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철환의 음악동네 - 성시경 ‘그 자리에 그 시간에’

사람들은 앞다퉈 꽃놀이 행렬에 끼는데 여태껏 꽃들끼리 서로 다투며 사람을 불러 모은다는 얘긴 못 들었다. 꽃들은 흥행에 무심하며 남의 자리를 빼앗지도 않는다. 때가 되면 제자리에서 피어나고 때가 되면 조용히 사라져 때를 기다린다. ‘꽃들아 야심을 가져라.’ 하지만 그들에게 도전정신이 부족하다고 나무랄 순 없다. 서로 사진을 찍어주며 ‘사람이 꽃보다 아름다워’ 합창한들 그 말에 흔들릴 꽃들이 아니다. 자부심으로 본분을 지키는 모습이 가상하지 않은가.

꽃구경 다녀오는 길에 천만 관객을 모은 영화 ‘파묘’를 보았다. 이렇게 많은 사람이 봤다면 이유가 있을 거야. 조회와 관람은 다르다. 조회는 무료지만 관람은 유료다. 지갑 열고 그 자리(극장)에 가서 두 시간 이상 인내하고 몰두한 사람이 천만이라면 얘기가 다르다.

숨죽이며 ‘자리’에 앉아 화면을 응시하는 사람들. ‘파묘’는 ‘자리’에 관한 영화다. 산 자보다 죽은 자의 자리에 초점을 맞췄다. 죽은 자의 자리가 산 자의 운명과도 연결돼 있다는 건 흥미로운 관점이다. 영화를 보고 난 후 지하철 안에서 여러 사람의 설왕설래를 읽는 즐거움 또한 각별하다. 후기가 분분하다. 앞의 감상평이 마음에 들지 않은 분이 지적한다. ‘천만의 말씀!’ 그렇다. 천만이 보았으니 천만의 말씀이 나오는 게 당연하다. ‘그걸 말이라고 하냐.’ 이런 흥분의 언성보다 ‘천만의 말씀!’은 얼마나 고상한가. 이런 분위기를 옆 사람 눈치 안 보고 누릴 수 있으니 오늘도 천만다행이다.

천 년도 더 된 노래에도 ‘자리’가 등장한다. ‘밤들이 노니다가 들어와 자리를 보니’(‘처용가’) 뿌리를 더듬으면 자리는 ‘자다’(寢)에서 파생된 말이다. 내가 잘 자리에 엉뚱한 사람이 누워 있다면 ‘야 누울 자리를 보고 발을 뻗어’라고 소리칠 법한데 처용은 오히려 그 앞에서 노래를 불렀다. 춤(처용무)까지 췄다니 도대체 그는 대인배인가 아니면 사차원인가. 예측불허의 반전이 그 자리에서 일어난다. 침입자(역신)는 감복하여 당신의 얼굴이 보이는 곳에는 앞으로 얼씬 않겠다고 다짐한다. 그러니 감정이 격앙될 때는 노래하는 습관을 갖도록 하자. 4분의 골든타임이 당신도 살리고 상대도 살릴 수 있다.

오늘 고른 노래는 성시경의 ‘그 자리에 그 시간에’다. 그 자리에 그 시간에 그 사람을 만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참 많은 일이 일어날 것 같다. 좋은 일 안 좋은 일은 결국 그 자리에 그 시간에 그 사람을 만나서 일어난다. 소중한 인연일 수도 있고 얄궂은 운명일 수도 있다. 귀 기울여 더 들어보자. ‘스쳐 지나갔다면 다른 곳을 봤다면 (중략) 그 말을 참았다면 다른 얘길 했다면’(성시경 ‘그 자리에 그 시간에’) 결국은 순간을 못 참아서 내뱉은 말로 이별을 맞은 이의 자책이 담겼다.

봄꽃은 흐드러졌는데 차라리 피지 않으면 좋을 말들이 지천에 나부낀다. 이양하의 ‘신록예찬’을 소리 내어 읽는다. 글 여기저기에 남의 자리와 나의 자리가 대비되어 나타난다. ‘머리 위에 푸른 하늘이 있는 것을 알지 못하고, 주머니의 돈을 세고, 지위를 생각하고, 명예를 생각하는’ 사람들은 남의 자리(벼슬자리)를 차지하려고 발버둥을 친다. 반면에 수업을 마치고 찾아가는 ‘본관 서쪽 숲 사이에 있는 나의 자리’(보금자리)는 ‘솔밭 사이에 있는 겨우 걸터앉을 만한 조그마한 소나무 그루터기에 지나지 못하지마는’ 평화롭고 행복한 시간을 나에게 선사한다. 이 장면을 영상으로 옮긴다면 시인과 촌장의 ‘풍경’도 배경음악으로 어울릴 성싶다. ‘세상 풍경 중에서 제일 아름다운 풍경 모든 것들이 제자리로 돌아가는 풍경.’

작가·프로듀서·노래채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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