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북팀장의 북레터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책 마을. 한국인에게도 잘 알려진 진보초(神保町)는 일본 근대화 시기 지식 유통의 중심지였습니다. 전성기만은 못하지만, 130개 고서점이 오늘도 책을 사고팝니다. 최초의 서점이 1877년 문을 열었으니, 무려 150년 역사. 일본에서 일 년간 지낼 기회가 생겼을 때, 진보초를 자주 찾았는데요. 서가에서 더듬더듬 제목을 좇다 보면 가끔 아는 책도 만났고, 공짜로 일본어 공부도 할 수 있었습니다. 이번 주 신간 중 ‘하나의 거대한 서점, 진보초’(정은문고)가 그래서 유독 눈에 들어왔습니다. 그러니까, 기억과 직업의 협업….

책은 일본 희곡 번역가인 박순주 작가가 진보초 서점 18곳을 살피고, 주인장들을 인터뷰해 썼습니다. 조금 편견도 있었습니다. 100년 넘은 서점 몇 군데 훑고, 장인정신 강조하고, 여행 명소처럼 소개하는 건 아닐까. 기우였습니다. 긴 역사 속에서 수백 개의 서점이 어떻게 시대와 호흡하고, 풍파를 견뎌냈는지, 책 동네가 여전히 건재한 비결은 무엇인지, 저자는 성실한 취재와 탐구를 통해 보여줍니다. 진보초가 새롭게 드러납니다. 형형색색 화구와 문구류가 가득한 ‘분포도’는 그저 140년 된 문방구점이 아니라 일본 최초로 유화물감을 개발해 화구 국산화를 이끈 개척자였고, 고지도 전문점 ‘신센도’의 주인장은 매일같이 고서 경매에 다니고 지도 업자들과 정보를 공유합니다. 그래서 지도를 오감으로 느끼는 게 뭔지 알려줍니다. 영화·연극·희곡·시나리오 고서 전문인 ‘야구치서점’엔 영화인들이 많이 찾아온다고 하는군요. 유명 배우와 감독들이 단골인 걸 알았다면, 좀 더 자주 가서 기웃댈 걸 그랬습니다.

진보초를 거닐 땐 ‘책 담당’ 기자가 될 줄 몰랐습니다만, 책을 읽고, 쓰는 사람이 된 지금 돌아보니 새삼 진보초가 부럽습니다. 출판 불황은 전 세계 공통이고, 일본도 전 같지 않다지만, 특정 분야 헌책만으로 서점 하나를 꾸려 운영한다는 것은 출판대국의 해가 아직은 지지 않았다는 걸 보여주니까요.

책은 직접적으로 출판, 서점의 미래를 논하지는 않습니다. 다만, 맨 앞에 젊은 서점 ‘파사주 바이 올 리뷰스’를 배치한 것이 의미심장합니다. 이곳에선 누구나 책장을 빌려 자신만의 ‘작은 서점’을 가질 수 있습니다. 책장주는 책을 팔고 서점은 책장 임대료를 받습니다. 출판 평론가 이시바시 다케후미는 해설에서 “지속 가능한 장사를 찾는 실험”이라며 “온갖 상식을 재검토하는 시대”임을 강조합니다. 책의 끝에 인용된 ‘진보초 장로’ 시바타 신의 말도 같은 맥락입니다. “책을 어떻게든 돈으로 바꿔 살아가는 곳이 서점이며, 진보초는 그런 상인이 모인 동네다.” 이게 진보초의 저력이 아닐까요.

박동미 기자 pdm@munhwa.com
박동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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