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허민의 정치카페 - 누가 민주당을 지배하는가
‘개심’이 ‘명심’ 지배했지만… ‘중도확장’ 중시 당선인들 반란으로 추미애 추대 실패 ‘이변’
李 “당원 중심” 표방하며 당원권 강화 추진… ‘개딸 직접민주주의’, 대의민주주의 무력화 우려

하지만 극성 팬덤을 상전으로 모시는 정치는 양날의 칼이다. 집단화한 힘으로 정적을 제거할 수도 있겠지만, 여차하면 자신을 찌르는 칼이 될 수도 있다.

◇‘추미애 낙점’ 전말
이재명 대표는 4월 중하순까지만 해도 추미애 당선인에 대한 지지 의사가 없었다. 오히려 조정식(6선)·정성호(5선) 의원 등 오래 뜻을 함께해온 친명 좌장급 인사들에 대한 기대가 컸었다. 민주당 내부 사정을 잘 아는 A 의원은 “이 대표가 처음엔 추미애에 대한 의원들의 비호감도가 높은 점, 추 당선인이 완급을 조절하지 않는 통제 불능 캐릭터라는 점을 우려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개딸은 순한 맛 아닌 매운맛을 원했다. 5월로 넘어오면서 강성 친명 지지층 내에서 ‘강철대오론’이 득세하자 ‘추미애 추대론’이 들끓었다. 친명 B 의원은 “이 대표가 이 같은 흐름을 거역하기 어려웠을 것”이라며 “4말 5초부터 명심이 추미애에게 실렸다는 말이 나오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정성호 의원의 말도 이를 뒷받침한다. 그는 의장 후보 경선 사퇴 전인 지난 8일 기자와의 통화에서 “1주일 전부터 이 대표가 ‘추미애가 (국회의장) 했으면 좋겠다’고 말한다는데, 그게 헛소문이 아닌 것 같더라”고 밝혔다. 이 대표 입장이 ‘전통의 친명 암묵적 지지’에서 ‘추미애 적극 지지’로 선회했다는 것이다. 이 대표의 변심은 ‘당원 중심 정당’이라는 자신의 생각에 따른 것으로 분석된다. 더민주전국혁신회의 등 강경 친명 조직도 개딸의 추미애 추대론에 동조·선동했다.
이 대표가 박찬대 원내대표를 통해 조정식·정성호 의원에게 ‘사퇴’를 권한 건 5월 10일쯤의 일이었다. 두 의원은 경선 나흘 전인 5월 12일 의장 후보에서 전격 사퇴했다. 정 의원은 “평소 이 대표에게 싫은 소리를 많이 했는데 이 요구까지 거부하긴 어려웠다”고 말했다. 조 의원은 추 당선인과 ‘단일화 합의문’을 발표했지만, 정 의원은 추 당선인의 전화도 받지 않고 조용히 물러났다. 이 대표의 추미애 낙점은 개심이 명심을 바꾼 사건이었다.
◇확인된 노선투쟁
민주당의 국회의장 후보 경선 과정에서 한 가지 확실하게 드러난 것 중 하나는 당내 노선투쟁의 존재다. 즉 ‘단일대오 구축론’ vs ‘중도확장 강화론’이다. 전자는 강성 당원을 중심으로 ‘반윤-친명 진지’를 구축해야 한다는 논리이고, 후자는 당내 다양성을 살려 중도 확장으로 외연을 넓혀야 당의 미래가 있다는 관점이다. 4인 의장 후보 도전자들의 면면을 놓고 보면 단일대오론은 추미애〉조정식〉우원식〉정성호 순이었다.
의장 후보 경선이 본격화하면서 매운맛을 원했던 개심은 단일대오론으로 정리됐고, 이 대표의 명심은 결국 이를 좇았다. 4인 의장 후보 중 정 의원은 중도확장론에 가장 근접해 있기도 했지만, ‘수박 당도’에서 떨어지면서 개심에서 제외됐다. ‘추미애 의장’으로 정리된 명심이 조정식·정성호 두 의원에게는 전달됐지만, 우원식 의원에겐 따로 전달되지 않았다. 우 의원이 의장 후보로 선출될 가능성이 제로에 가까웠다는 판단, 경선 들러리가 한 명쯤은 있어도 괜찮다는 생각이 작용한 것으로 분석된다.
그러나 국회의원이 유권자인 선거는 일반 국민이 치르는 선거와는 다르다. 22대 국회의원 당선인들의 마음은 추 당선인에 대한 비호감과 이 대표의 과도한 교통정리에 대한 불만이 팽배했다. 서울 출신의 비명 C 의원은 “선수(選數)가 많아질수록 중도확장 심리가 발동하면서 우원식 의원에게 더 많은 표를 행사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우 의원의 승리 이유는 결국 ①비호감 추미애에 대한 거부감 ②이재명의 과도한 사전 조정에 대한 반발 ③중도확장 강화론 동조화 등으로 모인다. 당내에 광범위하게 분포한 ‘샤이 비명’의 지지, 구 김근태계의 암묵적 도움, 친명과 갈등하는 친문의 지원에 힘입어 우 의원은 국가 의전 서열 2위 국회의장직을 ‘줍줍’했다.
