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살-설, 남다-넘다, 맛-멋’의 관계를 보면 뭐가 보이는가? 모든 조합이 ‘아’와 ‘어’가 대립을 이루고 있는 것은 쉽게 알 수 있는데 그렇다면 뜻은 어떠한가? 나이를 세는 단위 ‘살’과 새해 첫날을 나타내는 ‘설’은 의미상 서로 통하는 면이 있다. ‘넘다’는 정해진 범위를 벗어나는 것인데 이리 되면 ‘남다’의 상태가 된다. ‘맛’과 ‘멋’도 마찬가지여서 음식에서 느껴지는 ‘맛’과 사람에게서 느껴지는 ‘멋’도 서로 통한다.
이런 단어들은 모두 기원이 같은데 모음이 교체되면서 그 뜻도 조금 달라진 것이다. 애초에는 모음의 교체에 따라 약간의 어감 차이만 있었는데 오늘날에는 아예 다른 단어가 됐다. 그렇더라도 의미상 통하는 바가 있으니 그 관련성을 추적해볼 수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어떤 어형, 어떤 뜻이 먼저였을까? 설이 되면 한 살을 더 먹으니 ‘설’이 먼저이고 여기에서 ‘살’이 분화된 것으로 보이고 실제로도 그렇다.
‘맛’과 ‘멋’의 관계는 누구나 ‘맛’이 먼저일 것이라 생각할 수 있다. 멋은 오감 중 시각으로 느낄 때가 많고, 맛은 미각으로 느낀다. 시각은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감각이지만 미각은 ‘먹고살기’ 위해 필수적인 감각이다. 맛있다고 여기는 음식은 인간에게 이로운 것들이고 그렇지 않은 것은 해로운 것들이니 생존을 위해 반드시 맛을 느낄 수 있어야 한다. 먹고살게 된 후에야 멋을 느끼니 맛이 먼저다.
그런데 멋 때문에 맛을 포기하는 경우를 종종 본다. 바쁜 출근 시간, 화장과 치장하느라 시간이 없어 먹는 것을 건너뛰는 것이다. 누군가는 좀 더 일찍 일어나라고, 혹은 겉모양보다는 건강을 챙기라고 잔소리를 하겠지만 굳이 참견할 일은 아니다. 끼니를 거르고 다음 끼니에서 보충해도 충분한 상황이 됐다. 그리고 멋진 모습을 보이는 것 또한 먹고살기 위한 경쟁력이 되니 맛을 위해 멋을 내는 것이다. 그러니 맛과 멋은 여전히 뜻이 통한다.
인하대 한국어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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