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OTT 뭐 볼까 - 애플TV+ ‘슈거’
애플TV+ 시리즈 중 전세계 1위
콜린파렐, 고독한 무사같은 역할
필름 누아르 잇는 21세기 버전
“난 사람을 해치는 걸 싫어한다. 정말이다. 나까지 합세하지 않아도 세상은 이미 고통스러운 곳이다.”
존 슈거(콜린 파렐)는 잃어버린 사람을 찾아 가족에게 돌려보내는 사립 탐정이다. 건강상의 이유로 당분간 일을 그만두려는데 저명한 영화 제작자 조너선 시겔(제임스 크롬웰)로부터 잃어버린 손녀 올리비아를 찾아 달라는 요청을 받는다.
애플TV+시리즈 ‘슈거’는 1940∼1950년대 할리우드를 풍미했던 필름 누아르 장르의 21세기 버전이다. 어디에도 소속감을 느끼지 않는 고독한 사립 탐정, 꿈과 환상의 도시이자 마약과 범죄의 온상인 LA란 배경, 돈 많은 영화제작자 의뢰인과 집안의 불화, 비밀을 안고 있는 여성 등 필름 누아르의 전형적인 설정을 갖고 있다.
그런데 주인공 슈거의 독특한 면이 필름 누아르의 전형을 깬다. 슈거는 범죄에 가장 가까이 있지만, 폭력을 싫어하고 총을 멀리한다. 어떤 유혹에도 흔들리지 않고 맡은 일을 철두철미하게 처리하는 프로지만, 한편으론 거리의 노숙자를 도와주고, 도쿄 시부야 교차로를 지나는 사람들의 기분을 몰래 메모장에 적는 감성을 지니고 있다.
이런 슈거의 모습은 거친 남성의 전유물로 여겨지던 필름 누아르를 현대적으로 재창조해낸다. 좀처럼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 기존 필름 누아르의 주인공과 달리 그는 늘 독백하고 번민한다. 이를테면 하드보일드 장르의 대표 격인 험프리 보가트가 현시대에 맡았을 법한 캐릭터다. 상업 영화와 예술 영화를 오가며 공력을 쌓은 콜린 파렐은 고독하지만 인간미 있는 역할을 멋스럽게 소화한다. 파렐은 “그가 인생에서 유일하게 의미 있다고 생각하는 건 잃어버린 영혼들을 찾아내 가족이 있는 집으로 돌려보내는 것”이라고 소개했다.
‘슈거’ 속 여성들은 악녀 아니면 피해자였던 필름 누아르 속 여성들과 달리 주체적이고, 긍정적이다. 필름 누아르 영화에서 여성의 뒤틀린 욕망을 팜파탈이란 캐릭터로 드러냈다면 이 시리즈에서 뒤틀린 욕망을 가진 건 남성들이다.
슈거는 영화잡지 사이트 앤 사운드나 카이에 뒤 시네마를 구독하는 영화광이다. 중간중간 하워드 혹스의 ‘빅 슬립’, 존 휴스턴의 ‘말타의 매’, 로버트 알드리치의 ‘키스 미 데들리’ 등 고전 흑백영화가 교차돼 보인다. 슈거와 흑백영화 속 주인공의 모습이 겹쳐지면서 흑백영화는 슈거의 의식의 흐름처럼 느껴진다. 시각적으로도 앨프리드 히치콕 등 고전 영화에 현대적이고 감각적 연출을 섞어 놓았다.
슈거란 인물에 집중해 이야기 흐름을 쫓다 보면 홀로 깜깜한 물속을 헤매는 느낌을 받게 된다. 그는 타락한 세상에서 홀로 자신의 윤리를 지키는 고독한 무사처럼 보인다. 이는 어쩌면 현실 고증이다. 믿고 기댈 곳 하나 없는 슈거처럼 각박한 이 세상에서 우린 모두 혼자니까. 지난 5일 1, 2화가 공개됐고 이후 한 주에 1화씩 순차 공개한다. 애플TV+시리즈 중 전 세계 1위이자, 한국에서도 1위를 기록 중이다.
이정우 기자 krusty@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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