◇개심-명심-당심-민심
우원식 의원의 승리가 추미애 당선인을 밀었던 이재명 대표에게 치명적 장애가 될까. 꼭 그렇지는 않다. 이번 사태는 이 대표에게 득과 실을 모두 안겨줬다. 이 대표는 추 당선인의 낙선으로 다소 체면 손상을 입었지만, 통제 불능의 캐릭터가 국회 수장이 되는 부담에서는 벗어날 수 있게 됐다. 더구나 이를 계기로 개딸의 권한을 강화하기 위한 여러 조치를 추진할 명분을 얻었다.
이 대표는 지난 주말 호남과 충청 당원들을 만나 권리당원 의사 비중을 확대하는 등 당원 권한을 강화하겠다는 의지를 분명히 했다. ‘당원 중심 정당’을 거듭 강조하며 차기 시·도당위원장 선출 때 권리당원 의사를 확대 반영하겠다고 약속했다. 당 최고위원회의는 이미 룰 개정 밑 작업에 들어간 상태다. 당원과 당원 권한을 두 배로 늘리는 방안도 추진 중이다.
이 대표에게 개딸의 존재는 축복이자 저주다. 잘 쓰면 약, 못 쓰면 독이다. 추미애 당선인은 “명심이 당심이고 당심이 민심”이라고 했다. 하지만 빠진 게 있다. 바로 개심이다. 수도권 출신의 비명 D 의원은 “민심 위에 당심, 당심 위에 명심, 명심 위에 개심”이라면서 “개딸은 이 대표에게 대권 가도를 깔아줄 수도 있지만 그를 무력화시킬 수도 있다”고 강조했다. 여차하면 대선 주자를 바꿀 수도 있다는 의미다.
민주당 중진 E 의원은 “추미애 패배 이후 개딸의 ‘잔수박(수박 잔당)’ 출당 운동, 89명 반란표 색출, 집단 탈당 러시 등 움직임은 강성 당원들의 이 대표에 대한 지지 표명이자 협박 시위의 성격을 동시에 갖고 있다”고 분석했다. 강성 지지층의 ‘당 중심 지위 인정’ 요구가 수용되지 않을 경우, 혹은 개딸 직접민주주의 압박이 무산될 경우 개심은 언제든 명심으로부터 분리할 가능성이 있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위기의 대의민주주의
당원 중심 정치가 극단화하면 개딸의 당무 개입이나 의회정치에 대한 간섭이 노골화할 것이다. 이는 이 대표의 정치생명을 쥐락펴락하는 것은 물론 대의민주주의의 가치와 정신을 무력화시킬 가능성이 크다. 윤평중 한신대 명예교수는 “당파성이나 진영 충성도를 중시하는 정치 풍토는 공론장을 오염시키고 사회를 타락시킨다”고 말했다.
전임기자, 행정학 박사
■ 용어설명
민주당 ‘노선투쟁’은 ‘단일대오 구축론 vs 중도확장 강화론’의 투쟁. 전자는 반윤-친명 강철대오 구축이 우선이라는 주장, 후자는 정권 교체를 위해서는 중도확장이 더 중시돼야 한다는 것.
이재명의 ‘당원 중심’ 정치는 기득권의 도움 없이 열성적 지지자에 의지해 대선주자가 됐던 경험에서 나온 정치철학. 하지만 지도자-당원의 직접 연결 강조가 대의제와 충돌한다는 지적 있어.
■ 세줄 요약
‘추미애 낙점’ 전말 : 이재명 대표는 차기 국회의장 후보 선출과 관련, 당초 ‘전통의 친명 암묵적 지지’ 입장에서 ‘추미애 적극 지지’로 선회. 이 대표의 ‘추미애 낙점’은 개딸의 생각, 개심이 명심을 바꾼 사건으로 드러나.
확인된 노선투쟁 : 의장 후보 경선 과정에서 민주당 내 ‘단일대오 구축론’ vs ‘중도확장 강화론’의 노선투쟁 확인. 단일대오론이 대세인 듯 보였지만 중도확장을 중시한 당선인들의 반란으로 추미애 추대는 실패로 귀결.
위기의 대의민주주의 : 이 대표는 개심 달래기 차원에서 당원권 강화 추진. 당심 위에 명심, 그 위에 개심이 있는 구조. 개심은 여차하면 대선 주자를 바꿀 수도. 당원 중심 정치가 극단화하면 대의민주주의는 무력화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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