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 = 변영근 작가
일러스트 = 변영근 작가


■ (6) 백가흠
다문화가족 - 빈의 두 번째 설날


발목 높이까지 소복소복 쌓이는 눈을 보고 있자니 쩐호우빈은 가족들이 생각났다.

“빈아, 눈 처음 봐? 뭘 그렇게 넋 놓고 보냐.”

이 씨가 빈의 등 뒤로 슬쩍 다가와 말했다. 빈은 한국어가 서툴렀고 이 씨가 하는 말을 전부 알아듣지 못했다. 빈이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아, 눈 처음 볼 수도 있겠구나. 그나저나 좀 쉬자.”

이 씨가 손짓으로 커피 마시는 시늉을 했다.

“내일부터 설 연휴인데 뭐 하며 지낼 거야? 공장도 문 닫는데.”

“우리도 친구들이랑 명절 보낼 거예요.”

어느새 다가온 응우옌반민이 빈 대신 대답했다. 빈은 민의 소개로 5개월 전부터 이불공장에서 일하고 있었다. 폭력과 착취를 견디지 못하고 농장을 이탈해 갈 곳 없고, 막막하기만 했던 그에게 일할 수 있는 이곳은 삶의 희망이었다. 불법체류 중인 빈에게 선뜻 일자리를 주는 곳도 드물었거니와 그의 처지가 볼모가 되어 더 큰 어려움에 처할 수도 있었는데, 그에겐 다행이었다.

“이따가 퇴근할 때 주려고 한 건데, 이거 받아.”

이 씨가 빈과 민에게 봉투를 내밀었다.

“명절에 맛있는 거 사 먹어.”

이 씨가 세배하는 시늉을 해 보였다. 민이 땅바닥에 세배하려고 하자 이 씨가 만류했다.

“아니, 지금 세배하라는 게 아녀. 그렇다는 거지.”

민은 이 씨가 하는 말을 빈에게 통역했다.

“우리도 설에 빨간 봉투에 세뱃돈 주는 풍습이 있어요. 아저씨가 이럴 줄 알고 저도 준비했어요.”

민이 준비한 빨간 봉투를 이 씨에게 내밀었다.

“됐어, 너네는 돈 없으니까 됐어. 받은 걸로 해. 고마워, 민아, 빈아.”

민이 활짝 웃으며 세배하는 시늉을 했다. 빈은 감동해서 눈물이 맺혔다. 속으로 한국에 원망스러웠던 마음이 컸던 빈은 괜스레 이 씨에게 미안한 마음마저 들었다.



“오토바이 빌려달라며, 빈 하고 어디 다녀오려고?”

“설에 몇몇이 모이기로 했어요.”

“조심해서 타야 해. 길 미끄러우니까.”

“우리 모터바이크 잘 타요. 한국 사람보다 잘 타요. 걱정하지 마세요, 아저씨.”

민이 유창하게 한국어로 말했다.

“빈아, 너 내 전화번호 알지? 무슨 일 생기면 전화해.”

이 씨가 귀에 대고 전화 받는 시늉을 하자 빈이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빈은 작년 설에 비닐하우스 숙소에서 쉬지도 못하고 일만 했지만, 올해는 모든 게 달라졌다.

재작년 가을, 계절 이주노동자로 한국에 온 빈은 이렇게 오랫동안 한국에 머무르게 될지 몰랐다. 그는 남쪽의 한 깻잎 농장에서 하루에 만 장이 넘는 깻잎을 땄다. 뒤에는 하루 수천 포기의 배추를 땄고, 나중에는 비닐하우스에서 생강과 당근을 캤다. 그렇게 두 계절이 금방 지나갔다.

설날 아침, 봄처럼 날씨가 좋았다. 빈과 민은 이 씨가 빌려준 오토바이를 타고 한 시간 거리 떨어진 곳으로 설을 맞으러 갔다. 둘은 바람을 맞으며 신나게 달렸다. 한국에서 겪은 시름이 차가운 바람에 실려 뒤로 밀려났다.

빈의 고향은 베트남 다낭 꽝남성 푸봉 마을로 아름다운 안방 해변에서 내륙으로 30㎞ 정도 떨어진 곳이다. 그의 고향은 베트남 전쟁 때 한국군이 주둔했던 곳으로 민간인 피해가 컸던 곳이다. 그의 가족은 대대로 푸봉 마을에서 농사를 지으며 살아왔다. 치열했고 비참했던 전쟁 중에도 그의 가족들은 마을을 떠나지 않았다.

