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10년 ‘천안함 피격사건’으로 전사한 고 박정훈(가운데) 병장이 2009년 휴가를 나와 부산에서 아버지 박대석(오른쪽)·동생 박동주 씨와 함께 찍은 사진. 박대석 씨 제공
지난 2010년 ‘천안함 피격사건’으로 전사한 고 박정훈(가운데) 병장이 2009년 휴가를 나와 부산에서 아버지 박대석(오른쪽)·동생 박동주 씨와 함께 찍은 사진. 박대석 씨 제공


■ ‘천안함 피격’ 14주기

故박정훈 병장 아버지 박대석씨
“나도 해군 출신이라 입대 권해
국민들, 음모론 대신 진실 믿고
용사들 기억하고 애도해 주길”


“벚꽃 피는 3월은 새로운 시작을 뜻하잖아요. 우리한테는 아니에요. 항상 이맘때쯤 되면 마음이 시리고 아픕니다.”

박대석(65) 씨는 매년 3월이 되면 2010년 봄으로 돌아간다. 새싹이 돋고 생명이 꽃 피는 계절, 박 씨는 누구보다 아끼던 장남 정훈(당시 22세·병장) 씨를 천안함 피격 사건으로 잃었다.

14년이라는 긴 세월이 흘렀지만 박 씨의 마음 한편에는 언제나 아들이 살아 있다. 박 씨는 정훈 씨를 어린 나이에도 아버지를 대신해 가장 역할을 하던 든든한 아들이었다고 회상했다. 박 씨는 “인쇄소 일이 바빠 오전부터 밤늦게까지 집에 들어오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며 “그때마다 정훈이는 아내를 도와 집안일을 하고 동생을 챙기며 내 몫을 대신했다”고 회상했다. 박 씨는 “해군 입대 후 정훈이가 휴가를 나왔을 때 부산에 들러 할머니를 뵙고 같이 해운대 바다를 봤던 기억이 난다”며 함께 찍은 사진을 보여줬다. 사진 속 정훈 씨는 해군 제복을 입고 동생의 어깨에 손을 올린 채 늠름한 모습으로 서 있다.

정훈 씨뿐만 아니라 박 씨의 집안에는 크고 작은 전쟁의 상처가 있다. 박 씨의 작은아버지는 6·25전쟁에 참전해 스무 살의 나이로 전사해 대전현충원에 안장돼 있고, 아버지는 전쟁으로 두 귀의 청력을 완전히 상실하고 평생을 살아야 했다. 박 씨는 “나라에 대한 애국심이 집안에 있었고 아들도 그 부분에 영향을 많이 받았던 것 같다”고 말했다. 중기계를 다루고 싶다는 꿈을 가지고 산업자동화과를 졸업한 후 해군으로 입대한 정훈 씨. 그런 정훈 씨에게 해군을 추천한 것도 바로 아버지 박 씨였다. 본인의 해군 생활을 돌이켜 볼 때 아들이 해군에 가면 꿈과 관련된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아버지는 자신의 추천이 두고두고 미안하다.

박 씨 가족은 여전히 정훈 씨를 그리워하며 최대한 자주 아들을 보러 가기 위해 노력한다. 박 씨는 “특히 이맘때쯤 현충원에 가면 추모객들이 위로와 격려를 보내줘 힘이 나기도 한다”고 전했다.

박 씨는 3년 전 서울 을지로에서 40년 넘게 해온 인쇄소를 그만두고 지금은 아내와 함께 세탁소를 운영하고 있다. 사건 당시 열여섯 살이었던 정훈 씨의 남동생은 어느덧 서른 살이 되어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흐르는 세월에 박 씨는 천안함 피격 사태와 용사들이 잊히는 것이 걱정된다고 했다. 아들의 명예를 지키기 위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진실’과 ‘기억’이라고 박 씨는 말한다. 박 씨는 “사람들 사이에서 천안함에 대한 기억이 점점 흐려지고 있고, 또 여전히 천안함에 대한 음모론이 떠돌기도 한다”며 “국민께서 국가와 합동수사본부에서 발표한 것만이 천안함 피격 사건의 진실이라는 걸 꼭 믿어주시고 계속해서 우리 아들을 비롯한 천안함 용사를 기억해주고 애도해 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조율 기자 joyul@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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