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인의 서재

아이들은 자란다. 그러나 여자아이들은 ‘여자라는 위치로 몰려가며’ 자란다.

작가 안담은 단편소설 ‘소녀는 따로 자란다’(위즈덤하우스)를 통해 여자아이가 소녀로 입장을 정하거나 정하지 못한 채 골몰하는 상황을 파헤친다. 소녀로 입장을 정한 아이는 소녀 세계로 ‘입장(入場)’한다. 사실 아이의 선택이 능동적인 것처럼 보이지만 보이지 않는 시스템이 작동했다고 볼 수 있다. 소녀의 세계로 들어가지 못한 아이는 ‘소녀들의 세계’에서 주변부를 헤매거나 보이지 않는 벽을 더듬고, 발을 넣었다 빼보며 끝내 혼란스러워한다. 주인공 화자가 바로 이런 위치에 있다. 화자는 “말하자면, 저 애는 소공녀고, 메그고, 다이애나”인 소녀 중의 소녀로 입장을 정한 아이 옆에서 “황홀에 가까운 패배감”을 맛보는 아이다. 초등학교 저학년에서 고학년으로 넘어가는 시기에 소년도 소녀도 아닌 중간 지점에서 비틀려 자라는 아이, 하교 후 소녀들이 찾아와 비밀을 털어놓는 아이, 차라리 네가 남자친구였으면 좋겠다는 고백을 이따금 받는 아이, ‘예쁜 것’에 대한 세상의 정의와 분류 기준을 톺아보는 아이다.

‘소녀는 따로 자란다’는 어느 쪽 방향으로 가야 할지 모른 채, 삼거리에 홀로 서 있는 아이의 목소리를 담아낸다. 소년과 소녀 사이에서 자신의 성정체성을 가까스로 인지해 가는 일의 고단함을 집요하게 그려낸다.

이 소설은 위즈덤하우스 ‘위픽wefic’ 시리즈 중 한 권이다. ‘한 조각의 문학’이라는 매혹적인 카피 아래 작은 양장판형의 책으로 단편소설 한 편을 담아낸 시리즈다. 커피 한 잔에 케이크 한 조각을 곁들이는 값으로 매혹적인 단편 한 조각을 취할 수 있다면! 이 작은 책은 나를 크게 떠오르게 했다. 어린 시절 아주 쉽게 소녀 세계로 입장해버린 어린 나, 그게 내 능동성이 아니었다는 생각이 비로소 든다. 주눅이 든 채 아니 자유를 박탈당한 채 무언가로부터 몰려가며 자란 내가 보였다. 소설의 화자 같은 아이도 단박에 떠올랐다. 여자아이들이 이따금 마음을 기대거나 비밀을 털어놓고, 외로운 시간까지 부려둔 다음 쉽게 돌아섰을 때, 홀로 남은 그의 마음은 모른 채였다. 삼거리에 선 사람들을 생각한다. 어린 사람도 어리지 않은 사람도, 삼거리에 서서 홀로 쓸쓸해질 수 있다.

이 소설은 아름답다. 맵고 떫고 낯설고 익숙한 시간들을 차분히 쌓아 ‘날개’로 만든 작품 같다. 날개는 한 쌍이 아니다. 한 쪽뿐이다. 어떤 이들은 한 쪽의 날개를 가지고 날아오르기도 한다. 이상하고 놀라운 힘으로.

박연준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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