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결혼했습니다 - 배병헌(29)·이다은(여·28) 부부

저(병헌)와 아내는 교회에서 처음 만났습니다. 말도 잘하지 못했던 유치원 시절부터 알게 된 우리는 서로를 그저 ‘교회 오빠’와 ‘교회 동생’으로 생각하며 지냈어요. 아내가 ‘여자’로 느껴진 건 고등학생 때였어요. 저랑 한 살 차이가 나던 아내가 제 고등학교 후배로 입학한 걸 본 순간 “얘가 이렇게 귀여웠나?”란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때부터 아내에게 계속 눈길이 가고 일부러 말도 걸게 됐습니다. 우스갯소리로 “늙으면 같이 노인정에서 화투를 치자”고 했죠. 나름 고백이었는데, 아내는 친한 교회 오빠가 한 농담으로 받아들였다더군요.

친한 오빠 동생 사이는 쉽사리 달라지지 않았어요. 유명한 노래 가사 중에 “언젠가 한 번쯤은 돌아봐 주겠죠”란 말이 있는데, 삶은 노래처럼 흘러가지 않았습니다. 저를 편한 교회 오빠로만 보는 아내를 고등학교 2학년 때부터 6년간 그저 바라만 봤죠. 포기하려던 순간도 여러 번 있었지만, 사랑이란 게 포기가 안 되더라고요.

그저 아내 곁에서 키다리 아저씨처럼 지내고 있을 그 무렵, 사람과의 관계로 힘들어하던 아내에게 진심 어린 조언을 건네자 아내가 어느 순간 스르르 마음을 열더라고요. 오랜 기다림 끝에 아내와 연인이 될 수 있었습니다.

6년의 기다림, 그리고 연인이 된 후 이어진 5년간의 연애는 더없이 행복했습니다.

갈등이 없었던 건 아니에요. 전 MBTI F(감성적)이고 아내는 T(이성적)이거든요. 아내가 별 뜻 없이 한 말이 저에겐 그렇게 서운할 수가 없었죠. 결혼 직전 크게 다툰 뒤 서로 아쉬운 점은 솔직하게 말하기로 했어요. 지금은 아내도 제가 여린 걸 알고 말을 할 때 항상 F의 관점에서 시뮬레이션을 돌려보는 게 버릇이 됐다고 합니다.

거창하게 바라는 건 없습니다. 항상 서로 웃으며 기대 살면서 11년 전 했던 농담 그대로 노인정에서 서로 화투를 치며 사는 미래를 그리고 있어요.

sum-lab@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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