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6년 된 ‘낡은 파견법’

미국·영국 대상업무 규제 아예 없고
독일·일본도 대부분 업무에 허용 돼
모호한 도급 · 파견 기준도 문제
산업계 “글로벌 기준 맞춰 개선”


낡은 규제에 머물러 산업 현장 수요에 부응하지 못하고 불명확한 규정으로 기업들의 인력 수급 부담을 키우는 현행 파견법을 글로벌 기준에 맞게 손봐야 한다는 산업계의 목소리가 잇따르고 있다. 기술혁신으로 산업 환경 변화가 가팔라진 상황에서 글로벌 경쟁력을 유지하고 고용과 투자를 늘리려면 국제 스탠더드에 역행하는 파견법부터 손봐야 한다는 지적이다.

20일 한국경영자총협회의 ‘파견제도의 문제점과 개선방향’에 따르면 미국·영국·독일·일본 등 주요 선진국은 파견대상 업무에 대한 제한이 거의 없고, 사내하도급의 자유로운 활용을 보장하고 있다. 미국·영국은 대상 업무에 대한 규제 자체가 없고, 독일·일본은 극히 일부 업무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업무에 파견이 허용된다.

반면 우리 파견법은 1998년 파견근로자 고용안정과 인력수급 원활화 등을 위해 도입된 뒤 파견대상 업무를 엄격히 제한하는 방식으로 유지돼 왔다. 현행 파견대상 업무 분류는 2000년에 발표된 제5차 한국표준직업분류를 기준으로 하고 있어 ‘의료 서비스 상담 종사원’(병원 코디네이터)과 같은 새로 생긴 직업을 파견대상 업무로 확정하는 데에도 어려움이 있다. 낡은 규제가 직업의 변화를 반영하지 못하는 상황이다.

한국GM 사장으로 재직(2017∼2022년)한 카허 카젬 GM 상하이자동차 부회장은 지난해 11월 “업종과 기한을 제한한 한국의 근로자파견법 등은 글로벌 기준에 맞지 않는다”며 “글로벌 규범 도입 확대 등 한국의 경쟁력 확보 노력이 더욱 강화돼야 한다”고 말했다. 한국GM 최장기 사장을 지낸 카젬 부회장은 지난해 1월 협력업체 직원을 불법 파견한 혐의로 징역 8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지난해 4월 중국으로 떠나기 전 한국에 대한 투자를 방해하는 요인으로 ‘파행적인 노사관계’를 꼽은 카젬 부회장은 “노사 문제가 없는 중국에선 경영에 전념할 수 있어 전기차 혁신이 훨씬 빠르게 이뤄지고 있다”고 쓴소리도 남겼다.

현행 파견법은 모호한 도급·파견 구별 기준으로 인한 현장 혼란도 야기하고 있다. 법원은 사내하도급에 대한 불법 파견 판단에 있어 도급 목적 달성을 위해 제공된 작업표준 등도 근로자파견 관계에서의 지휘·명령으로 판단한다. 하지만 최근 생산관리시스템(MES)을 지휘권의 행사로 봐 근로자파견 관계로 인정하는 판결이 나와 산업계의 우려가 커지고 있다. 보고서는 “글로벌 수준에 맞춰 규제를 폐지하는 방향으로 정책을 추진해 나가야 한다”며 “시행령 개정을 통해 추가적으로 파견대상 업무를 확대하고, 독일·일본 등 경쟁국 사례와 산업 현장의 수요를 감안해 제조업 직접생산공정 업무에도 파견을 허용할 필요가 있다”고 제언했다. 확대되고 있는 불법파견 관련 혼란에 대해서는 “현행 파견법 제2조 제1호의 ‘사용사업주의 지휘·명령’을 ‘사용사업주의 직접적이고 배타적인 지휘·명령’으로 명확히 규정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이근홍 기자 lkh@munhwa.com

관련기사

이근홍

기사 추천

  • 추천해요 0
  • 좋아요 0
  • 감동이에요 0
  • 화나요 0
  • 슬퍼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