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9일 열린 윤석열 대통령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회담 이면에 ‘함성득-임혁백 라인’이 작동했다는 사실이 공개됐다. 정치에서 막후 조정을 위한 비선(秘線) 활용은 드물지 않지만, 이번 경우는 상당히 고약하다. 특히 대통령실의 경우, 공조직인 본선(本線)을 보완하는 것이 아니라 본선을 대체한 것으로 비친다. 그러지 않아도 온갖 ‘한남동 비선’ 억측이 파다하다. 비선들의 공치사 자체도 꼴불견이지만, 그런 사람에게 의존한 윤 대통령 책임도 가볍지 않다. 비선에서는 공식적으로 하기 힘든 민감한 얘기도 한다는 점에서, 이런 식이면 신뢰는 붕괴하고 양측 내부 오해는 증폭시킬 게 뻔하기 때문이다.

윤 대통령 부부가 한남동 관저로 이사하기 전에는 같은 아파트에 살면서 가까운 것으로 알려진 함성득 경기대 정치전문대학원장과 민주당 공천관리위원장을 맡았던 임혁백 고려대 명예교수는 한국일보 인터뷰(7일 자 1·4면)를 통해 막후 협의 내용을 밝혔다. 함 원장이 “(윤 대통령이) 강성 지지층과 참모들의 반대 때문에 이 대표를 만나지 않았다”고 전했다고 한다. 이 대표는 원희룡 전 장관의 비서실장 임명은 ‘양평고속도로 특혜 책임자’라며 난색을 표했다는데, 비서실장으로 유력하게 거론되던 원 전 장관은 돌연 대상에서 배제됐다. 윤 대통령은 차기 대선 경쟁자가 될 인사를 기용 않겠다는 뜻을 전했다고도 한다.

비선에 의존할수록 공조직은 망가지고 국정은 왜곡된다. ‘박영선 총리-양정철 비서실장’ 보도가 있었을 때 비서실이 “사실무근”이라고 밝혔는데도, 일부 참모들이 “신중히 검토 중”이라는 전혀 다른 언급을 하는 황당한 일도 있었다. 윤 대통령이 이 대표에게 읍소하는 굴욕적인 모양새로 묘사된 것은 볼썽사납고, 지지층 반발도 예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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