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예리 경상국립대 지식재산융합과 초빙교수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행정부는 중국에 대해 광범위한 무역 제재를 가했지만, 요란한 홍보에 비해 그 효과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다. 대표적인 대중(對中) 견제 정책은 중국산 수입품에 대한 관세 부과였다. 트럼프 당시 대통령은 중국으로부터의 수입 감소와 늘어난 관세 수입을 홍보했지만, 민주당은 중간재 공급 부족으로 제조업이 지장을 받게 됐고, 관세 부과는 미 소비자에게 전가돼 물가를 올렸다고 비판했다.

2020년 대선에서 승리한 조 바이든 행정부는 기본적으로 트럼프 행정부의 대중 정책을 계승하되 정교하고 스마트한 접근을 모색했다. 전면적인 관세 부과보다는 타깃 분야에 한정된 고강도 조치를 발동하기로 했고, 이를 ‘작은 마당, 높은 담장(SYHF·Small Yard, High Fence)’으로 표현했다. 첫 타깃은 첨단 반도체였고, 이어 인공지능(AI), 클라우드 등으로 분야를 넓혔다. SYHF 정책의 타깃 분야는 미국이 높은 경쟁력을 가진 첨단 산업이고, 범용 분야를 제외함으로써 미국 소비자들이 무역 분업에 따른 경제적 이익을 누릴 수 있게 한다는 정책 목표를 설정했다.

미 행정부가 유럽연합(EU)에 대중 강경책 동참을 요청했지만, 중국과 긴밀한 경제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독일, 프랑스 등의 반대로 EU 차원의 대중국 정책을 모색하기 어려웠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이후 유럽 국가들은 권위주의 정권의 위험을 실감하게 됐고, 미국의 요청을 수용해야 한다는 분위기가 강해졌다. 이 시점에 SYHF 정책은 유럽 국가들에 디리스킹(위험 회피) 논리로 전환됐고, 2022년 5월 개최된 G7 정상회의에서 디리스킹이 채택됐다.

2023년 12월에 발간된 외교정책 전문지 ‘포린폴리시’는 미·중(G2) 냉전을 이끄는 미국의 핵심 기관이 상무부라고 분석했다. 얼핏 생각하면 국무부나 국방부가 대중 냉전에서 주도적 역할을 할 것으로 보기 쉽다. 그러나 포린폴리시는, 상무부는 수출통제제도를 실행하는 기관이고 미국으로의 공급망 재편을 주도하기 때문이라고 그 근거를 제시했다. 오늘날 첨단 기술은 산업경제 의미를 넘어 국가안보 관점에서 적대국의 접근을 차단해야 하는 핵심 분야가 됐다.

현재 상무부 장관인 지나 러몬도는 동북부 로드아일랜드 주지사 출신으로 차기 유력 대선 주자급으로 평가받는다. 바이든 대통령이 초대 상무장관으로 러몬도를 임명한 것은 포린폴리시가 밝힌 바와 같이, 대중 냉전에서 상무부의 역할이 중요했기 때문일 것이다. 미 행정부 장관 서열 1위는 토니 블링컨 국무장관이다. 하지만 중요 대외정책 결정 및 국제적인 행사에서 러몬도 상무장관이 블링컨 국무장관보다 더 큰 역할을 하는 모습이 눈에 띈다. 이는 바이든 행정부의 대외정책 결정에서 상무부의 역할이 중요하기 때문에 힘이 실리는 것으로 봐도 무방할 것이다.

실제로 러몬도 장관은 미국의 수출통제제도 강화는 물론이고, 일본과 네덜란드의 첨단 반도체 기계장비의 대중 수출 통제를 이끌어냈고, 인도태평양경제프레임워크(IPEF) 협상 타결 및 이행을 주도하고 있다. 최근 미 상무부는 중국 최대 정보통신 기업인 화웨이에 대한 인텔과 퀄컴의 반도체 수출 면허를 전격적으로 취소했다. 그동안 미국의 고강도 수출 제재를 비웃기라도 하듯 화웨이가 신제품을 잇달아 내놓자 압박 강도를 높인 것이다.

오는 11월 미 대선에서의 승자에 대해 세계의 관심이 쏠리고 있고, 미국에 대한 아웃리치(대외 접촉)를 강화할 필요가 있다. 나아가 미국의 첫 여성 대통령감인 차기 미 대선 주자급 실세 정치인에 대한 아웃리치에도 관심을 가져야 할 것이다.

류예리 경상국립대 지식재산융합과 초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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