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명의 대통령(노무현·이명박·박근혜·문재인) 밑에서 공직생활을 했던 옛 고위 경제 관료는, 얼마 전 기자와 만나 각 대통령에 대한 소회를 이렇게 말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소통에 매우 뛰어난 능력을 보였다고 평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아예 만나주지도 않았고, 문재인 전 대통령은 만나서 얘기는 들어주는데 변하는 게 없었다고 한다. 그러면서 업무 수행 능력 면에서는 이명박 전 대통령이 가장 뛰어났다고 했다. 청계천 사업이나 버스 전용차로제 등 당시에는 비판을 받았던 정책들의 현재 상황을 보면, 그럴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아마도 ‘프레임(frame) 정치’의 폐해를 경험한 대표적인 지도자 중 한 명이 이명박 전 대통령이 아닐까 싶다. 이 전 대통령은 ‘광우병’ ‘민영화’ 등의 프레임에 갇혀 집권 초부터 국정 운영에 애를 먹었다. 정치권과 시민단체들의 끝없는 공격을 받았는데, 10여 년이 지난 지금에서 생각해 보면 얼마나 허망한 선전·선동의 정치 구호였는지 알 수 있다.
조지 레이코프 미국 캘리포니아대 교수는 ‘프레임 이론’을 통해 전략적인 틀(frame)을 제시해 대중의 ‘사고의 틀’을 먼저 규정하는 쪽이 승리하며, 이를 반박하면 오히려 프레임을 강화해 주는 딜레마에 빠지게 된다고 했다. 선전·선동이 수반되는 정치의 세계에서 프레임 이론은 상대를 제압하는 수단이다.
그러나 경제 영역은 다르다. 경제 영역에서의 프레임 전략은 포퓰리즘과 왜곡된 정책을 낳는다. 치열한 글로벌 경쟁시대에서 경제 정책의 실패는 곧 퇴보를 의미한다. 한때 세계 5위의 경제 대국이었던 아르헨티나의 몰락은 이를 잘 증명해 준다.
정부가 올해 가장 역점을 두고 진행하고 있는 경제 정책이 ‘반도체 지원 사업’과 ‘기업 밸류업 지원 사업’이다. 국제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필요한 정책이라는 데 토를 달 사람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두 정책 모두 지원 방안이 명확하지 않다는 이유에서 비판을 받고 있다. 지원은 해주겠다고 하는데, 뭘 지원해 준다는 것인지 명확하지가 않다. 한 경제 관료는 “프레임이 참 무섭다”고 말했다. 상속세 개정 논란이 대표적이다. 많은 기업이 기업 밸류업 지원책으로 상속세 제도 완화를 요구한다. 시대에 맞지 않는 상속세로 가업 승계가 어렵다는 얘기다. 경영권이 불투명한 기업의 주가가 힘을 받을 리 없다. 그럼에도 정부는 명확한 답을 주지 못하고 있다. ‘부자 감세’ ‘대기업 세습’이라는 정치권의 프레임 공격 때문이다. 정치권에서 제기되는 이 프레임이 맞다면 중소기업들의 단체인 중소기업중앙회 등이 왜 상속세 감면 혜택을 확대해 달라고 요구하는지 모를 일이다. 반도체 보조금 지원 방안 역시 ‘대기업 퍼주기’라는 프레임에 발목 잡혀 있다.
미국이 세계적 기업인 인텔에 85억 달러(약 11조4000억 원) 규모의 반도체 보조금을 제공하기로 했지만, 이 때문에 시위가 벌어졌다거나 백악관과 야당이 멱살잡이했다는 얘기를 들어보지 못했다. 정부가 삼성전자에 보조금 지원을 한다고 하면 아마 십중팔구 용산과 삼성전자 본사 앞은 정치인·시민단체들의 시위로 몸살을 앓을 것이다. 세계 10위권 경제 대국답지 않은 수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