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자들에게 마지노선이 되는 곳이 있다. 병원으로 들어갈 수 있는 입구이자 마지막 보루인 응급실이다. 20년 넘게 응급실을 지킨 한 의사에게 그 공간은 시간과의 전쟁터다. 한계점은 없다. 언제 환자 몇 명이 들이닥칠지 모르는 극한 환경에서 의사들 처치는 분초를 다툰다. 삶과 죽음의 경계에 선 곳에서 그가 얻고자 했던 건 ‘환자의 시간’이다. 환자가 빨리 치료받지 못하면 수술과 회복시간은 그만큼 길어진다. 그는 “응급실에 왔을 때 의식을 잃은 시간을 3∼4시간만 줄여줘도 환자가 퇴원하는 시기를 하루 이틀 앞당길 수 있다”며 “환자에겐 굉장히 큰 시간”이라고 말했다.
응급실이 흔들리면 가장 먼저 피해를 보는 이들은 중증환자다. 최근 치료받을 병원을 찾아 헤매다가 숨진 환자가 여럿이다. 예고된 희생이다. 전공의들은 2020년 의사 총파업 때와 달리 응급실과 중환자실마저 비웠다. 응급의학과 교수들은 ‘집단사직’과 ‘응급의료 중단’을 앞세워 정부를 압박하고 있다. 의사들이 마지막까지 남아 있어야 할 곳을 떠나겠다는 것이다.
환자의 시간은 사그라들고 있다. 지금 이 순간에도 병상에 누워 의사를 기다리며 거친 숨을 몰아쉬는 중증환자들이 있다. 어떤 환자들은 평생과 맞먹을 몇 달을 보내고 있을지 모른다. 전공의들이 병원 밖에서 흘려보내는 시간이 환자에겐 온 세상일 수 있다. 전공의의 관심사는 10년 후다. 의사 수가 늘어나면 한국 의료는 퇴보한다는 우려에서다. 의사의 미래가 환자의 ‘오늘’보다 중요한 까닭이다. 미래 손익은 따져도 환자 피해는 안중에 없다.
의사들 세계관에 대한 인내심은 임계점에 다다랐다. 전공의들은 병원으로 돌아오는 조건으로 의대 증원 백지화 외에 보건복지부 장·차관 경질과 군 복무 기간 단축을 내걸었다. 집단 이익만 내세운 이기적인 요구다. 같은 저울에 올릴 수 있는 사안도 아니다. 국민 정서에도 맞지 않는다. 이들 행태는 노조보다 비겁하다. 노동자들은 파업 조건, 단 몇 줄을 알리기 위해 타워크레인에 오른다. 자기 목숨을 걸고 고공농성을 벌이는 것이다. 의사들은 의사 면허도, 자기 목숨도 걸지 않는다. 의사들이 주장을 관철시키기 위해 내걸은 건 환자 생명이다.
의료 정책은 의사들 전유물이 아니다. 의사들은 27년간 의대 증원을 막아섰다. 반면, 과잉 진료와 미용 의료에 대한 자정 노력은 하지 않았다. ‘인술’은 없고 ‘상술’만 남았다는 자조도 나온다. 건강보험료와 세금, 진료비로 의사들 월급을 대는 건 국민이다. 지난해 취재차 만났던 독일 의사는 “국민이 내는 보험료로 월급을 받고 있다”며 “의대 증원을 반대할 명분이 없다”고 말했다. 의료 체계는 달라도 의업의 본질은 같다. 이제 국민은 전공의들이 초래한 진료 공백 비용까지 떠안고 있다. 의료 파행을 수습하기 위해 건보 재정 등으로 투입된 비용만 5000억 원이다. 사회적 영향력이 큰 전문직이 집단이익만 추구하면 국민 삶은 피폐해진다. 의료개혁에는 여야가 따로 없다. 의사단체 요구대로 중단될 일도 아니다. 의사들에게 피할 수 없는 외통수란 의미다. 환자들에게 남은 시간이 많지 않다. 의사들도 마찬가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