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이현우의 Deep Read - 시스템 공천의 허실
공천, 객관적기준·투명성·공정성 등으로 평가… 국민의힘·민주당 모두 다양성 확보 실패
李, 시스템 밖에서 공천 기준·잣대 자의적으로 바꿔… ‘친명횡재·비명횡사’ 로 권력 독점

◇시스템 공천
2000년 이후 시스템 공천이란 개념이 등장하고 공직선거법에도 당내 경선에 관한 세부적 조항이 추가됐다. 이번 총선을 앞두고 더불어민주당과 집권 국민의힘도 시스템 공천을 내세웠다. 시스템 공천이란 공천 신청에서부터 후보자 결정까지의 과정과 관련한 표준화한 절차를 마련한 공천이라는 뜻이다.
시스템 공천이 제대로 운용됐는지는 공천 결과가 보스-계파 정치에 휘둘렸는지 여부를 통해 알 수 있다. 정당의 권력자나 특정 지배세력의 입김 때문에 공천의 기준과 잣대가 바뀌거나 자의적으로 해석되면 시스템 공천이라 할 수 없다. 시스템 공천이 제대로 이행됐는지를 평가하려면 객관적 평가 기준 유무, 절차적 투명성, 평가의 공정성, 그리고 결과로서의 다양성을 봐야 한다.
최악으로 평가받았던 21대 국회를 타산지석 삼아 거대 양당이 공천 혁신을 내세웠지만, 그 결과는 그렇지 못했다. 특히 민주당이 더 심각하다. 연령별로 20∼30대 유권자가 전체의 31%가 넘었지만, 양당의 청년 후보 비율은 4%에 미치지 못한다. 그나마도 험지에 배치한 경우가 절반이 넘는다. 반면에 양당에서 3선 이상 다선 의원이 우세지역에 공천된 비율이 훨씬 높다.
여성 대표성에서도 이전의 과소대표 상황이 전혀 개선되지 않았다. 양당 모두 당헌에 여성 30% 이상 공천을 의무화했지만, 여야 공히 지역구 여성 후보 비율이 그 절반에도 미치지 못한다. 결과적으로 청년·여성·신인이 공천을 통과한 수도 적을 뿐 아니라, 험지에 배치된 경우가 많아 총선 결과로 보면 소수자 대표성은 더 낮아질 것으로 점쳐진다. 양당 지도부가 애초부터 유권자 대표성을 향상하려는 의지가 없었던 것 아니냐는 의구심이 제기되는 이유다.

◇국민의힘 평가
국민의힘의 공천 결과는 한마디로 현역 불패로 요약된다. 공천관리위원회는 당초 현역 및 중진 대폭 물갈이와 세대교체를 목표로 내세웠다. 동일 지역 3선 이상 의원에게 15% 감점, 현역 평가 하위 10% 컷오프, 그리고 하위 10∼30%에 해당하는 의원에게 감점을 적용하는 원칙을 정했다. 아울러 34세 이하 청년 후보에게는 최대 20%의 득표율 가산 혜택이 주어졌다.
그러나 현역 물갈이는 35%로 21대 총선의 44.6%보다 낮다. 3선 이상의 의원들은 ‘지역구 재배치’라는 출구를 통해 페널티를 피해갈 수 있도록 조치했다. 세대교체 의지가 강했더라면 인재영입을 통해 청년 후보들을 충원하고 단수 공천하는 방식을 택하는 것이 확실했겠으나, 지난 총선 대패로 인한 지역구 의원의 절대적 부족이라는 현실이 덜미를 잡았다.
다선의 현역 의원에 대해 지역구 재배치 전략을 구사한 결과, 8명의 현역 의원이 지역구를 바꿔 모두 단수 공천을 받았다. 공천을 통해 정당개혁을 이루기보다 선거 승리라는 현실적 목표에 치중한 결과, 과거 공천보다 질적으로 개선된 부분을 찾아보기 어려웠다.
윤석열 대통령과 가까운 친윤 인사들 즉 용산 대통령실이나 검찰 출신 사람들의 공천과 관련, 결과적으로 절대적으로 많은 친윤 공천 사례는 발견되지 않았다. 하지만 친윤 후보가 당선 가능성이 높은 선거구에 공천된 사례는 비교적 많이 발견됐다.
또 이번 지역구 공천 과정에서 다선 교체라는 목표를 달성할 수 있는 수준에는 이르지 못했다. 투명성은 비교적 유지됐지만 친윤에 대한 배려가 상당했다는 점에서 공정성은 높게 평가받지 못할 것으로 보인다. 대통령의 지지세력이 강화됐고 여성·청년 비중이 지난 총선 때보다 낮아졌다는 측면에서 다양성 역시 평가되기 힘들다.
