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31년 추모사업 김병호 천상병시인기념사업회 부이사장
“연극하며 생전 일면식 없어
부고본 뒤 무욕의 삶에 감동
매년 예술제 진행하며 기려
선한 영향력 멀리 퍼졌으면”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 가서 아름다웠다고 말하리라…….’한국 문학사를 빛낸 천상병 시인의 대표작 ‘귀천(歸天)’의 마지막 구절이다. 1993년에 63세로 세상을 떠난 천 시인의 부고 기사에서 이 시를 처음 접한 후 그를 추모하고 알리는 일을 30년 넘게 이어온 사람이 있다. 김병호(59) 천상병시인기념사업회 부이사장. 그는 천 시인의 가족도 문인도 아닌 연극인으로, 시인 생전 일면식도 없었다.
“윤동주 시인의 서시나 외울 정도로 시에는 문외한이었어요. 귀천을 읽었을 때 얼마나 유복하게 살았기에 생을 소풍이라 표현했나 궁금했지요. 그래서 알아보니 그게 아니었어요. 그 길로 빈소를 찾아 부인 목순옥 여사를 만나 선생님의 삶을 연극으로 만들어 보다 많은 이들에게 알리고 싶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천상병은 마산 중학 5학년 때인 1949년 시 ‘강물’이 당시 담임 교사였던 김춘수 시인의 주선으로 청마 유치환의 추천을 받아 ‘문예’지에 게재돼 등단했다. 서울대 상대에 입학했으나 중퇴를 했고, 1967년 ‘동백림 사건’에 연루됐다. 모진 고문을 당하고 6개월간 옥고를 치른 그는 후유증으로 평생 고통받았다. 1972년 천상병은 자신을 간병해 주던 친구 여동생인 목순옥과 결혼했다.

“선생님은 끔찍한 전기고문으로 자식도 가질 수 없는 몸이 됐습니다. 억울할 법도 한데 원망하거나 어떤 보상도 바라지 않으셨어요.” 지독한 가난 속에서도 천상병은 하루 치 막걸리와 담배 한 갑만 살 수 있으면 행복하다고 했다. 끼니를 대신한 막걸리 한 되 값 좀 달라고 주변에 손을 벌리면서도 그 이상은 쥐여줘도 한사코 거절하는 무욕의 삶을 살았다. “그분이 지녔던 순수함과 삶에 대한 긍정적이고 따뜻한 시선은 지금 이 시대에 더 소중한 가치가 된다고 생각합니다.”
천 시인 1주기에 ‘귀천-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연극을 무대에 올린 그는 부인 목 여사와 기념사업회 일을 해나가기 시작했다. 5주기 때 ‘천상병 시 문학상’을 제정해 매년 시상해오고 있다. 10주기 때인 2003년부터는 의정부에서 ‘천상병 예술제’를 매년 열었다. “의정부시와 노원구는 선생님이 생전에 사셨던 인연으로 도움을 많이 주셨어요. 2020년 이후 코로나 때문에 중단된 상태이나 천상병 예술제를 의정부시 지원으로 열 수 있었습니다. 노원구에는 천상병 공원이 조성돼 있지요. 목 여사께서 2010년 돌아가실 때까지 문학관 건립을 꾸준히 요청하셨는데 아직도 이뤄지지 않아 안타까운 마음입니다.”
그는 목 여사가 사업회 이사장일 때 사무국장으로 일했다. 목 여사 타계 후에도 이사장은 다른 분이 맡는 게 좋겠다고 생각해 부이사장으로서 모든 사업을 총괄한다. 그의 본업은 1992년 창단한 극단 ‘즐거운사람들’ 단장 겸 예술 감독이다. “선생님을 만나지 않았다면, 제가 좋아서 시작한 연극이지만 물질적인 것에 매몰돼 살면서 행복하다고 느끼지 못했을 겁니다. 선생님 영향으로 삶에 대한 태도가 바뀌었지요. 행복한 마음으로 연극도 기념사업회 일도 계속해 나갈 것입니다.”
다음 달 28일이면 천상병 시인 31주기다. “올해부터 기념사업회는 최명란 시인을 비롯한 천상병 시 문학상 역대 수상자들도 뜻을 같이해 천 시인의 정신을 이어나가고 사회에 선한 영향을 미치는 단체로 거듭날 계획입니다. 선생님의 삶과 그 정신에 감동받고 동의하는 사람들이 많아진다면 좀 더 밝고 좋은 세상이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김지은 기자 kimjieun@munhwa.com
주요뉴스
이슈NOW
기사 추천
- 추천해요 0
- 좋아요 0
- 감동이에요 0
- 화나요 0
- 슬퍼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