새를 맡으면 그때 세탁소에서 아버지가 끓여주시던 라면이 떠오르고요.”

어느덧 20대 중반이 된 영림 씨는 여전히 세탁소 앞에서 자신을 향해 밝게 웃던 아버지의 모습이 사무치게 그립다.

박 씨가 세상을 떠나고 세탁소 문을 닫은 후 가족들에게도 많은 변화가 찾아왔다. 간호사를 꿈꾸던 영림 씨는 생계 유지를 위해 대학이 아닌 간호조무사로 병원에 취업하기로 했다. 그러던 중 영림 씨의 마음에 새로운 꿈이 움텄다. 환자들의 회복을 돕기 위해 건강한 식단을 계획하는 영양사다. 영림 씨는 “어린이급식지원관리센터 같은 곳에서 아이들을 위해 일하거나 몸이 좋지 않으신 노인분들의 건강한 식단을 계획하는 영양사가 되고 싶다”며 “언제나 타인에게 친절했던 아버지처럼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말했다.

새로운 꿈이 생긴 영림 씨는 직장과 국가고시 공부를 병행하는 바쁜 삶을 이어오다 지난해와 올해 사랑의장기기증운동본부로부터 ‘D.F 장학금’(장기기증인 자녀 대상 장학금)을 받은 후 온전히 학업에 매진하고 있다. 영림 씨는 “장기기증인 자녀들이 꿈과 재능을 이어갈 수 있도록 지원해주신 분들께 감사드린다”며 “아버지의 장기를 이식받은 이들 역시 따뜻한 마음을 품고 건강하게 살아가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조율 기자 joyul@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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