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은 국가 운영을 위한 조세를 돈이 아닌 곡물로 거뒀다. 그래서 소나 사람의 지게, 작은 배로 세곡을 운반해 바닷가나 강가의 큰 창고인 조창(漕倉)에 모아놓았다가 조운선(漕運船)이란 큰 배로 한꺼번에 서울로 나르는 조운제도를 운영했다. 충주, 음성 등 충청도 내륙 14개 고을의 세곡은 충주시 중앙탑면의 창동리, 즉 창골에 있는 조창인 덕흥창과 경원창에 모았다가 조운선에 실어 서울로 옮겼다. 그러다 1465년(세조 11) 1월에 조창을 더 하류 지역인 중앙탑면의 가흥리로 옮겨 조운제도가 폐지되는 조선 말까지 운영했다. 이때 조창을 옮기게 된 이유는 창골과 가흥 사이의 막흐르기여울에서 조운선 사고가 일어났기 때문이라고 전해온다.
여울은 물이 급하고 빠르게 흐르는 강의 경사진 구간을 가리킨다. 깊지 않아서 울퉁불퉁한 하천 바닥과 부딪히는 거친 물살의 소리가 우렁차며, 곳곳에 암초가 있는 경우도 많다. 강을 따라 내려가는 배들에 가장 위험한 곳이 바로 여울이다. 남한강에는 수많은 여울이 있었는데, 그중에서 손꼽히게 거칠고 험한 여울 중의 하나가 막흐르기여울이었다. 직접 가서 보면 진짜 거칠고 급하게 막 흐르는 물살을 실감할 수 있다. 곳곳에 하얀 너럭바위 암초가 있다. 원래 우리 땅 이름 대부분은 고상하지 않다. 민초들의 삶을 그들의 눈을 통해 원초적으로 담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특이한 것 같지만, 별로 특이할 것 없는 자연스러운 땅 이름이 막흐르기여울이다. 여울 남쪽의 마을 이름도 막흐르기이고, 지금 그곳의 버스정류장을 찾아가면 ‘막흐르기’라는 이름을 선명하게 볼 수 있다.
막흐르기여울을 한자의 비슷한 소리 莫喜樂(막희락)과 灘(여울 탄)의 뜻을 빌려 莫喜樂灘이라고 썼다. 한자를 해석하여 ‘너무 좋아하지 말고 조심하라’는 의미로 여울 이름을 지었다고 보는 시각이 있다. 하지만 이는 잘못이다. 주민들이 막흐르기여울로 부르던 것을 그런 의미의 한자로 표기한 것일 뿐이다.
국립중앙도서관 학예연구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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