◇민주당 평가
‘친명횡재-비명횡사’ 유행어를 낳은 민주당 내 공천 갈등은 유례가 없는 수준이었다.
현직 물갈이는 167명 중 71명으로 42%가 넘어, 교체율만 놓고 보면 국민의힘보다 우세하다. 수도권 103곳 중 33곳의 현역이 교체돼 물갈이는 32%에 머물렀다. 하지만 교체된 전체 현역 71명 중 21명이 초선이어서, 다선 의원의 기득권 포기와는 거리가 있다는 점에서 이를 공천 혁신이라 부르기는 어렵다.
이재명 대표는 이번 공천 결과를 두고 시스템 공천에 의한 혁명이라 주장하지만 수긍하기 어렵다. 공천 이전에 다수 반명 의원들이 탈당했고, 남아 있던 비명은 친명·찐명과의 경선에서 대부분 패했다. 비명 의원들은 현역 평가에서 대거 하위 10∼20% 안에 들어 결국 경선에서 탈락했다.
현역 의원 평가점수 1000점 중에 의정·기여·공약 이행 등을 포함한 정성평가 점수가 220점이나 됐는데, 여기서 비명 의원들이 집단 차별을 받은 것으로 의심돼 결과적으로 공정성이 신뢰받지 못하고 있다. 하위권에 속했던 비명 의원들이 평가 근거나 점수를 확인할 수 없었다는 점에서 투명성 역시 담보되지 않았고, 그 결과는 공정성 침해로 나타났다. 이는 곧 친명 일색 후보군을 만들어냈다는 점에서 다양성을 훼손했다는 비판을 불렀다. 결과적으로 민주당은 공천의 명확성·투명성이 사라졌고, 공정성과 다양성을 확인하기 힘들어졌다는 평가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민주당식 시스템 공천의 가장 큰 문제점은 이재명 대표가 시스템 밖에 존재한다는 점이다. 이 대표가 선호하는 사람들이 경선에서 이길 수 있는 환경과 여건을 만들어놓고 이를 시스템 공천이라고 주장함으로써, 공천은 특정인의 당 장악을 위한 수단으로 전락했다.
◇총평과 제안
유럽 선진국은 정당 지도부가 하향식(전략) 공천을 전문가·여성·청년 등을 충원하는 통로로 활용하지만, 한국은 권력자에게 충성하는 인물을 충원하는 수단으로 이용하고 있다.
역사적으로 한국의 총선은 인물투표보다는 정당투표가 훨씬 강하다. 양당 지도부는 유권자들의 거센 불만에도 불구하고 선택할 대안이 없다는 점을 이용해 새로운 인물 대신 충성할 인물 충원에 적극적이다. 제3당의 위협을 느끼지 않는 거대 양당은 공천을 내부 반대 세력을 제거하고 계파 보스나 권력자의 힘을 공고히 하는 기회로 삼는다.
서강대 정외과 교수, 전 한국선거학회 회장
■ 용어 설명
‘공직선거법’은 2005년 8월, 57조 2에서 8까지 당내 경선에 관한 세부적 조항을 추가함. 상향식 경선이 확대되면서 공식적 규정으로 이를 뒷받침하게 된 것으로, 시스템 공천의 토대로 해석됨.
‘시스템 공천’은 공직 후보 선출과 관련한 표준화한 절차가 마련된 공천. 객관적 기준·투명한 절차·공정한 평가 시스템·다양성의 확보 등 요소들이 잘 구현되면 성공적인 시스템 공천으로 평가.
■ 세줄 요약
시스템 공천 : 공천의 성공 여부는 보스-계파 정치에 휘둘렸는지에 따라 갈림. 권력자의 자의적 판단에 따라 공천 기준과 잣대가 바뀌면 시스템 공천이라 할 수 없어. 객관적 기준·투명성·공정성·다양성이 중요.
국민의힘 평가 : 한마디로 현역 불패로 요약됨. 투명성은 비교적 유지됐지만 친윤에 대한 배려가 상당했다는 점에서 공정성은 높은 점수 받을 수 없어. 여성·청년 비중 등으로 볼 때에도 다양성 역시 평가되기 힘들어.
민주당 평가 : ‘친명횡재-비명횡사’의 민주당 공천 갈등은 유례가 없는 수준. 투명성·공정성·다양성 모두 수준 이하의 점수. 이재명 대표가 시스템을 당 장악의 도구로 활용한다는 점에서 혁신공천과 거리 먼 사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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