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라질 출신 이사나예 라미레스 남자 배구대표팀 감독. 아시아배구연맹 제공
브라질 출신 이사나예 라미레스 남자 배구대표팀 감독. 아시아배구연맹 제공


한국 배구에 외국인 지도자 바람이 분다. 단순히 미풍(微風) 수준이 아닌 엄청난 태풍(颱風) 수준이다.

대한배구협회는 지난 18일 공석이던 남녀 배구대표팀 감독에 브라질 출신의 이사나예 라미레스 감독과 푸에르토리코 국적의 페르난도 모랄레스 감독을 각각 선임했다.

2019년 스테파노 라바리니 감독이 여자대표팀의 지휘봉을 잡아 한국 배구 역사상 최초의 외국인 감독이 된 이래 여자 대표팀은 3연속 외국인 감독을 선임했고, 남자대표팀은 사상 처음으로 외인 지도자에게 한국 배구 재건의 중책을 맡겼다. 라미레스 감독은 파키스탄을 이끌고 항저우아시안게임에서 한국을 상대해 승리하는 등 한국대표팀에 대한 높은 이해도가 선임 배경으로 알려졌다. 모랄레스 감독은 푸에르토리코를 국제배구계에서 성공적으로 이끈 경력이 높은 점수를 얻었다.

V리그도 외국인 지도자 바람이 거세다. 2023∼2024시즌 V리그 남녀부 14개 팀 가운데 외국인 감독은 4명이었다. 이는 2005년 V리그가 출범한 이래 가장 많았다. 하지만 다음 시즌 외국인 지도자는 더욱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3시즌 연속 여자부 최하위에 그친 페퍼저축은행이 성적 부진 등의 책임을 물러 미국 출신 조 트린지 감독과 시즌 중 결별했다. 하지만 남자부 현대캐피탈이 프랑스 출신의 세계적인 명장인 필리프 블랑 일본 대표팀 감독을 선임했고 이번 시즌 남자부를 최하위로 마친 KB손해보험도 스페인 대표팀을 이끌던 미겔 리베라 감독을 선임해 다음 시즌 외국인 감독의 수는 오히려 늘었다. 이들 외에도 감독 교체를 고민하는 V리그 다른 팀도 국내 감독과 함께 외국인 감독 선임을 저울질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푸에르토리코 출신 페르난도 모랄레스 여자 배구대표팀 감독. 국제배구연맹 제공
푸에르토리코 출신 페르난도 모랄레스 여자 배구대표팀 감독. 국제배구연맹 제공


배구계에 따르면 대표팀은 물론, V리그의 외국인 지도자 선임은 가능성이 높은 시나리오였다. 국내 지도자 가운데 이들이 제시한 청사진을 넘어설 만한 이들이 없었다는 후문이다. 특히 최근 한국으로 오는 외국인 지도자는 전력분석 등 특징적인 장점을 앞세워 국내 지도자와 두드러진 전문성을 자랑한다. 정신력, 애국심 등에 호소했던 국내 지도자의 입지가 줄어드는 것은 충분히 예상됐던 결과라는 자조 섞인 한탄이 나오는 것은 당연하다.

V리그는 남자부만 봐도 외국인 감독이 지도하는 대한항공이 최초의 4연속 통합우승을 노리는 데다 선수단 개편과 부진 탈출의 두 마리 토끼를 잡겠다는 OK금융그룹, 현대캐피탈, KB손해보험이 모두 외국인 지도자를 선임한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여자부 역시 흥국생명이 유럽 무대에서 잔뼈가 굵은 이탈리아 국적의 마르첼로 아본단자 감독을 선임하며 최근 2시즌 연속 봄 배구 진출에 성공한 것도 다른 팀에게 외국인 감독 선임을 고민하도록 하는 배경이 됐다.

국내 지도자가 V리그에서 선보였던 천편일률적인 배구에서 벗어나 외국인 감독이 부임하며 다양한 배구가 펼쳐지는 것도 배구팬의 관심이 늘어나는 이유라는 분석도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남자부 OK금융그룹의 오기노 마사지 감독이다. OK금융그룹은 일본 출신 오기노 감독이 부임한 뒤 철저하게 범실을 줄이는 배구를 통해 3시즌 만에 봄 배구 무대를 밟았다.

프랑스 출신의 필리프 블랑 현대캐피탈 신임 감독. 현대캐피탈 스카이워커스 제공
프랑스 출신의 필리프 블랑 현대캐피탈 신임 감독. 현대캐피탈 스카이워커스 제공


다만 실패 사례도 분명하다. 북미 지역에서 성공적인 경력을 자랑했던 트린지 감독은 국내 배구 환경 파악 부족으로 1시즌도 채우지 못하고 조기 경질되는 실패를 맛봤다. 전력 분석가 출신의 세자르 에르난데스 전 여자대표팀 감독도 수석코치를 거쳐 감독직까지 수행했지만 부진한 성적에 그친 채 쫓기듯 한국을 떠나야 했다. 한 배구계 관계자는 "외국인 감독이 무조건 성공한다는 보장은 없다. 하지만 익숙함에 젖어있는 국내 지도자와 비교하면 현재로썬 장점이 더 많은 것이 사실"이라고 꼬집었다.

오해원 기자
오해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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