베트남에도 많은 변화가 생겼다. 전쟁만큼 가난이 더 고통스러운 시대가 되었다. 가족 중에 돈을 벌기 위해 타지로 나간 사람은 빈이 유일했다. 많은 식구가 살기 위해서 빈의 가족도 변화가 필요했다. 이미 많이 늦어졌으나, 어떻게든 방법을 찾아야만 했고 빈은 그 시작이었다.

가족의 기대를 안고 한국에 온 그는 고향으로 돌아갈 수가 없었다. 5개월 단기 비자로 한국에 들어와 3개월 연장 뒤 비자가 만료된 지도 반년이나 지났다. 한국에 계절노동자로 오는 데 알선비로 송출업체에 800만 원을 지불했다. 한 달에 200만1000원을 받기로 했으나 비닐하우스 숙소비, 식비, 사업장이탈보증금을 제하고 한 달에 90여만 원을 받았다. 여권은 입국할 때 송출업체에 뺏겼고 베트남으로 돌아갈 날이 가까워졌다. 빈이 8개월 동안 벌어들인 돈은 한국에 오기 위해 들인 비용에도 미치지 못했다. 그가 사업장을 이탈해서 불법체류자가 될 수밖에 없는 이유였다. 다행히 좋은 사람들의 도움으로 그나마 허비한 시간을 만회할 기회가 생겼다. 하지만 계절노동자에 대한 폭력과 착취가 문제 되자 정부는 오히려 비자 단속을 강화했고, 이후 계절노동자들의 마음 졸이는 불안한 날들이 계속되었다.



설날, 처지가 비슷한 베트남 이주노동자들이 명절을 보내기 위해 한 프레스 공장에 모였다. 찹쌀에 고기를 넣고 찐 반쯩, 각종 말린 과일과 고기여주국 등을 상에 올리고 먼 이국에서 차례를 지냈다. 음식을 나누어 먹고, 필요한 정보를 교환하고 고향으로 전화해서 친척들과 인사를 나누며 하루를 보냈다. 빈도 오랜만에 가족들과 길게 통화했다.

“곧 돌아갈 수 있을 거예요. 처음에는 힘들었지만, 지금은 좋은 사람들을 만나서 잘 지내고 있어요.”

빈이 애써 울음을 참으며 아버지에게 말했다. 민이 빈의 어깨를 토닥이며 위로했다. 빈은 울음이 터질까봐 서둘러 전화를 끊었다. 모처럼 의미 있고 즐거운 휴일을 보냈다.

“혼자 갈 수 있겠어? 돌아가는 길 기억해?”

민이 근심 어린 눈으로 바라보며 빈에게 말했다.

“걱정하지 마. 큰길 따라 서쪽으로 가다 보면 우리 공장 나오잖아.”

모처럼 따뜻하고 화려했던 해가 서쪽으로 허물어지고 있었다. 민은 다른 모임에 갔고 빈 혼자 이불공장으로 향하기 위해 길을 나섰다. 빈은 오토바이를 몰며 해가 지는 쪽을 바라보았다. 노을 물드는 쪽을 계속 따라가다 보면 일하는 이불공장에 이르고, 더 가면 고향의 아름다운 안방 해변이 나올 테고, 꽝남성 푸봉 마을에도 가 닿을 거로 생각하니 괜스레 눈물이 났다.

공장에 거의 도착할 무렵 사위는 어둑해졌다. 빈은 천천히 오토바이를 몰았다. 공단에 들어서자, 인적이 거의 없고 지나다니는 차도 드물었다. 빈은 기억을 더듬으며 조심스럽게 오토바이를 몰았다.

마지막 사거리 신호에 잠시 멈추어 섰을 때였다. 갑자기 누군가 빈을 억지로 오토바이에서 끌어내렸다. 그러곤 무차별적인 폭행이 시작되었다. 뭔가를 판단할 새도,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생각할 틈도 없었다. 십여 명의 십 대 남자애들이 빈을 에워싸고 때렸다. 빈이 겨우 정신을 차린 것은 그들이 넘어진 오토바이를 일으켜 세우려는 것을 본 뒤였다. 그는 발악하며 오토바이를 껴안았다. 남자애들의 발길질이 멈추지 않았다. 빈은 그들의 폭력을 견디며 악착같이 오토바이를 지켰다. 남자애들도 포기하지 않고 무자비한 폭행이 이어졌다. 남자애들의 폭행은 경찰이 출동하고 난 뒤에야 겨우 멈췄다.

