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불산단 전봇대’는 이명박 전 대통령이 당선인 시절에 공무원의 탁상행정을 지적하며 주목받았던 대표적인 규제 사례다. 이 전 대통령은 당시 전봇대의 높이가 낮아 산단 내 물류가 많은 제약을 받고 사고 위험도 컸던 점을 지적한 것이었다. 하지만 정권을 거치며 전봇대 제거와 전력 지중화 사업은 점차 후순위로 밀리게 됐고, 2016년 사업이 사실상 중단됐다. 이는 바로 규제 혁신 추진의 정책 디자인 전략 수립이 부족했고, 지난 정부의 사업이라는 정치적 시각이 개입됐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환경 규제 혁신 역시 어느 정부에서나 출범 초부터 핵심 국정 과제로 언급되지만, 집권 후 발생한 각종 현안에 우선순위가 밀려 용두사미로 끝나곤 했다. 특히, 환경 규제는 혁신을 추진할 때마다 정부가 경제 논리에 환경을 등한시한다는 지적을 떨치기 어려웠으며, 정치적 쟁점으로 이어지곤 했다. 이는 환경 규제를 둘러싼 사회의 복잡성과 다양성이 커지는 데 맞춰 정책을 공론화하고 상호 이해를 숙성시키는 정책 디자인 과정이 온전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9일로 만 2년이 지난 윤석열 정부의 환경 규제 혁신에 대한 중간평가는 긍정적이라 할 수 있다. 2022년 8월 환경부는 우리 기업의 글로벌 경쟁력을 떨어뜨리고 적극적인 투자를 가로막는 환경 규제를 개선하기 위한 청사진을 제시했고, 작년 8월에는 ‘환경 킬러규제 혁신 방안’ 발표로 이를 구체화했다. 주요 과제로는 그간 획일적으로 운영되던 화학물질 규제를 위험 수준에 비례하도록 재편하고, 반도체·디스플레이 등 미래 먹거리 산업의 성장을 위한 환경 배출 기준 합리화, 맞춤형 시설 기준 마련 등이 포함됐다. 또한, 환경 규제의 상징인 환경영향평가 검토 과정을 내실화하면서도 민간과 지방의 투자는 활성화할 수 있도록 선택과 집중, 절차 간소화 등 방향을 제시했다.
이를 위해서는 국회 차원의 논의와 법률 개정이 필수였고, 여소야대 상황에서 규제 개선의 추진 동력을 유지하기가 쉽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환경부는 국회, 시민사회와의 긴밀하고 치열한 소통을 바탕으로, 우리 경제를 위한다는 필요성에 공감한 여야의 초당적 협력을 끌어냈다. 여러 가지 요인이 있겠지만, 이것을 가능하게 했던 것은 책상 앞이 아닌 현장에서 국민과 기업의 건의를 적극적으로 살펴 ‘현장에서 작동하는 규제’를 만들겠다는 환경 규제 혁신 디자인 전략이 주효했다고 보인다.
지난 2년간 환경부는 국민의 건강과 안전, 환경 보전이라는 목표는 지키면서도 ‘과학과 현장에 중점을 둔 규제를 합리화’하겠다는 기치를 내걸고 규제 혁신을 추진해 오고 있다. ‘환경’의 가치가 정량적으로 평가하기 어렵고 기술적으로 복잡한 만큼, 환경 규제 혁신은 정치적 논쟁에서 벗어나 수범자와 함께 치열한 고민 아래 설계돼야 한다. 무엇보다도 그 혁신의 결과가 지금보다 더 나은 환경을 국민에게 제시할 수 있을 때 동력을 유지할 수 있다. 규제 혁신은 법률 몇 건 개정했다고 끝나는 일이 아니다. 이번 정부의 임기가 끝나고 정권이 바뀌더라도 계속돼야 한다. 한동안 중단됐던 전남 영암군의 대불산단 전봇대 제거 사업은 윤 대통령이 당선인 신분으로 현장을 방문한 이후 정부 사업으로 선정돼 다시 진행되고 있다. 규제 해소에 대한 우리 정부의 적극적인 의지와 섬세한 ‘현장중심·문제해결형 환경규제 혁신 디자인 전략’이 조화를 이뤄 대한민국이 계속 녹색 강국으로 나아가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