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승훈 논설위원

균형추 실종된 巨野구도 연장
인적 쇄신, 대증요법은 불충분
표심 관통하는 흐름 간파해야

자유, 법치와 상충된 통치방식
‘보수 대개조’ 미완 상태 재확인
치열한 성찰, 노선 논쟁 전개를


세상은 균형을 향해 움직인다고, 동서고금 현자들의 가르침을 믿어왔다. 깨져버렸다. 4·10 총선 결과, 108 대 192. 윤석열 정부의 남은 3년은 더 혹독한 소여 대 거야 구도가 됐다. 지역구 득표율에서 불과 5.4%포인트 앞선 더불어민주당이 국민의힘보다 71석(28%)을 더 가져간 소선거구제 탓만은 아닐 것이다. 지난 대선과 지방선거를 보수 진영이 승리했으니 이번엔 진보 진영에 몰아줬단 해석도 과다 대표성이 초래한 입법권력의 폐해를 고려하면 납득하기 어렵다. 비이성적인 ‘조국 현상’도 설명되지 않는다. 대체 무엇이 균형추의 오작동을 불러왔는가. 민심이 항상 옳다면, 총리·대통령 비서실장 교체 정도의 대증요법으로 해결할 수 없는 근본적 문제가 있다.

영국 유력지 파이낸셜타임스의 수석 경제평론가 마틴 울프가 최근 발간한 ‘민주주의적 자본주의의 위기’의 중심 논제 역시 균형 실종이다. “우리 사회의 건강은 경제와 정치, 개인과 집단, 국가와 글로벌 간의 미묘한 균형 유지에 달려 있는데 그 균형이 깨져버렸다”고 했다. 번영과 자유, 행복을 창출하는 능력을 보여온 민주주의적 자본주의 체제가 폭넓은 번영과 안전을 제공하지 못해서다. 그 증상을 세 가지로 분석했다. 엘리트에 대한 광범위한 신뢰 상실, 포퓰리즘과 권위주의의 부상, 진실이라는 개념에 대한 신뢰 상실이다. “괴물 같은 독재자들의 시대”는 저물었다 싶었는데 21세기 들어 도널드 트럼프, 보리스 존슨 등 선동독재(demagogic autocracy)가 등장한 배경이다. 그 근원에 경제적 자유주의의 정점이었던 신자유주의의 실패를 지목했다.

공산주의의 종언을 고했던 프랜시스 후쿠야마가 ‘자유주의와 그 불만’(2022)에서 대처리즘, 레이거노믹스, 작은 정부론 기조를 겨눠 종언을 선언한 것과 유사한 맥락이다. 그는 “우파 포퓰리스트와 좌파 진보주의자들에게 자유주의가 불편한 이유는 자유주의의 근본적 취약성 때문이 아니다”라고 했다. 자유주의 원칙이 경제적 불평등을 초래한 원인이 아닌데도 “신자유주의가 모든 사회적 연대를 폄훼하고, 정부의 기초적 역할조차 파괴하는 등 극단적으로 몰고 가면서 정치·사회적 양극화를 낳았다”고 했다. 인민에 의한 지배(rule by people)인 민주주의와 법의 지배(rule of law)인 자유주의를 구분하면서 “민주주의가 아니라 자유주의의 위기”라고 주장한다.

윤 대통령이 취임사부터 강조해온 자유주의·법치와 실제 보여준 국정 기조·통치 방식은 사뭇 결이 달랐다. 최우선 국정 목표가 무엇인지는 아직도 딱히 떠오르는 게 없다. 외교·안보 분야를 제외하면 재정·산업 정책에선 건전재정, 규제개혁 등 전임 보수 정부의 슬로건이 다시 내걸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노동·연금·교육에 이어 의료 개혁을 추진해왔다지만 전제돼야 할 사회적 동력, 공감과 설득이 부족했다. 범죄 집단화 또는 이권 카르텔로 몰아붙이는 게 우선이었다. 의대 정원 확대 필요성도 직역 카르텔로 설명했다. 자유주의 가치 중 가장 근본적인 게 자율성이다. 정치·사회적 권리만이 아니라 재산 소유와 교환의 권리에선 더욱 자율성 보장이 민감한데, 검찰과 경찰을 앞세워 ‘법대로’만 압박했다. 공권력을 통치 수단화한 법에 의한 지배(rule by law)가 직전 정부와 다를 게 없었다. 행정부 수반인 대통령이 야당 대표와의 국정 협의도 수사·재판을 받는다는 이유로 외면해왔다. 50분 대국민 담화는 훈시 같았고, ‘질문을 받지 않은 대통령’이 된 지 오래다. 에드먼드 버크가 시원을 이루는 고전적 보수주의의 숙제, 전통적 가치와 질서 존중이 강압적 권위주의로 비치는 약점을 줄곧 노출한 것이다. 디올백, 입틀막, 대파 소동, 이종섭 파동은 그러한 보수 정부에 대한 회의감이 분노로 바뀐 불쏘시개였을 뿐이다.

4년 전 총선 참패 뒤 여권이 이구동성 외쳤던 ‘보수 대개조’는 미완 상태라는 게 확인됐다. 레임덕은 물론 탄핵, 임기단축론까지 나온다. 정권 재창출을 하지 못한 대통령은 그 어떤 공적을 남기건 실패한 대통령이 된다. 정권심판론이 압도한 성난 민심을 관통하는 거대한 흐름을 간파하지 못하면, 현 정부의 위기를 넘어 국가의 위기다. 치열한 성찰과 노선 논쟁이 전개돼야 한다. 이제 보수 재건을 위한 대통령의 시간이다.

오승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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