빈은 앞을 볼 수 없을 정도로 눈이 부었고 머리에서는 피가 흘러내렸다. 갈비뼈가 부러졌는지 엄청난 통증이 일었다.

“저희도 맞았어요. 지나가는데 우리한테 시비 걸었다고요.”

남자애들은 경찰서에서도 소란을 멈추지 않았다. 빈은 남자애들이 하는 말을 전부 알아들을 수 없었다.

“너희들은 가만히 있어. 베트남? 필리핀? 어디 사람이에요? 내 말 알아들어요?”

빈은 경찰에게 애써 웃음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빈은 경찰이 하는 말을 다 알아듣지 못했다. 빈은 경찰에게 이 씨의 전화번호를 적어주었다. 그러곤 정신을 잃었다.

어디선가 자기를 부르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잠든 것이 아니었는데, 꼭 꿈을 꾼 것 같았다. 따뜻하고 햇빛 좋은 해변에서 평온한 시간을 보내는 꿈을 꾼 것만 같았다.

“빈아, 정신 들어?”

정신을 차려 보니 빈은 유치장 안에 있었고, 이 씨가 밖에서 그를 부르고 있었다. 빈은 무거운 몸을 일으켰다. 겨우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 씨를 보자 눈물이 나기 시작했다.

“빈아, 너 비자 등록이 안 되어 있어서 구금됐단다. 강제 추방될 수도 있다는데 큰일이네, 정말. 연휴 끝나면 내가 방법 찾아볼 테니까. 조금만 참아.”

빈이 울면서 억지로 웃었다. 고개를 끄덕였다. 빈은 이 씨가 하는 말을 모두 알아들을 수 없었다.

“사람을 그냥 때렸다는 게 말이 돼? 때린 놈들은 풀어주고 맞은 사람을 가두는 게 말이 되냐고. 무슨 이런 법이 있어.”

이 씨는 경찰에게 고래고래 고함을 질렀다. 빈은 자신의 처지보다 이 씨의 오토바이가 부서지지 않았는지 더 걱정이 앞섰다. 쩐호우빈의 한국에서의 두 번째 설이 그렇게 지나가고 있었다.



“이주노동자 인권 사회수준 못미치는 슬픈 현실”

■ 작가의 말

“아직도 이주노동자, 다문화가족에 대한 인식과 제도는 사회·정치적 수준에 한참 못 미치는 게 슬픈 현실입니다.” 백가흠 작가의 ‘빈의 두 번째 설날’은 베트남 출신 이주노동자 ‘쩐호우빈’의 슬픈 명절을 그린다. 백 작가는 오랫동안 여러 단편을 통해 이주노동자에 대한 부조리를 다뤄왔다.

빈은 한국에서의 첫 설날에 추운 비닐하우스 숙소에서 지내며 쉬지 못하고 일만 했다. ‘착한 사장님’을 만나 보내는 두 번째 설은 명절 보너스, 고향 친구들로 따뜻하게 보낼 듯하지만 철창 신세를 지고 만다. 심지어 한국에서 추방될 위기에 몰리며 문제는 개인의 ‘선의’나 ‘악의’에 있지 않음이 드러난다. 백 작가는 “어느 사회에나 악의를 가지고 타인의 권리와 노동을 착취함으로써 이익을 취하는 사람들이 있다”며 “분명히 대다수의 사회 구성원은 이런 불공정한 사회를 원하지 않는다”고 힘주어 말했다. “우리의 관심과 인식의 변화는 우리 주변의 수많은 ‘빈’들이 특별하지 않은, 평범한 세 번째 설날을 보낼 수 있도록 만들 거예요. 그런 소설의 뒷부분을 독자들께서 채워주셨으면 좋겠어요.”

■ 백 작가는

1974년생. 2001년 등단 후 ‘마담뺑덕’ ‘나프탈렌’ 등을 썼다. 소설집 ‘사십사’ 등이 있다. 계명대 문예창작학과 교수.

장상민 기자 joseph0321@munhwa.com
장상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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