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의장은 입법부 수장으로서 본회의 사회권을 갖는다. 여야 갈등의 최후 조정자이기도 하다. 국회가 아니더라도 회의 진행자의 중립은, 스포츠 경기의 심판처럼 원초적 요건이다. 국회법에 의장의 당적 보유 금지를 명시해 중립 의무를 부여한 것도, 국회의장 출신은 더 이상 국회의원 선거에 출마하지 않는 관행도, 출신 정당의 당리당략에 따르지 말고 중립적 위치에서 이견을 조정·중재해야 한다는 당위 때문이다. 이를 부정하는 것은 국회법 뭉개기를 넘어 의회민주주의 작동을 가로막는 일이다.

김진표 국회의장이 국회 본회의를 앞두고 채상병특검법 등 쟁점 법안에 대해 여야 합의를 요청한 뒤 더불어민주당으로부터 집단적 행패에 시달리고 있다. 박지원 당선인은 유튜브 방송에서 “개××. (김 의장의) 복당을 안 받아야 한다”는 등 욕설을 퍼부었다. 박주민 원내수석부대표는 “환장하겠다”고 했다. 김 의장은 4일 여야 원내대표와 함께 북·남미 의회 외교를 위해 출국할 예정인데, 홍익표 원내대표는 “순방에 동행하기 어렵다”고 으름장을 놓았다. “순방을 저지하겠다”라는 의원들이 여럿이고, 정성호 의원은 “만일 (다음 국회) 의장이 되면 저를 대신해서 외유를 보내 드리겠다”고 조롱했다. 박 당선인과 정 의원은 물론 차기 국회의장 출마 예정자들은 “민주주의에 중립은 없다”(우원식), “국회의장이 중립은 아니다”(추미애)는 등 대놓고 중립 의무 폐기를 공언하고 있다.

오는 30일 4년 임기를 시작하는 제22대 국회에선 이런 현상이 더욱 악화할 것으로 예상된다. 위선·막말·궤변 등 저질 의원 수가 크게 늘어난 데다, 이재명 대표의 친위조직 격인 더민주전국혁신회의 등 강경 세력이 거대 야당을 주도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입법 폭주와 대통령 거부권 행사가 속출하고, 국정 표류로 인한 피해는 오롯이 국민이 떠안아야 한다. 국민 갈등을 조정하는 민의의 전당은 강경 세력의 힘자랑 난장판으로 전락하게 된다. 국회의장마저 중립 의무를 팽개치면, 국회 본회의는 민주당 의원총회처럼 운영될 것이다. 민주당을 찍지 않은 49.44%의 국민을 무시하는 반(反)의회주의 행태부터 멈추기 바란다.

기사 추천

  • 추천해요 0
  • 좋아요 0
  • 감동이에요 0
  • 화나요 0
  • 슬퍼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