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What - ‘파타야 살인’ 신속검거 배경은
작년 해외 도피범 470명 잡아
국제공조 강화로 ‘5년새 최대’
경찰, 인터폴에 적색 수배 요청
현지 기관과 합동작전 등 수행
韓, 상대국과 적극적 협조 위해
베트남·태국 등 치안총수 회담도
라임·강남마약 주범 잇단 체포
충남 강도는 하루 만에 붙잡아
최근 태국의 휴양지 파타야에서 벌어진 한국인 ‘드럼통 살인’ 사건은 영화 ‘신세계’와 ‘범죄도시2’의 한 장면을 연상케 하는 잔혹한 살해방법으로 큰 충격을 줬다. 피해자인 30대 남성의 시신은 손가락 10개가 모두 절단된 상태였고, 시신이 들어 있는 드럼통은 시멘트가 채워진 채 저수지에 버려져 있었다. 범행의 잔혹성만큼이나 주목을 받은 것은 용의자 중 캄보디아로 도망친 20대 남성 이모 씨의 신속한 검거였다. 경찰은 이 씨가 캄보디아로 도망친 사실을 확인하자마자 태국·베트남·캄보디아·라오스·미얀마에 파견된 경찰 주재국들과 함께 첩보를 수집해왔다고 한다. 그 과정에서 지난 13일 오후 9시쯤 용의자로 추정되는 한국인이 프놈펜의 한 숙소에 머물고 있다는 첩보를 확인했다. 캄보디아 주재관이 현지 경찰과 함께 나서 이 씨를 검거한 것은 14일 0시 10분쯤으로, 불과 3시간 10분이 지난 뒤였다. 인터폴에 긴급 요청해 적색수배서를 발부받은 것도 범행 발생국인 태국보다 한발 앞섰다.
이처럼 빠른 검거가 가능했던 것은 중국·동남아시아 등 해외의 범죄자를 추적해 검거하는 우리 경찰의 국제공조 능력이 한층 향상됐기 때문이란 평가가 나온다. 그간 영화나 드라마에서 동남아 국가들은 국내에서 범죄를 저지른 범죄자들이 달아나 몸을 숨기는 단골 도피처로 흔히 묘사됐다. 한국으로부터 거리가 가까운 데다 현지 치안력이 미치지 못하는 곳이 많아 은신이 비교적 쉽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경찰이 현지 국가들과 공조를 통한 검거·송환 역량을 부쩍 키우면서 동남아 국가도 더 이상 범죄자들의 도피 천국으로 남아 있지 못할 전망이다. 지난해 강제송환된 국외도피 사범은 470명으로 최근 5년 새 최고를 기록했다.
◇해외도피 4400명, 평균 기간 3년 반 = 22일 경찰청에 따르면 현재 해외 도피 중인 범죄자 수는 4400여 명에 이른다. 전체 도피 국가는 80여 개국이지만, 대부분 중국과 베트남·필리핀·태국 등 아시아권에 몰려 있다. 지난해 국내에서 범죄를 저지르고 해외로 도피한 신규 국외도피 사범은 512명으로 중국(149명), 필리핀(98명), 베트남(63명), 태국(59명) 순이었다. 아시아권 밖에선 미국(28명)과 호주(6명)로의 도피가 활발한 편이었다. 5년 전인 2018년과 비교해 보면 중국·필리핀·미국으로 도망치는 범죄자는 줄어들었고, 대신 베트남과 태국이 2배 이상으로 늘어 새로운 도피처로 떠오르는 모양새다. 국외도피 사범이 도망치기 전에 저지르는 범죄는 사기·마약·도박·성범죄가 대표적이다. 지난해 기준으로 보면 사기(276명)가 절반 이상을 차지했다. 마약(68명), 도박(47명), 성범죄(21명) 등을 저지르고 도망친 범죄자도 많았다.
그러나 이 같은 수치는 무려 953명을 기록한 2021년에 비하면 절반 가까이 줄어든 규모다. 2018년 579명이었던 국외도피 사범은 2019년 927명으로 껑충 뛰었고, 2021년까지 900명대를 유지했다. 그러다가 2022년 549명으로 다시 뚝 떨어졌고, 지난해엔 그 숫자가 더 줄었다. 이런 변화는 국제공조 강화로 국외도피 사범의 송환이 늘어나는 추세와 무관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해외로 도망쳐 숨어도 다시 잡혀 올 가능성이 커졌기 때문이다. 2020년 271명에 그쳤던 송환자 수는 2021년(373명), 2022년(403명)에 이어 지난해 470명으로 지속 증가했다. 2020년과 비교하면 무려 73% 늘어난 숫자다. 현재 해외 도피 범죄자의 평균 도피 기간은 3년 반 정도인데, 이 같은 추세가 지속한다면 더 단축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한국→동남아 국가 요청이 압도적으로 많아 = 그러면 범죄자가 해외로 도피할 경우 경찰은 어떤 절차를 밟을까. 먼저 국내 체포영장 발부를 전제로 국제형사경찰기구(인터폴) 사무총국에 인터폴 적색수배 등을 요청하고, 상대국 법 집행기관과 경찰주재관 등에게 검거를 요청한다. 현지의 경찰주재관과 법 집행기관은 범죄 첩보 수집·분석을 바탕으로 추적·검거에 나선다. 유관 기관과 합동작전을 기획하거나 공동조사팀을 현지 파견하고, 화상회의를 하는 등 상대국과 공조를 전개한다. 이렇게 해서 범죄자가 검거되면 경찰은 경찰주재관 및 상대국과 범죄자 송환 방식·일정 등을 협의한다. 송환이 최종 결정되면 호송팀을 구성해 현지 파견, 범죄자를 국내로 데려오게 된다.
