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6) 세계인의 날
■ 대니얼 디포 ‘로빈슨 크루소’· 미셸 투르니에 ‘방드르디, 태평양의 끝’
로빈슨 크루소의 하인 정말로 주인 섬겼을까 역전된 관계서 교훈
자기 문화에 집착땐 멸시·혐오 이어져 존중·이해 노력 절실

식인의 습성을 가진 야만인들로부터 로빈슨 크루소가 구해낸 덜 야만적인 야만인 ‘프라이데이(금요일)’조차도 그의 위대함에 경의를 표하였고, 그 위대함을 가능하게 한 유럽 문명을 존경하며 기꺼이 배워나간다. 그 존경심은 그의 고유 종교에 대한 기독교의 위대함을 인정하는 부분에서 잘 나타난다. “하루는 그가 내게 만약 하느님께서 태양보다 높은 곳에 계시면서 우리의 기도를 들어줄 수 있는 분이시라면, 그분이 자신들이 믿는 ‘베나머키’보다 더 위대한 신이 틀림없다고 말했다. 베나머키는 그다지 멀리 떨어져 있지 않은데도 자신들의 말을 듣지 못하며, 그 신에게 말을 하려면 그 신이 살고 있는 거대한 산에 올라가야만 한다는 것이었다.”
프라이데이의 입에서 나온 말이지만, 그 말을 전하는 로빈슨 크루소, 그리고 두 인물의 대화를 지어낸 대니얼 디포, 그의 소설에 열광적인 반응을 보인 18세기 영국인과 유럽인들의 시각을 고스란히 반영한 말이다. 그런데 정말로 프라이데이가 그렇게 로빈슨 크루소의 생활과 사고, 종교를 존경하고 감탄하며 자발적으로 모방하고 습득하려고 했을까.

방드르디는 주인에게 고분고분하지만 주인을 존경하거나 그가 이루어놓고 누리는 것들에 대해 큰 관심이나 부러움이 전혀 없다. 그는 주인을 무시하듯 해맑게 웃고 폭소한다. 그 모습에 로빈슨 크루소는 당황스럽다. “그 웃음은 총독(=로빈슨 크루소)과 그가 통치하는 섬의 겉모습을 장식하고 있는 그 거짓된 심각성의 가면을 벗겨 뒤죽박죽으로 만든다. 로빈슨은 자기의 질서를 파괴하고 권위를 흔들어놓는 그 어린 웃음의 폭발을 증오한다.” 방드르디는 문명의 옷을 벗고 자연의 알몸으로 바람과 물과 흙을 즐기며, 새들과 짐승들과 교감한다.
그리고 우연한 사고로 화약고에 불을 붙인 방드르디는 로빈슨 크루소가 재현한 유럽 문명의 구조물들을 순식간에 날려 버린다. 망연자실한 로빈슨 크루소는 비로소 방드르디가 누리는 행복을 조금씩 알아가기 시작하면서, 방드르디를 기꺼이 배워나간다. 투르니에는 디포의 결론을 완전히 뒤집고, 로빈슨 크루소와 ‘금요일’ 사이의 관계를 역전시킨다.

김헌 서울대 인문학연구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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