언뜻 보면 물 흐르듯 쉬워 보이는 과정이지만, 실제로 해외에 숨은 범죄자를 찾아 데려오기까지는 걸림돌이 한두 개가 아니다. 국제공조는 국내 수사와 달리 양국 간 상호주의에 따른 임의적 협력 사안이다. 국가 간 구축된 신뢰와 협력의 깊이에 따라 전체 공조 성과의 성패가 좌우된다. 특히 한국의 주요 공조 상대는 동남아 국가들인데, 우리가 일방적으로 공조 요청을 하는 경우가 압도적으로 많은 불균형적인 구조라 어려움이 한층 가중된다.
경찰이 찾은 해법은 인터폴 사무총국 및 해외 법 집행기관과의 꾸준한 협력관계 구축이다. 윤희근 경찰청장은 지난해 캐나다 경찰청을 시작으로 베트남·태국·싱가포르·말레이시아 등과 치안총수 회담을 연이어 열고 협력을 논의했다. 이달 들어서도 윤 청장은 중국 베이징(北京)을 찾아 왕샤오훙(王小洪) 공안부장과 회담하고 초국경범죄 공동 대응과 협력 활성화 방안을 논의했다.
◇단 하루 만에 범행에서 송환까지 = 국제공조 역량이 향상되면서 범행부터 검거·송환까지 하루밖에 걸리지 않는 사례도 나온다. 지난해 경찰은 충남 택시 강도살인 사건 피의자를 태국 도피 당일 입국하는 공항에서 검거한 뒤 다음 날 국내로 다시 데려오는 데 성공했다. 대전 신협 은행강도 피의자는 지난해 9월 베트남에서 검거된 뒤 약 한 달 만에 국내로 송환됐다. 한때 강남 학원가를 공포에 몰아넣었던 ‘마약 음료’ 사건 주범은 지난해 5월 중국에서 검거된 뒤 같은 해 12월 국내로 송환되기까지 8개월이 소요됐다. 올해 들어서도 해외 도피 범죄자의 검거와 송환은 계속되고 있다. 라임 사태와 관련해 약 460억 원을 횡령한 피의자가 지난 3월 프랑스에서 검거돼, 현재 범죄인 인도 절차가 진행 중이다. 이달 들어선 필리핀 도피 인질·특수강도 3인방이 국내외 합동작전에 의해 전원 현지 검거됐다.
테러·마약·무기 밀매범… ‘체포·인도 협력’ 국제기구
■ 인터폴은
22일 경찰·외교부 등의 설명을 종합하면 인터폴은 국제범죄의 예방과 진압을 위해 각 회원국의 국내법이 허용하는 한도 내에서 국제범죄에 관한 정보를 교환하고, 범죄자 체포·인도에 대해 상호 협력하는 정부 간 국제기구다. 국경과 무관하게 세계를 넘나들며 범인을 직접 수사하는 영화 속 모습과는 거리가 있는 셈이다. 오히려 각국 경찰이 정보 공유를 통해 서로 도움을 주고받는 협력체 개념에 가깝다. 인터폴은 주로 치안, 테러, 조직범죄, 인도에 반한 죄, 환경 범죄, 집단 학살, 전쟁 범죄, 마약 밀매, 무기 밀매 등의 문제를 다룬다. 반면 정치·군사·종교·인종적 문제에는 개입할 수 없도록 헌장에 규정돼 있다.
1923년 유럽·중동·미국·아시아 등의 20개국이 국제형사경찰위원회(ICPC)를 결성한 것이 인터폴의 시초다. 오스트리아 빈에 본부가 있던 탓에 제2차 세계대전 당시엔 나치 독일이 주도권을 쥐었고, 종전 후 재건돼 1956년 인터폴로 새출발했다. 한국은 1964년 인터폴 회원국으로 가입한 이래 주요 회원국의 하나로 활동하고 있다. 고위직 진출도 활발해 2000년 김중겸 아시아 부총재를 시작으로 2006년 박기륜 집행위원, 2018년에는 김종양 총재를 배출했다.
인터폴 수배 등급 중 가장 잘 알려진 ‘적색 수배’는 국제체포수배다. 국제재판관할이나 국제법정에 의해 신병 인도가 요구되는 자의 소재를 특정 및 체포하는 역할을 한다. ‘청색 수배’는 요주의 인물 신원·소재 확인에, ‘황색 수배’는 실종자나 신원 미상자의 신원 확인에 쓰인다.
조재연 기자 jaeyeon@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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